6장 현대의 폭발
2020년 1월, 서울 종로구.
"전 세계 한국어 학습자: 2,980만 명"
모니터에 숫자가 떠 있었다. 실시간 집계.
나는 최민수였다. 마흔다섯 살, 국제한국어재단 이사장. 빛으로 흩어졌다가 재구성될 때, 나는 알았다. 세종의 꿈을. 디지털 코드를. 한류의 폭발을. 그리고 지금 내가 지켜보고 있는 것을.
임계점 직전의 긴박한 순간을.
2,980만 명.
3,000만 명까지 20만 명 남았다.
"이사장님."
연구원 김태형이 들어왔다. 서른 살, 데이터 분석가.
"증가 속도가 둔화되고 있습니다."
"얼마나?"
"지난달 일일 평균 3만 명씩 늘었는데, 이번 달은 1만 명입니다."
가슴이 철렁했다.
"3분의 1로 줄었다고?"
"네. 그리고... 계속 감소하는 추세입니다."
그래프를 보여줬다. 증가율 곡선이 완만해지고 있었다. 거의 수평에 가까웠다.
"이 속도면 3,000만 명 도달까지 2년 걸립니다."
"2년?"
"네. 최악의 경우 3년."
책상을 쳤다. 소리가 울렸다.
"안 돼. 지금 모멘텀을 놓치면 영원히 못 넘어."
"하지만..."
"뭔가 방법이 있어야 해."
태형이 다른 자료를 펼쳤다.
"문제는 영어권입니다."
"영어권?"
"네.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영어가 모국어인 국가들의 한국어 학습률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습니다."
"왜?"
"저항입니다."
태형이 신문을 내밀었다. 뉴욕타임스.
헤드라인: "Why Learn Korean? English Is Enough"
기사를 읽었다.
"한국어 학습 열풍이 불고 있다. 하지만 영어 사용자에게 한국어는 불필요하다. 세계는 이미 영어로 소통한다. 한국어를 배울 이유가 없다. K-pop? 영어 자막으로 본다. K-drama? 더빙으로 본다. 한국어 학습은 시간 낭비다."
피가 거꾸로 솟았다.
"이게 언제 났어?"
"어제입니다. 그리고..."
태형이 다른 신문들을 쌓았다. 영국 가디언, 호주 시드니모닝헤럴드. 모두 같은 논조.
"영어권 언론이 일제히 반격하고 있습니다."
"왜 지금?"
"2,980만 명이니까요. 임계점 직전. 그들도 알아요. 3,000만 명 넘으면 네트워크 효과가 폭발한다는 것을."
"막으려는 거군."
"네. 영어의 독점을 지키려고."
주먹을 쥐었다. 1446년 세종 때도 이랬다. 한글을 막으려는 세력이 있었다. 한문 학자들이. 기득권이.
지금은 영어가 기득권이었다. 그들이 한국어를 막으려 하고 있었다.
오후, 긴급회의.
"대책이 필요합니다."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이 말했다.
"20만 명을 어떻게든 채워야 합니다. 빨리."
"어떻게요?"
누군가 물었다.
"광고? 캠페인?"
"예산이 없습니다."
"정부 지원은?"
"국회에서 부결됐습니다. '세금 낭비'라고."
회의실이 무거워졌다.
"그럼... 포기합니까?"
젊은 직원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아니."
내가 말했다.
"포기 안 해. 절대."
"하지만 방법이..."
"있어."
"뭔데요?"
"모르겠어. 하지만 찾을 거야."
사람들이 나를 봤다. 반신반의하는 눈빛.
하지만 나는 알았다. 1446년부터 이곳까지 목격해 온 내가. 한글은 항상 길을 찾았다는 것을. 가장 어두울 때, 빛이 나타났다는 것을.
지금도 그럴 것이다.
그날 밤, SNS가 폭발했다.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해시태그가 트렌딩 했다.
#WhyKorean #EnglishIsEnough #StopKoreanHype
영어권 사용자들이 한국어를 공격하고 있었다.
@JohnDoe: Why waste time on Korean? English connects the world.
@SarahSmith: Korean is just a fad. It will fade like Japanese did.
@MikeBrown: 30 million learning Korean? 3 billion speak English. No contest.
하지만... 반대 목소리도 있었다.
@EmmaUK: I learned Korean. It's beautiful. It's scientific. #LoveKorean
@CarlosBR: Korean opened my mind. New culture. New perspective. #ProudKoreanLearner @AhmedEG: English is colonial language. Korean is choice. Freedom. #LearnKorean
댓글 전쟁이 벌어졌다. 찬성과 반대가 충돌했다.
나는 그것을 보며 생각했다. 이것은 단순한 언어 싸움이 아니었다. 문명의 충돌이었다. 기득권과 새로운 물결의 충돌이었다.
일주일 후.
"2,985만 명"
5만 명 늘었다. 일주일에 5만 명. 하루 7,000명.
태형이 한숨을 쉬었다.
"이 속도면... 3년 걸립니다."
