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글쓰기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이다. 3학년 때부터 4학년 1학기까지 숙제로 일기를 썼다. 2학기부터는 일기가 숙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일기를 썼다. 검사하지 않는 숙제임에도 일기를 왜 썼는지 그 이유는 기억나지 않는다. 글쓰기를 잘하는 것도 아니라 글쓰기에서 상을 받은 적도 없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 한 명이 내게 지금까지 쓴 일기장을 다 가지고 와서 담임선생님께 내라고 했다.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은 일기상을 주려고 하니 반에서 매일 일기를 쓴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반에서 내가 매일 일기를 쓴다는 것을 아는 친구가 있어 선생님께 알려 일기 상을 받게 되었다. 글을 잘 쓰지 못해도 일기를 꾸준하게 쓰는 것만으로도 상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후에도 일기 쓰기는 꾸준하게 계속되었다. 나만 알고 나만 보는 비밀의 공간이었다.
일기를 썼지만 그것은 글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진짜 글을 잘 쓰고 싶은 것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내 손으로 직접 글을 써보고 싶은 소망이 있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일기를 쓰고, 책을 읽고 필사를 하며 조금의 위안을 얻었다. 그러나 글을 쓰는 것은 멀게 만 느껴졌다.
2021년 4월 말에 도서관에서 하는 온라인 글쓰기 강좌를 처음 신청하게 되었다. 그 수업을 계기로 네이버 카페에 가입해서 글을 쓰게 되었다. 처음에 내가 쓰는 글이 제대로 써지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글을 다른 사람들 앞에 내놓기가 부끄러웠다. 그러나 김유진 선생님의 지지와 힘을 얻어 점차 다른 사람의 시선을 뒤로하고 용기를 내어 글을 공개하게 되었다. 그때의 짜릿함과 떨림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그 첫 용기가 지금까지 꾸준하게 글을 쓸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었다.
글쓰기를 하며 욕심이 생겼다. 오래전부터 스스로 느낀 게 하나 있었다. ‘탁월함은 없지만 성실함과 책임감은 자신 있다.’는 것이었다. 글쓰기에서도 그런 나의 주특기가 발휘될 수 있기를 희망했다. 주위에서 탁월하게 뭔가를 잘하는 사람을 부러워했다. 어느 순간 탁월함을 가질 수 없다면 그것을 가지려고 노력하기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해보자라고 방향을 전환했다. 그것이 성실함과 책임감이었다. 그런 나의 특기를 현실화하는 것은 꾸준함이었다. 솔직히 나의 특기라 하더라도 하고 싶지 싫은 날은 부지기수이다. 다만 그 마음마저 고쳐먹고 매일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노력하는 태도이다. 하루 일과 중 우선순위에 글쓰기를 두었다. 아이들을 등교시킨 후나 중요한 약속을 가진 날을 제외하고는 글을 쓴다. 어느 날은 글이 술술 잘 써지는 날이 있고, 또 어느 날은 노트북 앞에서 한 문장도 제대로 써지지 않아 씨름을 한다. 그래도 일단 의자에 앉는다.
계속해서 글을 꾸준하게 쓸 수 있던 계기는 무엇일까? 그것은 네이버카페에서 진행하는 매달 글쓰기를 신청하는 것이다. 매일 주어진 미션에 따라 글쓰기를 완료하면 된다. 처음에는 쉬운 듯 보이나 매일 쓴다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작업이 아니었다. 그래도 같이 글을 쓰는 동기들이 있어 다시금 힘을 얻었고 동기들의 댓글에 한 번 더 위로를 받으며 글을 쓰게 되었다. 그렇게 9월, 10월, 11월 연속으로 매일 글을 썼다. 12월은 주제를 정해서 글을 적어보기로 했다. 그 글이 지금 쓰는 이것이다. 처음 어떤 주제로 글을 써야 할지 고민을 했다. 고민 끝에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것을 쓰기로 했다. 나의 일상을 주요 테마로 나누어 적기로 했다. 매번 글을 써야 하는 주제 앞에 조금은 망설이고 힘든 부분이 있다. 그래도 한번 시작된 글은 끝까지 써보고 싶다. 그 글이 엉망진창으로 보일지라도 말이다.
