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 대신 예배를 선택한 여자들

3장 의례의 정치학

by 한시을

13회. 왜 불교/천주교는 됐고 개신교는 안 됐는가


같은 질문, 다른 대답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이다. "시어머니는 불교 신자인데 제사 잘 지내요. 친정은 천주교인데 명절마다 차례 지내고요. 근데 남편 교회에서는 제사가 절대 안 된대요. 다 종교인데 왜 이렇게 다른가요?"

35세 G씨는 이 차이가 늘 궁금했다. "시어머니가 절에 다니시는데, 명절이면 제사상 차리고 절하세요. 절에서 천도재도 지내고요. 천주교 다니는 친구 언니도 제사 지낸다고 해요. 근데 우리 교회 목사님은 '제사는 우상숭배'라고 하시거든요. 같은 종교인데 왜 이렇게 다를까요?"

이 질문은 사실 한국 종교사의 핵심을 건드리고 있다. 왜 불교와 천주교는 제사를 허용했는데, 개신교만 끝까지 거부하는가? 이 차이는 어디서 왔을까?


밈 이론: 종교도 진화한다

미국 철학자 대니얼 데닛(Daniel Dennett)은 2006년 『Breaking the Spell』이라는 책에서 흥미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종교도 생물처럼 진화한다는 것이다. 그는 리처드 도킨스가 제안한 '밈(meme)' 개념을 사용했다. 밈이란 문화적으로 전달되는 정보 단위다. 유전자가 복제되듯이, 밈도 사람에서 사람으로 복사된다. 종교는 하나의 밈 복합체다.

데닛은 밈과 숙주(인간) 관계를 세 가지로 분류했다. 첫째, 상리공생자(mutualist). 밈과 숙주가 모두 이익을 본다. 둘째, 편리공생자(commensal). 밈은 이익, 숙주는 중립이다. 셋째, 기생자(parasite). 밈은 이익, 숙주는 손해를 본다.

그는 이렇게 썼다. "종교 밈은 상리공생자일 수도 있고, 기생자일 수도 있다. 안에서는 알 수 없다. 당신의 종교가 당신을 이롭게 하는지, 해치는지는 바깥에서만 판단할 수 있다."

이 틀을 한국 종교사에 적용하면 흥미로운 패턴이 보인다. 외래 종교가 토착 의례(제사)와 만났을 때, 어떻게 적응했는가? 그 적응 방식이 종교의 성격을 결정했다.


불교: 제례불교를 만들다

불교는 삼국시대에 한국에 들어왔다. 처음부터 문제가 있었다.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다. 윤회를 벗어나 열반에 드는 것이 목표다. 조상 제사 같은 세속적 의례는 본래 불교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하지만 동북아시아에서는 조상 숭배가 가장 중요한 의례였다. 불교는 선택해야 했다. 제사를 거부할 것인가, 수용할 것인가?

불교는 수용을 택했다. 그리고 자신만의 방식을 만들었다. 우란분경(盂蘭盆經), 목련경(目連經), 지장경(地藏經) 등의 경전을 근거로 조상 천도 의식을 발달시켰다. 사찰에서 승려가 집전하는 천도재가 생겼다. 49일간 7번 지내는 사십구재, 음력 7월 15일 우란분절의 천도재, 기일에 지내는 기제사까지. 불교식 제사 체계가 완성되었다.

신라와 고려시대에 귀족들은 유교식 제사와 불교식 제사를 겸용했다. 집에서는 유교식으로, 절에서는 불교식으로 제사를 지냈다. 불교는 제사를 거부하지 않고, 오히려 불교화했다. 술과 고기 대신 차와 채식을 올렸다. 절하는 대신 합장했다. 조상의 극락왕생을 빌었다.

40대 H씨는 말한다. "어머니가 불교 신자세요. 할아버지 기일이면 절에 가서 천도재 지내요. 목사님들은 그게 제사 아니냐고 하는데, 어머니는 '제사가 아니라 천도재'라고 하세요. 근데 저는 똑같아 보여요. 조상 위해 절에서 의식 치르는 건데."

H씨의 관찰은 정확하다. 천도재는 불교식 제사다. 형식은 다르지만 기능은 같다. 조상을 추모하고, 명복을 빈다. 불교는 제사를 거부하지 않고 변형했다. 그리고 이 전략은 성공했다.

