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의례의 분기점
같은 해, 다른 세계
2024년 10월 25일. 경기도 수원시 한 선영에 검은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줄지어 모여들었다.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의 4주기 추도식이었다. 유족인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물산 사장이 함께했다. 유족 곁에는 삼성그룹 사장단 50여 명도 참석했다. 기일 하루 전날인 24일에는 추모 음악회가 열렸다. 세계적 연주자들이 무대에 올랐다. 조화가 전달됐다.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이 조화를 보냈다는 소식이 재계 뉴스로 전해졌다.
추도식이 진행되는 내내 미디어가 현장을 주시했다. 이재용 회장의 표정, 참석자 명단, 조화를 보낸 기업들. 이 추도식은 하나의 기사가 아니라 여러 개의 기사가 됐다.
같은 해, 같은 시기.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이런 글이 올라왔다. "아버지 기일인데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봉안당 갔다가 편의점에서 아버지 좋아하시던 참이슬 사 왔다. 혼자 마셨다." 이 글에 수백 개의 공감이 달렸다. "우리도 비슷하게 했어", "그거면 충분한 거야", "나는 그것도 못 했는데."
두 풍경 사이의 거리는, 수십 킬로미터가 아니다. 수십 억이다.
그리고 이 두 풍경은 이제 같은 미디어 화면 안에 공존한다. 재벌 가문의 기일 추도식 뉴스와, 온라인 커뮤니티의 "혼자 봉안당 갔다 왔다"는 글이 같은 날 같은 화면에 뜬다. 둘 다 기억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그 기억의 방식이 이토록 다르다. 이 차이가 이 글이 탐색하려는 것이다.
제사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 16회의 이야기였다. 그러나 전부가 사라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화려해지고, 더 공개적이 되고, 더 많은 사람을 불러모으는 방향으로 진화하는 제사가 있다. 그것이 어디에 존재하는지, 왜 그것이 가능한지를 들여다보면 한국 사회의 계층 구조가 의례 안에 어떻게 새겨지는지가 보인다.
이건희 추도식 — 제사가 스펙터클이 될 때
삼성 이건희 선대회장의 기일은 10월 25일이다. 2020년 타계 이후, 해마다 이 날에는 재계 뉴스가 쏟아진다. 추도식의 규모와 참석자, 어떤 조화가 전달됐는지, 이재용 회장이 어떤 표정으로 선영에 섰는지가 뉴스가 된다.
5주기인 2025년에는 전·현직 경영진 150여 명이 수원 선영을 찾았다. 기일 전날인 24일에는 경기 용인 삼성전자 인재개발원에서 추모 음악회가 열렸다. 첼리스트 한재민과 피아니스트 박재홍이 무대에 올랐다. 전년도인 4주기 음악회에는 피아니스트 조성진과 빈 필하모닉이 공연한 바 있다. 삼성 관계사 사장단이 한자리에 모이고, 미술관 전시가 이어지고, 해외 기증 행사가 기일 주변에 배치된다. 추도식은 단일 의례가 아니라 일주일을 아우르는 의례 주간이 됐다.
이것을 제사라고 불러야 할까. 정확히는 추도식이고 음악회다. 그러나 구조를 들여다보면 기제사의 핵심 요소가 모두 있다. 기일에 고인을 기억하는 것, 가족과 관계자가 모이는 것, 고인의 삶과 업적을 이야기하는 것. 그 형식이 제사상에서 콘서트홀로 바뀌었을 뿐, 의례의 뼈대는 동일하다. 그리고 이 의례에는 하나가 더 추가됐다. 관람자와 참여자가 생겼다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 언론, 심지어 일반 대중까지 이 의례의 주변부를 구성하게 됐다.
