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를 담는 자(소설)

6장 현대의 폭발

by 한시을

27화: 세계가 한글을 배우기 시작하다


업로드

2012년, 서울 홍대.

"안녕하세요! Korean Unnie입니다!"

나는 웹캠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서른한 살, 한국어 교사. 이름은 박은별. 빛이 흩어졌다가 재구성될 때마다, 나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했다. 세종의 광화문을. 디지털 코드를. 한류의 시작을. 그리고 지금, 유튜브.

"오늘은 한글 모음을 배워볼게요. ㅏ, ㅓ, ㅗ, ㅜ..."

칠판에 글자를 썼다. 큼직하게. 천천히.

"영어로는 A, E, I, O, U 다섯 개죠? 하지만 한글 모음은 21개예요. 훨씬 많아요. 왜냐하면..."

10분짜리 영상. 편집했다. 자막 달았다. 영어, 스페인어, 중국어, 일본어.

마우스를 올렸다. '업로드' 버튼.

클릭.

"Uploading... 50%... 100%"

"Video published successfully"

유튜브에 올라갔다. 내 스물세 번째 한국어 강의 영상.

조회수를 봤다. 0.

새로고침. 5.

또 새로고침. 23.

천천히 올랐다. 하지만 올랐다.

"은별아."

룸메이트 수진이 방에 들어왔다.

"또 유튜브 했어?"

"응."

"돈 돼?"

"아직."

"그럼 왜 해?"

나는 화면을 봤다. 조회수 156. 댓글 3개.

클릭했다.


Miguel (멕시코): Thank you! 한글 처음 배워요!

Sarah (미국): ㅏ 발음이 어려워요 ㅠㅠ

Yuki (일본): 선생님 목소리 좋아요 ♥


"이것 때문에."

수진이 화면을 봤다.

"댓글 세 개?"

"지난주엔 한 개였어. 이번 주는 세 개."

"그게 뭐가 대단한데?"

"멕시코 사람이 한글을 배우고 있어. 지구 반대편에서."

수진이 웃었다.

"너 참... 낭만적이다."

"낭만이 아니라 시작이야."

"시작?"

"그래. 세계가 한글을 배우는 시작."


폭발

6개월 후, 2013년 여름.

띠링!

알림이 울렸다. 또 울렸다. 멈추지 않았다.

화면을 봤다. 구독자가 폭발하고 있었다.

1,000명... 5,000명... 10,000명...

"뭐야, 이거!"

수진을 불렀다.

"수진아! 봐!"

수진이 뛰어왔다.

"구독자가... 만 명?"

"응!"

"왜 갑자기?"

유튜브 알고리즘이었다. 내 영상이 추천에 떴다. 전 세계 사람들에게.

댓글이 쏟아졌다.


Emma (영국): Best Korean teacher ever!

Carlos (브라질): Obrigado! 한국어 너무 재미있어요!

Ahmed (이집트): من مصر! 한글 사랑해요!

Anna (러시아): Спасибо! ㄱㄴㄷ 다 외웠어요!

John (호주): G'day! BTS 노래 이해하고 싶어서 배워요!


손이 떨렸다.

영국. 브라질. 이집트. 러시아. 호주.

오대륙에서. 사람들이. 한글을 배우고 있었다.

"은별아..."

수진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너 진짜... 해냈어."

나는 댓글을 하나하나 읽었다. 멈출 수 없었다. 계속 쏟아졌다.

1446년 훈민정음 반포 때도 이랬을까? 백성들이 한글을 배우겠다고 모여들었을 때.

지금은 백성이 아니라 세계가. 광화문이 아니라 유튜브에서.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첫 만남

한 달 후, 홍대 카페.

"선생님!"

문이 열렸다. 외국인 여자가 들어왔다. 금발. 파란 눈. 스물다섯쯤.

"엠마예요!"

영국에서 댓글 달던 그 엠마였다.

"와... 진짜 왔어?"

"네! 한국 와서 한글 배우고 싶었어요!"