데닛의 분류로 보면, 불교는 상리공생자였다. 불교(밈)도 이익을 봤다. 동북아시아에서 뿌리내릴 수 있었다. 한국 사회(숙주)도 이익을 봤다. 전통 의례를 유지하면서 새로운 영성을 얻었다. 둘 다 win-win이었다.


천주교: 148년의 갈등, 하루의 결정

천주교는 처음부터 달랐다. 조선 후기 천주교가 들어왔을 때, 제사는 엄격히 금지됐다. 1791년 진산사건에서 윤지충과 권상연이 제사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처형당했다. "무군무부(無君無夫)" - 임금도 없고 아버지도 없는 사악한 종교라는 낙인이 찍혔다.

이 갈등은 148년간 지속됐다. 수많은 천주교인이 순교했다. 그런데 1939년 12월 8일, 교황 비오 12세가 「중국 의례에 관한 훈령」을 공포했다. "조상제사는 종교적 의식이 아니라 시민적 예식이다." 하룻밤 사이에 제사가 허용됐다.

이 결정의 배경은 12회에서 살펴봤다. 국제정치의 압력이었다. 일본 제국과의 타협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명확했다. 천주교는 이제 제사를 지낼 수 있었다.

1940년 7월, 조선 8교구 주교들은 공동 교서를 발표했다. "교회의 신앙 도리가 변한 것이 아니다. 다만 시대의 변화에 따라 조상제사에 대한 현대인의 정신이 변했기 때문에 용납하는 것이다." 하지만 조선의 천주교인들은 알고 있었다. 신학이 아니라 정치가 바뀐 것임을.

그럼에도 결과는 중요했다. 천주교는 이제 제사를 거부하지 않았다. 물론 조건이 있었다. 신주(神主)를 세우지 않는다. 조상을 신으로 섬기지 않는다. 미신적 요소를 배제한다. 하지만 조상을 추모하고, 음식을 올리고, 절하는 것은 허용됐다.

천주교는 자체 상장예식서를 발행했다. 천주교식 조상 제사 방법이 나왔다. 십자가와 촛불을 놓고, 기도로 시작하고, 성경을 낭독하고, 묵상하고, 음식을 나눈다. 형식은 천주교식이지만, 조상을 추모한다는 본질은 유지됐다.

32세 I씨의 가족이 그렇다. "친정이 천주교예요. 명절이면 제사 지내요. 목사님 친구가 '천주교도 제사 지내?' 하고 놀라던데요. 우리는 당연하게 생각했거든요. 할아버지 영정 앞에 음식 놓고, 기도하고, 성경 읽고, 절해요. 목사님은 '그게 제사 아니냐'고 하는데, 우리는 '추모 예식'이라고 해요."

데닛의 분류로 보면, 천주교도 상리공생자가 됐다. 1939년 이후 천주교(밈)는 한국 사회에 뿌리내릴 수 있었다. 제사 금지라는 가장 큰 장벽이 사라졌다. 한국 사회(숙주)도 이익을 봤다. 천주교 신자들도 이제 가족과 함께 명절을 보낼 수 있었다. 갈등이 줄었다.


개신교: 우상숭배 프레임

개신교는 달랐다. 개신교는 제사를 거부했고, 지금도 거부한다. 왜일까?

신학적 근거는 명확하다. 십계명 제2계명이다.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출애굽기 20:4-5)

개신교는 제사의 어떤 요소를 우상숭배로 보는가? 첫째, 신주(神主). 조상의 이름을 쓴 위패다. "신의 자리"라는 뜻이다. 둘째, 강신(降神). 조상의 영혼이 내려온다는 의식이다. 술을 따라 바치고 절한다. 셋째, 제물. 조상이 음식을 먹는다고 믿는다. 밥에 숟가락을 꽂아둔다.

개신교는 이 모든 것이 우상숭배라고 본다. 조상을 신처럼 섬기는 것이다. 십계명 위반이다. 절대 허용할 수 없다.

45세 J씨는 교회에서 이렇게 배웠다. "목사님이 설교 중에 말씀하셨어요. '제사는 우상숭배다. 십계명을 어기는 죄다. 신자는 절대 제사를 지내면 안 된다. 제사상에 절하는 것도 안 된다. 그 자리에 있는 것도 죄다.' 명절 전이면 꼭 이런 설교가 나와요. '제사 대신 교회 오세요' 하고요."

하지만 문제가 있다. 불교도 우상이 있다. 부처상이 있다. 천주교도 성상이 있다. 성모상, 십자고상이 있다. 그런데 왜 제사만 우상숭배인가?