추도식의 공간도 흥미롭다. 수원 선영은 사가(私家)의 공간이지만, 미디어를 통해 공공의 장으로 전환된다. 인재개발원 콘서트홀에서의 음악회는 삼성이라는 기업의 공간이다. 이 의례는 사적 추모와 공적 퍼포먼스의 경계를 의도적으로 흐린다. 사적 가족 행사라는 보호막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공개적인 재계 이벤트로 기능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이 있다. 추도식이 열리는 동안, 그 참석 여부와 전달된 조화가 뉴스로 다뤄진다는 사실이다. 누가 왔고, 누가 조화를 보냈는지가 보도된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추도식 참석이 재계 관계의 표현이 됐다는 것이다. 기일에 선영을 찾는 것은 단순히 고인을 추모하는 행위가 아니라, 이재용 회장과의 관계를 가시화하는 행위다. 오지 않은 사람의 부재도 읽힌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재계를 아는 사람이 이런 글을 올렸다. "재벌가 기일에 간다는 건 다음 세대한테 줄 서는 거야. 추도식 참석 리스트가 곧 그 그룹의 인맥 지도야." 댓글에는 "그게 현대판 문상 정치 아니냐", "옛날 왕가에서 제삿날 신하들 얼굴 보는 거랑 같은 거" 같은 반응들이 달렸다. 이 글을 올린 사람이 업계 사람인지 아닌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이 인식 자체가 흥미롭다. 재벌 가문의 기일이 권력 관계를 확인하는 자리라는 감각이 이미 퍼져 있다는 것이다.
조선에서 현재까지 — 의례는 항상 계층화되어 있었다
이것은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의례가 계층에 따라 다르게 작동한다는 것은 조선시대부터 구조화되어 있었다. 그 역사를 이해하면 지금의 현상이 더 선명하게 보인다.
조선의 유교적 가례 체계에서 제례는 신분에 따라 규모와 형식이 달랐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이 정리한 기록에 따르면, 조상의 제사를 일반 서민은 부모에 한해서만 모시도록 되어 있었다. 반면 사대부가에서는 가묘(家廟)를 설치하고 4대조까지 봉사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주자가례에 기반한 이 체계에서, 사대부가의 제례는 단순히 조상을 기리는 것이 아니라 가문의 종법 질서를 재확인하는 장치였다. 사대부가마다 각각 가묘를 두고 종자(宗子)를 중심으로 조상과 후손을 연계하는 혈연적 가문의 종법 질서를 실현하려 한 것이다.
이 제례의 사회적 기능은 단순한 추모를 넘어섰다. 사대부가의 제례는 종족의 혈연적 유대감과 결속력을 주기적으로 강화하는 정치적 의례였다. 가묘를 가진 가문과 그렇지 못한 가문이 구별됐다. 4대를 봉사할 수 있는 가문과 부모에 한해 제사를 지내는 가문이 달랐다. 의례의 규모와 형식 자체가 사회적 지위를 표현하는 언어였다.
이것이 중요하다. 제례는 처음부터 평등한 의례가 아니었다. 계층에 따라 규모가 달랐고, 그 규모의 차이가 사회적 위계를 가시화했다. 제사상의 크기가 가문의 격이었다.
평민에게 제사는 부모를 기억하는 의례였다. 사대부에게 제사는 가문의 지속과 권위를 재생산하는 의례였다. 같은 이름의 의례가 계층에 따라 전혀 다른 기능을 수행했다.
흥미로운 것은 조선 후기다. 신분제가 흔들리면서 평민들도 4대 봉사를 일반적으로 행하게 됐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이 현상을 이렇게 기록한다. "신분에 따른 가정의례 절차의 엄격한 차등은 후기의 신분제도의 붕괴와 함께 제례에 한하지 않고 다른 의례에서도 점차 흐려지게 되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원래 사대부의 의례였던 것이 평민화됐다는 것이다. 상층의 의례 형식이 하층으로 내려오면서 확산됐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것은 그 역방향일 수 있다. 대다수의 제사가 소멸하는 동안, 특정 계층에서는 의례가 오히려 강화되고 공개화되고 있다. 의례의 계층화가 다시 일어나고 있다.
[데닛의 이론 — Cui Bono, 누가 이득을 보는가]
다니엘 데닛은 『Breaking the Spell』(2006)에서 종교를 밈의 관점으로 분석한다. 종교는 유전자처럼 숙주(인간)를 통해 복제·전파되는 문화적 밈이며, 그 생존 여부는 숙주에게 이득이 되는가로 결정된다. 이득이 없어지면 도태된다. 그리고 데닛이 종교 분석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질문이 있다. Cui Bono — 누가 이득을 보는가. 이 질문은 종교뿐 아니라 의례 전반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대다수 가정에서 제사가 사라지는 것은 이미 분석했다. 제사는 그것을 수행하는 사람들 — 주로 며느리와 장남 — 에게 이득보다 비용이 컸다. 이득이 없어지자 밈은 도태됐다.