엠마가 가방에서 노트를 꺼냈다. 빼곡하게 한글이 적혀 있었다.

"선생님 영상 다 봤어요. ㄱ부터 ㅎ까지 다 외웠어요!"

"발음해봐."

"ㄱ, ㄴ, ㄷ, ㄹ..."

정확했다. 유튜브로 배운 것 치고는.

"왜 한글을 배워?"

"K-pop이요. BTS 노래 가사 이해하고 싶어요. 자막 말고 직접."

"그게 다야?"

엠마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한글이... 아름다워요."

"아름다워?"

"네. 동그라미, 네모, 선... 간단한데 모든 소리를 담을 수 있어요. 마법 같아요."

가슴이 뜨거워졌다.

"엠마."

"네?"

"1446년에 한글을 만든 왕이 있었어. 세종대왕."

"알아요! 유튜브에서 봤어요!"

"그가 왜 한글을 만들었는지 알아?"

"백성들이 쉽게 배우라고요."

"맞아. 그리고 지금, 567년이 지난 지금, 영국 사람인 네가 그걸 배우고 있어."

엠마가 미소 지었다.

"세종대왕이 보면 기뻐할까요?"

"기뻐할 거야. 분명히."

엠마가 노트를 폈다.

"선생님, 이거 맞아요? '사랑해요'?"

한글로 쓰여 있었다. 삐뚤었지만 정확했다.

"맞아. 완벽해."

"진짜요?"

"진짜야."

엠마가 환호했다. 카페 사람들이 쳐다봤다. 하지만 신경 안 썼다.

금발의 영국 여자가 한글을 배우고 기뻐하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세계화였다.


강의실

2015년, 서울대학교.

"외국인 한국어 과정"

강의실에 50명이 앉아 있었다. 모두 외국인. 백인, 흑인, 아랍인, 아시아인. 오대륙에서 모였다.

나는 강단에 섰다.

"여러분, 왜 한국어를 배우나요?"

손이 올라갔다. 미국 남자.

"K-drama 때문이에요. 자막 없이 보고 싶어요."

다른 손. 프랑스 여자.

"한국 화장품 회사에 취직하고 싶어요."

또 다른 손. 베트남 남자.

"한국 대학원 진학하려고요. 장학금 받았어요."

계속 손이 올라갔다. 모두 다른 이유. 하지만 같은 목표.

한국어.

"좋아요. 그럼 시작할게요. ㄱ, ㄴ, ㄷ..."

칠판에 글자를 썼다. 50명이 따라 썼다. 노트에. 정성스럽게.

한 아프리카 학생이 손을 들었다.

"선생님, 한글은 왜 이렇게 쉬워요?"

"쉬워?"

"네. 아랍어는 3년 배웠는데도 어려운데, 한글은 3일 만에 읽을 수 있어요."

"과학적이니까."

"과학적?"

"그래. 1446년에 만들어질 때부터 과학적으로 설계됐어. 배우기 쉽게."

"대단해요..."

아프리카 학생이 감탄했다.

수업이 끝난 후, 학생들이 몰려왔다.

"선생님, 사진 찍어요!"

"선생님, 사인해 주세요!"

"선생님, 유튜브 언제 올려요?"

나는 그들에게 둘러싸여 사진을 찍었다. 오대륙에서 온 50명과.

그들 모두 한글을 사랑했다.


통계

2017년, 세종학당재단.

"전 세계 한국어 학습자 통계"

보고서가 책상에 놓여 있었다. 나는 페이지를 넘겼다.


2000년: 10만 명

2005년: 50만 명

2010년: 200만 명

2015년: 1,000만 명

2017년: 1,500만 명


15년 만에 150배 증가.

그래프가 거의 수직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대륙별 분포"


아시아: 800만 명

북미: 300만 명

유럽: 200만 명

남미: 100만 명

아프리카: 80만 명

오세아니아: 20만 명


오대륙. 모든 대륙.