개신교의 논리는 이렇다. 부처상은 불교 신자가 섬기는 것이다. 성모상은 천주교 신자가 공경하는 것이다. 하지만 제사는 "조상을 신으로 섬기는 것"이다. 차이는 대상이 아니라 관계다. 조상을 초자연적 존재로 만드는 것이 문제다.

하지만 이 논리에는 맹점이 있다. 천주교도 제사를 지낸다. 천주교는 1939년 이후 "제사는 시민적 예식"이라고 규정했다. 조상을 신으로 섬기는 것이 아니라, 효를 표현하는 것이라고 했다. 같은 행위를 다르게 해석한 것이다.

개신교는 이 해석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형식이 같으면 본질도 같다고 본다. 신주를 세우고, 절하고, 제물을 올리면 그것은 우상숭배다. 천주교가 뭐라고 하든 상관없다.

38세 K씨는 이 차이 때문에 혼란스러워한다. "천주교 다니는 친구는 제사 지내요. 저는 개신교인데 목사님이 안 된다고 하세요. 친구한테 물어봤어요. '너네는 왜 돼?'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우리는 조상을 신으로 안 섬겨. 추모하는 거야.' 근데 그게 뭐가 다른지 잘 모르겠어요. 똑같이 절하고, 음식 놓고, 기도하는데."

K씨의 혼란은 당연하다. 형식은 비슷하다. 하지만 신학적 해석이 다르다. 천주교는 "시민적 예식"으로 본다. 개신교는 "우상숭배"로 본다. 같은 행위, 다른 판단이다.


누가 이득을 보는가?

데닛은 묻는다. "Cui Bono?" 누가 이득을 보는가? 개신교의 제사 거부는 누구에게 이익인가?

첫째, 개신교(밈) 자체에게는 이익이다. 제사를 거부함으로써 개신교는 정체성을 만들었다. "우리는 다르다. 우리는 타협하지 않는다. 우리는 진리를 지킨다." 이 정체성은 강력했다. 신자들을 결속시켰다. 경계를 명확히 했다.

둘째, 개신교는 교회 중심성을 만들었다. "제사 대신 교회 오세요." 명절이 되면 교회에서 기도회를 연다. 제사를 피하고 싶은 며느리들에게 교회는 피난처가 됐다. 교회 출석이 늘었다.

하지만 한국 사회(숙주)에게는 어떤가? 데닛의 분류로 보면, 개신교는 기생자에 가깝다. 전통 의례(제사)를 약화시켰다. 가족을 분열시켰다. 며느리는 제사를 거부하고 교회로 갔다. 시댁과 갈등했다. 가족이 명절에 모이지 못했다.

물론 이것은 외부자의 관점이다. 개신교 신자 입장에서는 다르다. 제사 거부는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는 것이다. 타협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이것이 이익이다.

데닛은 말한다. "안에서는 판단할 수 없다. 당신의 종교가 기생자인지 상리공생자인지는 바깥에서만 알 수 있다."


세 종교, 세 가지 선택

불교는 제사를 불교화했다. 천도재를 만들었다. 천주교는 148년 갈등 끝에 제사를 허용했다. "시민적 예식"으로 재정의했다. 개신교는 끝까지 거부했다. "우상숭배"로 규정했다.

세 종교, 세 가지 선택이었다. 그리고 이 선택은 각 종교의 성격을 결정했다.

불교와 천주교는 한국 사회와 공존했다. 상리공생자였다. 종교도 살고, 사회도 살았다. 갈등이 줄었다.

개신교는 긴장을 유지했다. 경계를 명확히 했다. 타협하지 않았다. 이것이 개신교의 정체성이 됐다. 하지만 대가가 있었다. 가족 분열, 사회 갈등이었다.

42세 L씨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집이 딱 그래요. 할머니는 불교, 어머니는 천주교, 저는 개신교예요. 명절이면 할머니는 절에 가서 천도재 지내고, 어머니는 집에서 제사 지내고, 저는 교회 가요. 한 집안에 세 종교, 세 가지 제사가 있어요. 아니, 저는 제사 안 하니까 두 가지네요."

L씨의 가족은 한국 종교사의 축소판이다. 세 종교가 세 가지 방식으로 제사를 다룬다. 불교는 수용하고 변형했다. 천주교는 거부하다가 수용했다. 개신교는 끝까지 거부한다.


며느리들이 물려받은 선택지

며느리들은 이 구조 안에서 선택해야 했다. 제사를 지낼 것인가, 거부할 것인가? 거부한다면 어떤 명분으로?

