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를 담는 자(소설)

6장 현대의 폭발

by 한시을

26화: 한류의 태동과 세계화


거절

1997년, 서울 강남.

"안 됩니다."

일본 방송국 PD가 고개를 저었다. 서른다섯쯤. 정장 차림. 표정이 딱딱했다.

나는 한지우였다. 서른여덟 살, 드라마 제작사 대표. 빛이 흩어졌다가 이 시대에 모였을 때, 나는 알았다. 1446년 훈민정음의 기억을. 디지털 코드의 기억을. 그리고 지금 해야 할 일을.

한글을 세계로 보내는 것.

"왜 안 됩니까?"

"한국 드라마는 일본에서 안 팔립니다."

"이유가 뭡니까?"

"시청자들이 원하지 않아요. 한국어를... 듣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가슴이 철렁했다. 손에 든 비디오테이프가 무거웠다. 『사랑이 뭐길래』. 한국에서 50% 시청률을 찍은 드라마.

"자막을 달면 됩니다."

"자막이 문제가 아닙니다. 한국 드라마는... 격이 떨어집니다."

"격?"

"네. 일본 시청자들은 할리우드 드라마를 봅니다. 한국 드라마는..."

말을 잇지 않았다. 하지만 알 수 있었다. '수준이 낮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감사합니다."

나는 일어섰다. PD가 명함도 받지 않았다. 테이프도 보지 않았다.

엘리베이터를 탔다. 내려갔다. 로비로.

밖으로 나왔다. 도쿄 거리. 사람들이 오갔다. 번화했다. 하지만 낯설었다.

주머니에서 테이프를 꺼냈다. 『사랑이 뭐길래』. 한글 제목이 선명했다.

"한국어를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전화

호텔 방, 밤 11시.

전화가 울렸다.

"여보세요."

"지우야, 나야."

강민재였다. 내 오랜 친구. 작곡가.

"민재야. 잘됐어?"

"안 됐어. 완전히."

민재의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중국도 거절당했어. 한국 가요는 안 판다고."

"이유는?"

"중국어가 아니라서. 그리고... 촌스럽다고."

"촌스럽다고?"

"응. 홍콩 가요나 대만 가요는 세련됐는데, 한국 가요는 촌스럽대."

전화기를 꽉 쥐었다.

"지우야, 우리... 틀렸나?"

"뭐가?"

"한국 문화를 세계에 팔겠다는 게. 무리였나?"

침묵이 흘렀다.

"아니야."

내가 말했다.

"안 틀렸어."

"하지만 아무도 안 사잖아. 일본도, 중국도, 동남아도."

"지금은."

"응?"

"지금은 안 사. 하지만 언젠가는 살 거야."

"언제?"

"모르겠어. 하지만 반드시."

민재가 한숨을 쉬었다.

"너 참... 낙천적이다."

"낙천이 아니라 확신이야."

"뭘 믿고?"

"한글을 믿고."

"한글?"

"그래. 한글이 담은 이야기를, 노래를, 감정을. 그게 언젠가 세계를 감동시킬 거야."

민재가 웃었다. 쓴웃음이었다.

"알았어. 그럼 계속 해보자. 조금만 더."

전화가 끊겼다.

나는 창밖을 봤다. 도쿄 야경. 네온사인이 반짝였다. 일본어로 가득한 거리.

하지만 언젠가 저기 한글이 보일 것이다. 반드시.


돌파구

1년 후, 1998년.

"지우씨!"

사무실 문이 박차고 열렸다. 스태프 박선영이 뛰어 들어왔다.

"일본에서 연락 왔어요!"

"뭐?"

"NHK에서 『사랑이 뭐길래』 방영하겠대요!"

"정말?"

"네! 케이블이지만... 시작이에요!"

나는 벌떡 일어났다. 선영과 껴안았다. 1년. 일본 방송국을 100곳 넘게 돌아다녔다. 100번 거절당했다.

하지만 101번째에 성공했다.

"언제부터?"

"다음 달부터요. 그리고..."

선영이 다른 서류를 꺼냈다.

"중국에서도 연락 왔어요. 『사랑이 뭐길래』 사고 싶대요."

"중국도?"

"네. 베이징 TV에서요."

주저앉았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1년간의 고생이, 100번의 거절이, 지금 보상받고 있었다.

"지우씨, 우리 해냈어요."

선영이 울먹였다.

"아직 아니야."

"네?"

"방영되고 시청률이 나와야지. 그때 해낸 거야."

선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잘 되겠죠?"

"잘 될 거야."

하지만 가슴은 두근거렸다. 정말 잘 될까? 일본 시청자들이 한국 드라마를 볼까? 중국 시청자들이 한국어를 들을까?


방영

두 달 후, 도쿄.

나는 다시 도쿄에 왔다. NHK 케이블 방송국 모니터링룸.

오후 8시. 『사랑이 뭐길래』 첫 방영.

모니터에 드라마가 시작됐다. 한국어 대사. 일본어 자막.

"사랑이 뭐길래..."

주제가가 흘렀다. 한국어로.

스태프들이 긴장한 얼굴로 시청률을 봤다.

"0.5%..."

낮았다. 너무 낮았다.

"괜찮아요. 케이블이니까."

누군가 위로했다. 하지만 모두 불안했다.

30분 지났다.

"0.7%로 올랐어요!"

조금 올랐다.

1시간 지났다.

"1.2%!"

계속 올랐다.

방송 끝.

"최종 시청률 1.5%입니다!"

