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
박 노 빈
내 안에 호스가 산다
내가 눈 긴 뱀을 본다
살찐 장어다
유정을 찾기 위해 박은
유전공 파이프에서 나오는 지층 샘플링이다
진화의 샘에 박은 긴 파이프다
얕은 바다 단세포 박테리아로 시작해서
양수에서 헤엄치는 올챙이 모양 물고기로 살다가
물과 뭍을 오가는 개구리로 살다가 드디어 뱀이 된
서늘한 비늘 밑 피가 내 몸에
똬리를 튼 흔적이다
내 몸에는 사람도 삼키는 아나콘다가 살고 있다
나는 통각세포가 없는 물고기다
목소리만 크면 인기가 좋은 수개구리다
생명부터 시작된
어미들의 끝없는 다산의 수련
바오밥나무처럼 거대한 불멸의 뿌리를 뻗어
가녀린 유한의 존재들을 파먹는 이기적인 분자들
진화의 긴 터널 속에 품었다가
죽음이 배를 훑고 지나기 전
죽은 뱀의 입에서 뛰쳐나가는 개구리처럼
생명에서 생명으로 건너뛰고
빙하기에는 열목어로 살아남는다
영생불멸의 주인, 이기적인 DNA를 싣고
진화의 레일을 지향 없이 달리는 하루살이 로봇이여*
* “우리는 유전자로 알려진 이기적인 분자들을 보존하기 위해 맹목적으로 프로그램된 로봇 운반자들이다.” - [이기적 유전자](리처드 도킨스, 홍영남․이상일 옮김, 을유문화사, 2012.) 초판 서문 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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