글쓰기를 처음 했을 때 그 주제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다. 육아휴직 전과 후의 삶을 썼다. 정말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그러나 그 말을 누군가에게 토해내듯 다 할 수가 없었다. 주위 사람들이 내 상황과 입장을 전적으로 이해할 수 없을 것이고 내 이야기를 쏟아내는 것은 이기적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내가 어떻게 살아왔고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말하고 싶었다. 내 밑바닥에 끊고 있는 감정 덩어리를 끄집어내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글을 썼다. 쓰고 나니 과거와 현재, 미래의 상황이 정리되었다. 그리고 밑바닥 속의 감정 덩어리가 눈앞에 드러났고 직접 대면하게 되었다. 아프고 속상하고 아쉽고 기쁘고 감사하고 얼기설기 얽힌 감정이 있었다. 글을 쓰면서 불완전한 나 자신을 직면할 수 있었다. 그것은 내 존재와의 대면이었다. 조용하고 고요한 가운데 마주친 내 모습이었다.
글쓰기는 나와 마주하는 시간이다. 내가 누구인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그리고 지금 무엇에 관심을 쏟고 있는지 나를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다. 그래서 하루 중 나만의 시간 가운데 글쓰기가 들어간다. 다른 사람 앞에서 잘 보이지 않아도 되고, 꾸미지 않아도 되는 이 시간이 좋다. 오로지 노트북과 믹스커피, 물 한잔이면 준비가 끝난다. 때로는 이렇게 글을 쓰다가 할 말이 떨어지면 어떻게 하지? 걱정되는 순간이 있다. 글을 쓴지도 얼마 안 된 내가 할 걱정은 아닌데도 말이다. 그만큼 글을 계속 쓰고 싶은 욕심이 있다.
오늘도 등교를 하지 못한 두 아이들과 하루 종일 집에서 뒤엉켜 지내면서도 여유가 생기면 생각나는 것이 있다. 침대에서 눕는 것도,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것도 아닌 글쓰기이다. 서둘러 노트북을 켜고 자리를 잡는다. 할 말이 없을 것 같은데 막상 키보드에 손이 올라가면 기다렸다는 듯이 손이 글을 만드는 것인지 뇌가 글을 만드는 것인지 모를 정도로 글을 써 내려간다. 그렇게 글이 잘 써질 때면 마치 또 다른 내가 지금 여기에 있는 것 같다.
글쓰기를 시작했을 때 내 이름으로 된 책을 꼭 출판하고 싶다는 것에만 초점이 맞춰졌다. 아래의 글쓰기 명언을 보고 지금은 그 초점을 바뀔 수 있었다.
“가능한 한 자주 글을 써라. 그게 출판될 거라는 생각으로 가 아니라, 악기 연주를 배운다는 생각으로”
영국 작가 J.B. 프리슬리
이 명언을 나에 맞게 해석했다. “가능한 한 매일 글을 써라. 그것으로 책을 낼 거라는 목표가 아니라, 새로운 길을 걷는다는 생각으로”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고, 매일 길을 걷는 마음으로 글을 쓰면 꾸준하게 그 길을 갈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당신 앞에 누군가에게 이야기한다고 상상하고, 그가 지루해 떠나지 않도록 하라.”
미국 소설가. 제임스 패터슨
오늘도 내 앞에 누군가에게 말을 건다. 아직까지는 하고 싶은 말이 많다.노트북 앞에서 글과 대화를 주고받는다. 할 수만 있다면 그리고 상황과 여건이 된다면 글쓰기와 함께하는 삶이 되었으면 좋겠다. 글쓰기는 나를 치료해주고 회복시켜주고 쉬어가는 공간이 되어주기에 늘 내 삶에 한 부분을 차지해주길 희망한다. 그러기 위해 오늘도 나는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