"학습 동기"


K-pop: 45%

K-drama: 30%

취업: 15%

유학: 7%

기타: 3%


문화가 언어를 이끌고 있었다.

재단 이사장이 들어왔다.

"은별씨, 축하합니다."

"무엇을요?"

"유튜브 구독자 100만 명 달성했다면서요?"

"아... 네."

"대단합니다. 한국어 교육 유튜버 최초예요."

"감사합니다."

"앞으로 계획은?"

창밖을 봤다. 서울이 보였다. 한강이 흘렀다.

"더 많이 가르치려고요."

"얼마나?"

"1억 명."

이사장이 눈을 깜빡였다.

"1억... 명?"

"네. 전 세계 1억 명이 한글을 배우는 날."

"가능할까요?"

"가능합니다."

"어떻게?"

"한류가 계속되는 한. K-pop이, K-drama가, K-culture가 계속되는 한."

이사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응원하겠습니다."


편지

그날 밤, 사무실.

메일함을 열었다. 읽지 않은 메일 300개.

하나씩 열었다.


From: Maria (아르헨티나)

Subject: 감사합니다

선생님, 저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살아요. 여기는 한국에서 너무 멀어요. 하지만 유튜브로 한글을 배웠어요. 이제 BTS 노래를 한글로 불러요. 친구들이 신기해해요. "한글이 뭐야?" 물어봐요. 저는 자랑스럽게 말해요. "세상에서 가장 과학적인 글자예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한글을 사랑해요. ♥


또 다른 메일.


From: Abdul (사우디아라비아)

Subject: 한글과 아랍어

선생님, 저는 아랍어가 모국어예요. 아랍어는 어려워요. 배우는 데 오래 걸려요. 하지만 한글은 1주일 만에 읽을 수 있었어요. 왜 한글은 이렇게 쉬워요? 마법이에요. 세종대왕은 천재예요. 한국 사람들은 축복받았어요. 이렇게 좋은 글자를 가져서.


눈물이 났다.

1446년 광화문에서 세종을 목격한 이후, 567년.

세종이 꿈꿨던 것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백성이 쉽게 배우는 글자.

지금은 백성이 아니라 세계 모든 사람이. 쉽게 배우고 있었다.

아르헨티나에서. 사우디에서. 러시아에서. 호주에서.

한글을.


카운트다운

2018년, 연말.

"전 세계 한국어 학습자: 2,800만 명"

뉴스가 보도했다.

나는 화면을 보며 계산했다.

2,800만 명.

임계점은 3,000만 명이라고 했다. 언어학자들이.

3,000만 명을 넘으면, 네트워크 효과가 폭발한다고. 자기강화 시스템이 작동한다고.

한국어가 국제어가 된다고.

200만 명 남았다.

"은별아."

수진이 샴페인을 들고 왔다.

"미리 축하해."

"뭘?"

"3,000만 명. 곧 넘을 거잖아."

"아직 200만 명 남았어."

"금방이야. 지금 속도면."

수진이 잔을 부딪쳤다.

"건배. 세계가 한글을 배우는 날을 위해."

"건배."

마셨다. 달콤했다. 하지만 긴장됐다.

200만 명. 적은 숫자가 아니었다.

그리고... 200만 명을 채우면 끝일까?

아니었다. 시작이었다.

진짜 싸움은 그 다음이었다.

3,000만 명에서 10억 명으로. 10억 명에서 30억 명으로.

언어 전쟁이 시작될 것이었다.


창밖으로 서울 야경이 보였다. 수백만 개의 불빛. 그리고 저 너머, 전 세계. 2,800만 명이 한글을 배우고 있었다. 아르헨티나 소녀가 BTS 노래를 한글로 불렀다. 사우디 청년이 한글의 과학성에 감탄했다. 영국 여자가 "사랑해요"를 노트에 썼다. 모두 다른 대륙에서. 하지만 같은 글자로. 1446년 세종이 꿈꾼 것이 2018년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알았다. 200만 명은 곧 채워질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때... 진짜가 시작될 것이라는 것을.

금,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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