그렇다면 재벌 가문의 추도식, 스펙터클화된 기일 의례는 누구에게 이득인가.
첫 번째 이득은 가문의 권위 재생산이다. 삼성 이건희 선대회장의 기일에 경영진 150여 명이 모이고, 세계적 연주자가 공연하고, 이건희 컬렉션이 해외 미술관에서 전시되는 것은 이건희라는 개인을 추모하는 동시에 삼성이라는 가문의 서사를 구성한다. 고인은 신성화되고, 그 신성화는 후계자의 권위를 강화한다. 이재용 회장은 이건희의 아들로서 그 서사의 중심에 위치한다. 추도식은 그것을 매년 반복하는 의례다.
두 번째 이득은 관계망의 공개적 확인이다. 누가 왔고 누가 조화를 보냈는지가 뉴스로 다뤄진다는 것은, 이 의례가 인적 관계를 공개적으로 배치하는 기능을 한다는 뜻이다. 조문이나 조화 전달은 단순한 예의가 아니라 '나는 이 가문과 관계가 있다'는 선언이다. 반대로 오지 않은 것도 메시지가 된다. 의례가 관계의 지도를 그린다.
세 번째 이득은 다음 세대로의 승계 정당화다. 가문의 창업자나 초대 총수를 해마다 대규모로 기억하는 의례는, 그 후계자가 그 유산을 이어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주장하는 행위다. 고인의 업적을 기리는 음악회와 미술 기증 전시는, 동시에 지금의 경영진이 그 유산을 계승하고 있다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이 세 가지 이득 — 권위 재생산, 관계망 확인, 승계 정당화 — 을 합산하면 재벌 가문에게 기일 추도식의 가치는 막대하다. 단순한 추모가 아니라, 해마다 치러지는 권력의 의례다. 의례의 비용이 의례의 효과로 정당화된다.
데닛의 언어로 말하면, 이 의례는 철저히 특정 숙주 — 재벌 가문 — 에게 이득이 되도록 설계되어 있다. 밈이 살아남는 이유가 명확하다. 이득이 있기 때문이다.
스펙터클의 조건 — 왜 지금인가
제사가 사라지는 시대에 오히려 일부 의례가 스펙터클화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여기에는 구조적 이유가 있다.
첫째, 자원의 문제다. 스펙터클화된 의례는 돈이 든다. 세계적 연주자를 초청하고, 국제 미술관에 컬렉션을 전시하고, 수십 명의 사장단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은 막대한 자원이 있어야 가능하다. 평범한 가정에서 제사가 '비용 대비 이득이 없어서' 사라지는 것과 정확히 대칭된다. 자원이 충분한 곳에서는 의례의 비용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둘째, 미디어의 문제다. 재벌 가문의 기일이 뉴스가 되는 것은, 그들의 움직임 자체가 사회적 관심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미디어의 주목이 의례를 스펙터클로 전환시킨다. 평범한 가정의 제사는 아무도 보도하지 않는다. 보도 자체가 없으면 스펙터클이 될 수 없다.
셋째, 이해관계의 문제다. 재벌 가문의 기일에 참석하는 경영진과 재계 인사들은 그 자리에서 각자의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 참석은 충성과 연대의 표현이고, 부재는 거리두기의 신호가 될 수 있다. 이 이해관계가 의례의 규모를 유지하게 만든다. 평범한 가정의 제사에는 이런 이해관계가 없다.
여기서 하나의 역설이 생긴다. 재벌 가문의 추도식에 참석하는 사람들 상당수는 의례 자체에 감정적 유대를 느끼지 않을 수 있다. 고인에 대한 진심 어린 추모가 아니라, 현재 권력자와의 관계 유지라는 실용적 목적이 참석의 동인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의례는 고인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생존자들의 관계 네트워크를 위한 것인가. 추모와 정치가 혼합된 의례다.
이 세 가지 조건 — 자원, 미디어, 이해관계 — 이 모두 충족되는 곳은 극히 한정적이다. 한국 사회의 최상층에 위치한 몇몇 가문들이다.