개신교는 명분을 제공했다. "우상숭배"라는 강력한 프레임이었다. "저 교회 다녀서 제사 못 지내요." 이 말은 통했다. 며느리 개인의 거부가 아니라, 종교적 신념이었다. 비난하기 어려웠다.

35세 M씨는 솔직하게 말한다. "처음엔 진짜 신앙 때문이었어요. 목사님 말씀 듣고 '제사는 우상숭배구나' 했죠. 근데 시간 지나니까... 솔직히 제사 안 하니까 편해요. 명절에 하루 종일 부엌에 안 서도 되고, 시댁 눈치 안 봐도 되고. 신앙이 핑계가 된 건지, 핑계가 신앙이 된 건지 모르겠어요."

M씨의 고백은 정직하다. 신앙과 전략의 경계는 흐릿하다. 처음에는 신앙이었을 수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편리함을 얻었다. 그 편리함이 다시 신앙을 강화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것이다. 며느리들이 선택한 게 아니라는 점이다. 구조가 선택지를 만들었다. 개신교가 "우상숭배" 프레임을 만들었다. 며느리들은 그 프레임을 사용했을 뿐이다.

만약 개신교가 불교나 천주교처럼 제사를 허용했다면? 며느리들은 다른 선택을 했을까? 아니면 다른 핑계를 찾았을까?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현재 구조에서 며느리들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제한적이었다는 점이다. 제사를 지으면서 고통받거나, 제사를 거부하면서 갈등을 감수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개신교는 세 번째 선택지를 제공했다. 거부하되, 정당한 명분을 갖고. "종교적 신념"이라는 방패를 주었다. 며느리들은 그 방패를 들었다.


기생자인가, 해방자인가?

데닛의 관점에서 보면, 개신교는 기생자다. 한국 사회의 전통 의례를 약화시켰다. 가족을 분열시켰다. 밈은 번성했지만, 숙주는 손해를 봤다.

하지만 며느리들의 관점에서 보면? 개신교는 해방자였다. 제사라는 억압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 "우상숭배"라는 프레임은 며느리들에게 무기였다.

이 모순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한 종교가 사회 전체에는 기생자이면서, 특정 집단(며느리)에게는 상리공생자일 수 있는가?

데닛은 이런 경우를 예상했다. "밈은 전체 숙주에게는 해를 끼치면서, 일부 숙주에게는 이익을 줄 수 있다. 그 일부가 밈을 전파하는 주체가 되면, 밈은 살아남는다."

개신교는 며느리들에게 이익을 주었다. 며느리들은 개신교를 전파했다. "교회 다니니까 제사 안 해도 돼요." 이 말을 들은 다른 며느리들도 교회로 갔다. 개신교는 급속히 성장했다.

하지만 대가는 누가 치렀는가? 가족이었다. 명절마다 갈등했다. 며느리는 교회 가고, 시댁은 제사 지내고. 할아버지 제사에 손자며느리가 없었다. 가족이 함께 모이는 의례가 사라졌다.

데닛의 질문으로 돌아가자. "Cui Bono?" 누가 이득을 보는가? 개신교(밈)는 이득을 봤다. 며느리들(일부 숙주)은 이득을 봤다. 하지만 한국 가족(전체 숙주)은 손해를 봤다.


안에서는 알 수 없다

데닛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한다. "안에서는 알 수 없다. 당신의 종교가 당신을 이롭게 하는지, 해치는지는 밖에서만 판단할 수 있다."

개신교 신자에게 물어보면, 제사 거부는 옳은 것이다.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이다. 타협하지 않는 신앙이다. 며느리 신자에게 물어보면, 교회는 해방이다. 억압에서 벗어나게 해준 은혜다.

하지만 밖에서 보면? 전통 의례가 붕괴되고 있다. 가족이 명절에 모이지 못한다. 세대 간 연결이 끊어진다. 며느리는 해방됐지만, 가족은 분열됐다.

어느 관점이 옳은가? 데닛은 답하지 않는다. 그는 질문만 던진다. "누가 이득을 보는가? 밈인가, 숙주인가, 둘 다인가?"

한국 종교사는 이 질문에 세 가지 답을 제시했다. 불교: "둘 다 이득이다." 천주교: "처음엔 갈등, 나중엔 공존이다." 개신교: "밈은 이득, 숙주는... 복잡하다."

그리고 며느리들은 이 복잡한 구조 안에서 자신의 길을 찾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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