스태프들이 환호했다. 케이블 치고는 높은 수치였다.

하지만 중요한 건 시청률이 아니었다.


첫 편지

일주일 후, 사무실.

팩스가 도착했다. 일본에서.

펼쳐봤다. 편지였다. 일본어로 쓰여 있었지만, 중간중간 한글이 섞여 있었다.

"저는 도쿄에 사는 사토 유키코입니다. 『사랑이 뭐길래』를 보고 감동했습니다. 처음에는 자막을 읽었습니다. 하지만 점점 한국어가 듣고 싶어졌습니다. "사랑해요"라는 한국어가 너무 아름답습니다. 한글을 배우고 싶습니다. 어디서 배울 수 있나요?"

손이 떨렸다.

"선영아!"

"네?"

"이것 봐."

선영이 팩스를 읽었다. 눈이 커졌다.

"한글을 배우고 싶대요..."

"그래."

또 팩스가 왔다. 또 편지. 또 한 통. 하루 종일 팩스기가 멈추지 않았다.

100통. 200통. 500통.

모두 같은 내용이었다.

"한글을 배우고 싶다."

나는 편지들을 보며 생각했다. 1446년 훈민정음 반포 때도 이랬을 것이다. 백성들이 한글을 배우고 싶어 했을 것이다.

지금은 일본 사람들이. 중국 사람들이. 한글을 배우고 싶어 하고 있었다.

문화가 길을 열었다. 드라마가 문을 열었다. 그리고 한글이 들어가고 있었다.


서점

한 달 후, 도쿄 긴자.

서점에 한글 교재 코너가 생겼다. 『처음 배우는 한글』, 『한국어 회화』, 『K-드라마로 배우는 한국어』.

사람들이 책을 샀다. 줄을 섰다.

나는 멀리서 그 모습을 봤다.

한 일본 여학생이 『한글 첫걸음』을 들었다. 표지를 봤다. ㄱ, ㄴ, ㄷ...

"카와이이..."

귀엽다고 했다. 한글이 귀엽다고.

다른 여학생이 말했다.

"한글은 배우기 쉽대. 하루면 읽을 수 있대."

"정말?"

"응. 과학적이라서."

가슴이 뜨거워졌다.

1446년 세종이 만든 한글. 백성이 쉽게 배우라고. 과학적으로 설계한.

523년이 흐른 지금, 일본에서. 중국에서. 동남아에서. 사람들이 배우고 있었다.

쉽다고. 아름답다고. 과학적이라고.


민재

그날 밤, 민재에게 전화했다.

"민재야."

"응."

"도쿄 서점에 한글 교재가 깔렸어."

"진짜?"

"응. 사람들이 줄 서서 사."

민재가 웃었다. 이번엔 진짜 웃음이었다.

"지우야, 너 맞았다."

"뭐가?"

"한글이 세계로 간다고. 너 맞았어."

"아직 아니야. 이건 시작일 뿐이야."

"시작?"

"응. 일본, 중국, 동남아... 아직 아시아야. 진짜는... 전 세계야."

"전 세계?"

"그래. 미국, 유럽, 아프리카, 남미... 모든 대륙."

민재가 한숨을 쉬었다.

"야, 너무 큰 꿈 아니야?"

"아니야. 가능해."

"뭘 믿고?"

"한글을 믿고. 그리고..."

"그리고?"

"우리 문화를 믿고. 드라마, 음악, 영화... 한글로 담긴 이야기들을."

민재가 침묵했다. 한참 후 말했다.

"알았어. 그럼 나도 계속할게. 음악으로."

"응."

"언젠가 내 노래가 전 세계에서 한국어로 불리는 날이 올까?"

"올 거야."

"확신하네?"

"확신해."

전화를 끊었다.

창밖을 봤다. 서울 야경. 수백만 개의 불빛.

그리고 저 너머, 일본. 중국. 동남아. 수억 명의 사람들.

그들이 지금 한글을 배우고 있었다. 드라마를 보면서. 노래를 들으면서.

1446년부터 시작된 여정이 이제 아시아를 넘어서려 하고 있었다.


공항

1999년, 인천공항.

나는 로스앤젤레스행 비행기를 탔다.

"할리우드 진출 시도합니다."

기자들에게 말했다.

"한국 드라마를 미국에 팔 수 있을까요?"

한 기자가 물었다.

"팔 겁니다."

"자신 있으세요?"

"네."

"왜요?"

"한글을 믿으니까요."

기자들이 웃었다. 비웃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진지했다. 1446년 광화문에서 목격한 나는. 디지털 코드를 만든 나는. 이제 할리우드로 가고 있었다.

한글을 싣고.

비행기가 이륙했다. 서울이 멀어졌다. 태평양이 펼쳐졌다.

창밖을 보며 생각했다.

아시아는 시작이었다. 진짜는 지금부터다.

세계가 한글을 배우는 날. 그날은 멀지 않았다.


LA 공항에 도착했다. 입국 심사대를 지났다. 짐을 찾았다. 가방 안에 DVD가 100장 들어 있었다.한국 드라마들. 한글 자막이 달린. 나는 그것들을 들고 할리우드로 향했다. 거절당할 것이다. 100번도 넘게. 하지만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알고 있으니까. 한글은 이미 이겼다는 것을. 아시아에서. 그리고 언젠가 여기서도 이길 것이라는 것을. 택시가 할리우드 사인이 보이는 곳으로 달렸다. 한글을 싣고.

금,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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