지갈라타스의 렌즈 — 비용 신호와 권력
인지인류학자 지갈라타스는 의례의 '비용 신호(Costly Signaling)' 이론을 제시한다. 의례에 투여되는 비용이 클수록, 그 의례를 수행하는 집단의 헌신이 더 강하게 입증된다는 것이다. 고통스럽고 값비싼 의례일수록 집단 결속이 강화된다. 비용이 진정성의 증거가 된다.
이 이론을 재벌 가문의 추도식에 적용하면 날카로운 해석이 가능해진다. 추모 음악회에 세계적 연주자를 초청하고, 경영진 150여 명을 선영으로 집결시키고, 해외 미술관에 컬렉션을 전시하는 것은 단순한 추모가 아니다. 막대한 비용을 투여함으로써 가문의 헌신과 권위를 증명하는 신호다. 규모가 클수록 더 강한 신호가 된다. 이 신호는 내부(가문 성원, 삼성 임직원)와 외부(재계, 언론, 대중) 모두에게 동시에 발신된다.
그런데 지갈라타스의 비용 신호 이론을 한국 제사와 재벌 가문 추도식에 적용하면 불편한 질문이 생긴다. 비용 신호가 정당하게 작동하는 경우는, 비용을 지불하는 사람과 이익을 보는 집단이 일치할 때다. 구성원들이 각자의 비용을 내어 공동체의 결속을 강화한다면, 그 의례는 공동체 전체에 이득이 된다.
그러나 한국의 제사가 지금까지 작동해온 방식, 그리고 재벌 가문의 의례가 작동하는 방식을 보면 이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다. 대다수 가정에서 제사의 비용은 며느리들이 졌고, 이익은 가부장제적 가문 구조가 취했다. 재벌 가문의 추도식은 삼성이라는 기업의 자원으로 운영되고, 이익은 이재용 회장을 정점으로 하는 가문의 서사와 권위로 귀속된다. 경영진 150여 명은 '참석자'이자 '관객'이다. 그들은 의례의 수행자가 아니라 의례의 증인으로 동원된다.
비용을 지불하는 자와 이익을 거두는 자가 다를 때, 의례는 착취의 장치가 된다. 다만 그 착취의 방식이 전통 제사의 며느리 노동과는 다른 형태일 뿐이다. 재벌 가문의 의례에서 착취되는 것은 노동이 아니라 충성과 관계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주목할 점이 있다. 재벌 가문의 추도식이 갖는 '비용 신호'의 효과는, 그것이 공개될수록 증폭된다는 것이다. 50명이 아니라 150명이 모였다는 사실이 보도될수록, 세계적 연주자가 등장하는 콘서트홀이 미디어에 노출될수록, 이 의례가 발신하는 신호는 더 강해진다. 비용의 크기가 헌신의 크기를 증명한다는 지갈라타스의 이론이 여기서 역설적으로 작동한다. 의례의 규모가 권력의 규모를 증명하는 것이다.
이것은 일반 가정의 제사가 아무리 정성스럽더라도 이 신호 경쟁에서 참여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규모의 의례는 규모의 자원이 있어야 가능하다. 의례가 권력의 언어가 될 때, 그 언어는 자원을 가진 사람들만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다.
두 갈래의 현실 — 숫자로 보다
지금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을 구조적으로 정리해보자.
한편에서는 성인의 55.9%가 앞으로 제사를 지낼 계획이 없다고 답했다. 1인가구는 전체 가구의 36.1%에 이른다. 화장률은 92.9%다. 사후 자신의 제사를 원하는 여성은 2.4%에 불과하다. 명절 차례를 지내는 비율은 10년 새 71%에서 40% 내외로 급감했다.
다른 한편에서는 재계 최상층의 기일 추도식은 해마다 규모가 유지되거나 커진다. 미디어의 주목이 쏠리고, 인맥 관계가 의례를 통해 공개적으로 확인된다. 음악회, 전시회, 기부 행사가 기일을 중심으로 배치된다.
이것이 의례의 분기다. 소멸과 강화가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이 분기의 기준선은 계층이다.
이 분기는 단지 추도 문화의 문제가 아니다. 더 근본적인 질문을 내포한다. 기억한다는 것, 조상을 추모한다는 것, 죽음 앞에서 모인다는 것이 계층에 따라 다르게 가능해지고 있는가.