"증가율이 계속 떨어지는 거야?"
"네. 어제는 5,000명, 오늘은 3,000명..."
"내일은?"
"...아마 2,000명?"
머리를 감쌌다.
"왜 이래? 뭐가 문제야?"
"영어권 저항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비영어권까지."
"비영어권도?"
"네. 프랑스, 독일, 러시아... 자기 언어 자부심이 강한 나라들이 '왜 한국어를 배워야 하냐'고 반문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럼 우리는..."
"막혔습니다. 2,985만 명에서."
침묵이 흘렀다.
"이사장님."
"응."
"혹시... 3,000만 명이 한계일까요?"
"한계?"
"네. 더 이상 못 넘는..."
"아니야."
단호하게 말했다.
"한계가 아니야. 장애물일 뿐이야."
"하지만..."
"세종이 한글을 만들 때도 반대가 있었어. 일제 때도 탄압이 있었어. 하지만 한글은 살아남았어."
"지금은 다릅니다. 전 세계가 반대하는데..."
"그래서 더 중요해."
태형을 봤다.
"포기하면 끝이야. 영어가 영원히 독점하는 거야. 하지만 우리가 돌파하면..."
"돌파하면?"
"세계가 바뀌어. 언어의 민주화가 시작돼."
태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눈빛은 여전히 불안했다.
다음 날 새벽, 전화가 울렸다.
"이사장님!"
태형이었다. 목소리가 떨렸다.
"2,990만 명 넘었습니다!"
벌떡 일어났다.
"진짜?"
"네! 어젯밤 갑자기 폭증했어요!"
"왜?"
"BTS가 유엔 연설을 한국어로 했습니다. 전 세계 생중계로."
"한국어로?"
"네! 그리고 팬들이 한국어 배우겠다고 SNS에 쏟아지고 있어요!"
컴퓨터를 켰다. 화면을 봤다.
"실시간 학습자: 2,992만 명"
심장이 뛰었다.
"800만 명 남았어."
"네. 그런데..."
"그런데?"
"증가가 다시 둔화되고 있습니다."
"뭐?"
그래프를 봤다. 폭증했다가 다시 꺾이고 있었다.
"일시적 효과였습니다. BTS 연설로 인한..."
"그럼 지금은?"
"다시 하루 5,000명으로 떨어졌습니다."
주저앉았다.
2,992만 명. 8만 명 남았다. 손에 잡힐 듯한데. 잡히지 않았다.
사무실, 혼자.
나는 창밖을 봤다. 서울이 보였다. 한강이 흘렀다.
1446년 광화문에서 세종을 봤다. 한글을 반포하는 것을.
1945년 해방의 거리에서 사람들을 봤다. 한글을 외치는 것을.
2020년 지금. 2,992만 명이 한글을 배우고 있었다.
거의 다 왔다. 3,000만 명까지 8만 명.
하지만... 왜 안 넘어가지?
뭐가 부족한 거지?
K-pop? 있다. 세계를 석권했다.
K-drama? 있다. 넷플릭스를 장악했다.
K-culture? 있다. 한류는 폭발했다.
그런데 왜?
왜 마지막 8만 명을 못 채우지?
뭔가... 빠진 게 있다.
뭔가 결정적인 것이.
밤 11시, 전화가 왔다.
"민수야, 나야."
낯익은 목소리. 오랜 친구 박지현. 한의사.
"지현아. 오랜만이다."
"응. 그런데... 너 힘들다며?"
"누가 그래?"
"뉴스 봤어. 3,000만 명 못 넘는다고."
"...그래."
"왜 못 넘는 것 같아?"
"모르겠어. K-pop도 있고, K-drama도 있고... 다 있는데."
"다 있어?"
"응."
지현이 침묵했다. 한참 후 말했다.
"민수야, 뭔가 빠진 거 아닐까?"
"빠진 거?"
"응. K-pop, K-drama... 그거 다 '현대' 문화잖아."
"그럼?"
"전통은?"
전통.
그 단어가 귓가에 맴돌았다.
"전통?"
"응. 한의학, 판소리, 한복, 전통 음악... 5,000년 우리 뿌리."
"그게... 필요해?"
"모르겠어. 하지만 나무는 뿌리가 있어야 튼튼하잖아."
전화를 끊었다.
전통.
1446년 세종. 그게 뿌리였다.
하지만 지금 세계가 보는 건 K-pop, K-drama. 현대 문화뿐.
뿌리를 모른다.
혹시... 그게 문제일까?
모니터를 봤다. 2,992만 명. 숫자가 깜빡였다. 올라가지 않았다. 멈춰 있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벽에 막힌 것처럼. 나는 알았다. 이건 단순한 숫자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뭔가 본질적인 것이 빠졌다는 것을. K-pop과 K-drama는 가지였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하지만 뿌리는? 5,000년 전통은? 한의학, 판소리, 우리의 깊은 것들은? 세계는 아직 그것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그게 마지막 열쇠일지도. 새벽 3시. 전화를 들었다. 한국전통문화진흥원에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