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금요일 1
박 노 빈
명자꽃이 필 무렵이면 동네 처녀들이 바람이 난다
바람난 방자가 이도령보다 위험할까
오늘밤 클럽에서 춤추는 이도령과 춘향이
눈이 맞아 이글이글 타는 명자꽃, 새빨갛게 불타오르는 초여름 날씨
아 바커스의 축제다 웃는 죄 밖에 없으니, 하늘을 원망치 말고
포도주를 조심하고 코로나 시국에도 멈추지 못한 광란의 춤을 조심
백화난만한 이때, 총각이던 내 맘조차 싱숭생숭하던 날
진달래꽃불에서의 불상사
나에게도 감출 수 없는 것이 들불처럼 번지던 날의 참담한 굴복이여
해마다 그 넓은 붉은 산을 허위허위 넘으며 딛는 찬란한 슬픔의 굴레
남정네들은 왜 이다지 머리보다도 먼저 일어서는 죽순을 가져야만 하는가
이 면벽승의 가슴에 비산하는 불씨와 강풍을 몰아치는가
불타는 금요일 2
박 노 빈
명자꽃잎처럼 찬란한 목숨이 자지러지는
(‘늙은 군인의 노래’. 이 노래도 '아침 이슬'처럼 김민기 작사 작곡이 아닌가)
혁명의 봄날, 오랑캐들은 하필이면 오늘
(나 태어난 이 강산에 군인이 되어)
불살라진 춘심을 진달래꽃 더미, 엄폐물로 가렸으나
(꽃 피고 눈 내리길 어언 삼십 년)
아 장끼의 저 오색 찬란한 궁뎅이
(나 죽어 이 강산에 묻히면 그만이지)
어여쁘디 어여쁜 조선 아가씨들이 봄볕에 올올이 드러나는
(아 다시 못 올 흘러간 내 청춘)
자기의 춘심을 겨누던 호밋날이 캐내던 허연 도라지 뿌리
(푸른 옷에 실려 간 꽃다운 이내 청춘)
녹둔도와 두만강 너머가 아무리 산 너머 남촌이라해도
김종서 이순신 이성계 장군들께 감히
(꽃 피어 만발하고 활짝 개인 그날을)
자녀가 공부하는 모습을 보고, 가족들이 삼삼오오 손잡고 집으로 간다
외동딸은 엄마와 손잡고 가고 아빠는 책가방을 들고 앞장서서 걸을 때
뽐내며 으쓱으쓱 기분 좋게 벚꽃 흩날리는 길을 걷는다
목련 겹홍매화 앵두 조팝 수선화 산수유 팬지 피튜니어 장미 매화 개나리 진달래 연초록 가로수 버들 깨꽃 할미꽃...... 기화요초
미친 날씨를 보여주는 오후 두 시, 한봄의 햇살이 신도시에 가득하다
(푸른 하늘......푸른 모자 걸어가네......우리 손주 손목 잡고 금강산 구경일세)
불타는 금요일 3
박 노 빈
육년 동안 닫았던 입을 여니까
출가외인 딸과 아내와 집 근처 식당에 간 것이 큰 의미다 반계탕에
산양삼에 헛개나무 차에 총각김치를 먹으며
식당 홍보과장을 자처하고 사진을 찍다
값이 착하디착한 마트에서, 내년까지도 먹을 수 있는 맛난 우유 세 개
반값도 안 되는 깡통커피, 달콤하면서 진한 토마토 주스 두 개
계란과 시금치를 많이 사서, 왼 종일 잡은 물고기를 나누듯 행복을 노나주다
윤대통령의 탄핵까지 이어진 긴 드라마를 보느라 그랬는지
자동차 등이란 등은 죄 외눈박이
오늘도 우후죽순처럼 새로운 잠룡들이 유월 삼 일을 향해 출사하고 있다
트럼프는 바다 건너에서 기관단총을 걸고 수많은 표적을 향해 수많은 총알을
탄피 회수의 겨를도 없이 숨 쉴 새 없이 속사포로 쏘아댄다 세계를 향해
한 카페에서 삼일절 직전에 이광수가 외쳤던 2.8 독립선언서를
소리내 읽어보니, 일인들 간담에 서늘하게 명중했을 천재의 붓끝이 날카로웠다
불타는 금요일 4
박 노 빈
반바지 바람에 시뻘건 다리들 책상다리를 하고
파고라에서 핸드폰 삼매경이다
봄 아가씨들 여럿 벚꽃 밑에서 삼삼오오 사진 찍더니 자사자찬
거울에 빠져있다 나는 점퍼를 벗고 올 들어 처음으로 반팔 차림으로
벚꽃 속 신선경에서 허리돌리기를 한다, 오디세우스 귀에 쟁쟁한 세이렌의 노래를 들으며
계단을 겅중겅중 뛰어오른다, 참꽃 세상을 향해
참꽃이 먹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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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재, 정세훈 및 외 8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