재벌 가문의 추도식이 미디어를 탄다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그 가문의 기억이 공공재처럼 다뤄진다는 것이다. 이건희라는 개인의 기일이 경제 뉴스의 한 항목이 됐다. 반면 수백만 명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기일은, 가족 외에는 아무도 모른다. 기억의 공공성이 계층에 따라 나뉜다.
이것이 의례의 분기가 만들어내는 결과다. 사회는 어떤 사람의 죽음은 기억하고, 어떤 사람의 죽음은 잊는다. 어떤 가문의 의례는 보존되고 강화되며, 어떤 가문의 의례는 소멸한다. 이 선택의 기준은 혈통이나 덕성이 아니라 자원이다.
역사의 반복 — 조선의 계층화와 현대의 계층화
조선시대 유교적 제례는 원래 사대부의 의례였다. 평민은 부모에 한해서만 제사를 지낼 수 있었다. 사대부가의 4대 봉사, 가묘 설치, 종법 질서는 상층의 특권이었다. 그것이 조선 후기 신분제 붕괴와 함께 평민에게 확산됐다. 상층의 의례가 민주화된 것이다.
지금 역방향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의례의 민주화가 아니라 의례의 귀족화다. 대다수의 가정에서 제사가 소멸하는 동안, 최상층에서는 의례가 강화된다. 한국 사회에서 '제사를 지낸다'는 것이 점점 더 소수의, 자원이 집중된 집단의 특징이 되어가고 있다.
이것은 조선 초기의 구조와 닮아 있다. 아니, 정확히는 조선 초기로 돌아가고 있다. 제례는 사대부의 것이었다. 지금의 스펙터클화된 의례도 자원과 권력을 가진 가문의 것이다.
그 사이에 대다수의 사람들이 있다. 제사를 그만뒀지만 기억하고 싶은 사람들, 형식은 사라졌지만 의미를 찾고 싶은 사람들. 기일에 봉안당을 찾았다가 편의점에서 혼자 술 한 잔 사온 사람들. 이들에게 의례의 빈자리가 있다.
이 빈자리가 그냥 비어있는 것이 문제다. 의례의 귀족화는 모든 사람의 의례가 귀족화되는 방향이 아니라, 의례를 가진 자와 의례를 잃은 자로 사회가 나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17회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 의례의 분기가 결국 기억의 불평등이라는 것.
그 빈자리를 스펙터클이 채워주지 않는다는 것, 오히려 그 빈자리를 더 선명하게 만든다는 것이 17회의 결론이다. 의례가 분기된다는 것은 단순히 추모 방식이 달라진다는 뜻이 아니다. 기억의 불평등이 구조화되고 있다는 뜻이다.
한 사회에서 어떤 사람이 기억되고 어떤 사람이 잊히는가. 어떤 죽음이 의례를 통해 반복적으로 기억되고, 어떤 죽음은 가족 외에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가. 이 불균형은 그 사회의 권력 구조를 정확히 반영한다.
의례는 항상 사회의 거울이었다. 조선에서 사대부의 가묘가 권력의 물질적 표현이었듯이, 오늘날 재벌 가문의 추도식이 권력의 의례적 표현이다. 다만 지금은 그것이 뉴스로 중계된다. 모두가 볼 수 있다. 보이는 것이 씁쓸함을 만든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40대 남성이 이런 글을 올렸다. "뉴스에서 이건희 추도식 보면서 우리 아버지 기일이 생각났다. 나는 혼자 봉안당 갔다 왔는데. 뭔가 씁쓸하더라. 아버지를 기억하는 방식이 가진 것에 따라 이렇게 달라야 하나 싶어서." 이 글에 달린 공감의 숫자가 많았다. 이 감각 — 기억의 방식이 계층에 따라 달라지는 것에 대한 씁쓸함 — 이 퍼져 있다는 뜻이다.
스펙터클의 이면 — 의례의 공백은 채워지지 않는다
스펙터클화된 의례는 하나의 현상이다. 그러나 그것이 대다수의 빈자리를 채워주지는 않는다.
이건희 추도식의 스펙터클은 삼성이라는 특정 가문의 의례적 필요를 충족시킨다. 그것이 의례의 공백을 겪고 있는 수백만 명의 보통 사람들에게 어떤 대안도 제공하지 않는다. 오히려 의례의 계층화를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제대로 된 추모는 돈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인식을 강화할 수 있다.
