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평범한 미라클 하루

2. 읽기

by 호모 비아토르


나는 책 읽기를 좋아한다. 좋아하는 것과 책을 꾸준히 읽는 것은 다른 부분이다. 어떤 사람은 취미란 독서라고 쓰지만 정작 일상에서는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2019년 국민 독서 실태조사’에 따르면 성인의 종이책 연간 독서율은 52.1%, 독서량은 6.1%로 해마다 독서율이 줄어들고 있다. 또한 성인 중 48%가 1년 동안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 걸로 나왔다. 책을 읽기 어려운 이유로 ‘책 이외의 다른 콘텐츠 이용’이 가장 많았고 그다음으로 ‘시간이 없어서’이다. 문체부 관계자는 “스마트폰 등 디지털 환경의 매체 이용 다변화가 독서율 하락의 주요 원인 중 하나임을 보여준다.
은정진, “성인 48% 1년 동안 책 한 권도 안 읽어... 작년 독서량 6.1권”,
「한국경제」, 2020.3.12.


책을 읽는 것은 선택이다. 그러나 독서율이 해마다 낮아지고 있다는 것은 슬프다. 왜 그런 감정이 들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아마도 책을 읽음으로써 사람에게 주는 유익이 큼에도 그것을 누리지 못하는 개인이 많아지는 것이 슬픈 이유일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언제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을까? 책상 앞에 앉아 나 자신의 세계로 들어간다. 때는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부산에 처음 전학을 와서 학교 적응에 어려움이 있었다. 그때 바로 뒤에 앉았던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하얀 피부에 신체적으로 약해 보였고 말이 없었다. 그 친구가 늘 가까이했던 것이 책이었다. 점점 그 친구와 친해지게 되었다. 사춘기 시절인 중학교 2학년부터 친구가 추천해주는 책을 읽었다. 그 친구와의 수다를 통해 책을 읽으면 아는 것이 많아진다는 것을 알았다. 점차 책과 친해지기 시작했고 읽는 속도는 느렸지만 꾸준하게 독서를 했다.


첫 시작은 그냥 내가 읽고 싶은 책에서부터 시작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지금까지 책은 늘 내 옆에 있다. 그 친구 역시 내 옆에 있다. 최근에 그 친구에게 물어보니 자신의 영향을 받아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두 명 있는데, 그 두 명이 나와 자신의 친오빠라고 한다. 정작 자신은 어린 시절부터 대학 때까지 책벌레라 일컬을 정도로 책을 읽었는데 지금은 술과 친구를 더 좋아한다고 한다. 웃긴 일이다. 책을 열심히 읽었던 친구는 더 이상 책을 읽지 않고 그녀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여전히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 그 친구는 지금까지 묵묵히 내 옆에 있어주었고, 책이란 존재를 인식시켜 주어서 고마움을 느낀다.


나는 어떻게 책을 읽을까? 직장생활을 할 때 대부분 일과 관련된 정신건강과 심리학 관련 책을 읽었다. 그 책에서 필요한 부분을 발췌해서 프로그램 매뉴얼을 만드는데 활용했다. 그 당시 좋은 문장은 사람을 살리는 특효약처럼 느껴졌다. 휴직 후 본격적으로 나는 도서관에 일주일에 한 번 출근을 했다.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더더욱 도서관을 사랑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여성은 쇼핑을 좋아한다고 한다. 나는 이상하게도 쇼핑을 하면 머리가 아프다. 그래서인지 외모 꾸미기는 빵점이다. 그런데 도서관에 가면 진짜 이 세상에서 가장 가지고 싶은 종류의 것들이 다 진열된 백화점처럼 느낄 때가 많다. 다 읽고 싶은데 내 머리는 이것을 다 소화하기엔 한계가 있다. 그래도 꾸역꾸역 다 읽지도 못할 10권의 책을 최대 대여기간인 3주 동안 빌린다.