실제로 한 온라인 커뮤니티의 글에서 이런 반응이 나왔다. "뉴스에서 이건희 추도식 보면서 우리 아버지 기일이 생각났다. 나는 혼자 봉안당 갔다 왔는데. 뭔가 씁쓸하더라. 아버지를 기억하는 방식이 가진 것에 따라 이렇게 달라야 하나 싶어서." 이 글에 달린 공감의 수가 많았다. '기억의 방식이 계층에 따라 달라지는 것에 대한 씁쓸함'이라는 감각이 퍼져 있다는 뜻이다.
이 씁쓸함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다. 의례의 계층화가 이미 사회적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이다. 조선시대에 평민은 사대부가의 제례를 보지 않았다. 지금은 미디어가 그것을 모든 사람에게 보여준다. 보이지 않던 계층 차이가 이제 매년 기일마다 뉴스로 반복 가시화된다.
한편으로는 이런 질문이 생긴다. 의례의 스펙터클화가 의례에 대한 일반적 관심을 높일 수 있는가. 이 음악회와 전시가 '조상을 기억하는 문화'에 대한 사회적 성찰로 이어질 수 있는가. 아직은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증거가 없다.
데닛의 Cui Bono 질문으로 돌아오면 의례의 스펙터클화는 재벌 가문에게 이득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이득인가. 그렇지 않다. 이득의 수혜자가 극도로 제한된 의례는, 밈 이론의 관점에서는 '기생적' 의례다. 숙주인 사회 전체로부터 주목과 자원을 흡수하지만, 그 이득을 사회로 돌려주지 않는 의례다.
그렇다면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이득이 되는 의례, 즉 의례의 공백을 채울 수 있는 새로운 형식은 무엇인가. 이것이 18회로 가는 질문이다.
[데닛의 이론 요약 — 의례의 귀족화와 민주화]
데닛의 밈 이론을 의례에 확장하면, 의례는 세 가지 방식으로 숙주와 관계를 맺는다. 기생자, 편리공생자, 상리공생자다.
기생자 의례는 숙주로부터 자원을 흡수하지만 아무것도 돌려주지 않는다. 사회 전반에서 주목을 끌고 자원을 동원하지만, 그 이익이 극소수에게만 귀속되는 의례다.
편리공생자 의례는 주로 한쪽에게만 이득이 되지만, 다른 쪽에게 해가 되지는 않는다.
상리공생자 의례는 수행자 모두에게 이득이 되는 의례다. 집단 결속, 정체성 부여, 불안 완화라는 지갈라타스의 세 기능을 고르게 분배한다.
지금 한국에서 의례의 분기점은 이 세 유형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다. 소멸하는 제사는 며느리들에게 기생자였던 의례다. 스펙터클화되는 추도식은 편리공생자에 가깝거나 특정 계층에게는 상리공생자다. 그러나 대다수에게 의례의 공백이 생긴 지금, 상리공생자 의례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가 진짜 질문이다.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이 있다. 의례의 공백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진짜 무엇을 원하는가. 이미 16회에서 살펴봤듯이, 많은 사람들이 제사 자체가 아니라 '기억하는 시간'을 원한다. 형식이 아니라 기능이다. 모이는 장치가 아니라 연결의 경험이다. 복잡한 제사상이 아니라 고인을 이야기하는 자리다.
이 욕구는 계층을 가리지 않는다. 재벌 가문의 추도식과 봉안당 앞 편의점 소주가 같은 욕구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그 욕구가 실현되는 방식은 극단적으로 달라졌다.
이 격차를 어떻게 좁힐 것인가. 더 정확히는, 자원이 없어도 가능한 의례는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는가. 이 질문이 18회로 향하는 문이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화장이 그 가능성의 단서일 수 있다. 유골은 움직일 수 있다. 특정 장소에 고정되지 않는다. 봉안당이 아니어도 된다. 선영이 없어도 된다. 고인을 기억하는 자리가 어디서든 만들어질 수 있다면, 의례는 자원보다 의지가 만드는 것이 될 수 있다. 그것이 의례의 귀족화에 맞서는 유일한 방향이다.
이 질문에 도전하는 시도들이 있다. 화장의 시대, 유골이 이동하는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형식의 추모들이 조금씩 등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