그 기간 내에 읽을 수 있는 독서량은 얼마나 될까? 평균적으로 한주에 1~2권이다. 그렇다면 3주 동안 최대 읽어도 6권인데 그렇게 읽지 못할 때도 많다. 그럼 평균적으로 3주에 4권으로 치자. 나머지 6권은 다 읽지 못한 채 반납이다. 그래도 따끈한 책을 빌리고 반납하는 무수한 행위가 내게는 행복이고 즐거움이다. 어떤 것을 선택하고 책을 읽다가 중간에 덮을 때도 많다. 그것이 시간낭비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 그 과정이 즐거움이었다.


요즘 나는 어떤 책을 읽고 있을까? 주로 내 손에 잡히는 것은 심리학과 정신건강 분야이다. 읽으면 읽을수록 더욱 미궁에 빠지면서 내가 이렇게 이 분야를 모르고 있었나? 새록새록 나의 무지를 깨닫는다. 그래서 다른 분야로 도전을 해보려다가도 여전히 그 분야 앞에 서성이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아는 만큼 겸손해지고 고개를 숙인다는 말이 이해가 가는 시점이다. 100에서 2 정도 알 때는 마치 내가 100을 아는 것처럼 교만했다. 진짜 혼자만의 착각이었다. 100에서 5 정도 알게 되니 내가 정말 모르는 게 많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낀다. 마치 깊은 우물에서 물을 끌어올리는데 끊임없이 샘물이 솟구쳐서 그 끝을 알 수 없는 느낌이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더 겸손해지고 배우려는 자세를 갖추게 되는 것을 느낀다.


나는 어떻게 책을 읽을까? 일단 책 옆에는 다이소에서 산 저렴한 1,500원짜리 메모장과 삼색 볼펜이 있다. 책을 읽으며 꼭 간직하고 싶은 문장은 필사를 한다. 때로는 필사하는 시간 때문에 책이 더디 읽힌다. 더디 읽히는 책은 내 마음에 쏙 드는 책이라 필사 양이 많다. 책을 읽을 때 책의 종류에 따라 책에서 각기 다른 향기가 난다. 어떤 책은 책 서두만 읽다가 덮으며 나와 맞지 않는 향기를 느낀다. 또 다른 책은 문장 하나하나가 내 마음에 와닿아 소중히 간직하고 싶고 문장을 되새김질하며 향기를 음미할 때도 있다.


책을 읽으면서 나의 특기를 발견하게 된다. 영화나 책에서 마음에 와닿는 대사 혹은 문장을 기록해둔 습관이 있다. 나는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할 때나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그 좋은 대사와 문장을 삽입시킨다. 나를 아는 몇몇 사람들은 어떻게 그 문장을 기억해서 자신의 말로 표현할 수 있냐고 묻는다. 그런데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대화를 하다 보면 이 상황에서 이 문장을 넣어서 말을 하면 좋을 거라는 촉이 온다. 그러면 그 촉에 의해서 말을 하게 된다. 결국은 독서를 통해 말하기가 좋아지는 모습을 발견한다. 그런 유익이 아니더라도 책은 늘 내 옆에 있고 부담 없는 친구 같은 존재이다. 내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외로울 때나 내 옆에 있다. 그리고 내 기분에 따라 동요되지 않고 자기만의 세계를 나에게 보여준다. 지금 감정과 상관없이 책의 세계 속에 빠져들어 또 다른 가상세계를 탐험한다. 어찌 보면 회피라고 볼 수 있지만 나는 치료이고 힐링이라고 본다.


책은 주로 식탁 위에 놓여 있다. 식사를 할 때를 제외하고는 내 전용공간은 식탁이다. 아이들이 등교하고 난 후 거실 창을 통해 따뜻한 햇살이 비추면 믹스커피 한잔과 함께 책을 펼친다. 그 순간은 어느 영화 제목처럼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라는 문장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인생에 행복이 무엇일까?를 묻는다면, 나는 조금 단순하게 말하고 싶다. 그냥 지금 이 순간 소소하고 소박하게 내가 하고 싶은 활동을 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 활동 중 하나가 독서이다. 내 건강이 허락해주고 나이 들어서도 시력이 확보된다면 노년에도 책과 함께 늙어가고 싶은 소망이 있다. 오늘도 내 옆에 책이 있어서 충만하고 풍족한 삶을 살 수 있음에 감사하고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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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빌린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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