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평범한 미라클 하루

4. 청소하기

by 호모 비아토르

서툴러도 이렇게 서투를 수 있을까? 그것이 집안일이다. 결혼하기 전까지 내 방 청소와 정리는 친정아빠의 몫이었다. 나는 아침에 늦잠을 자고 아빠가 갈아준 과일주스를 마시고 헐레벌떡 집을 나서기 일쑤였다. 결혼하기 전까지 청소, 세탁기, 손빨래 하나 안 한 공주로 살았다. 그것이 당연한 것처럼 느꼈다. 그러나 결혼을 하고 나서 서투르게 집안일을 조금씩 시작했다. 초보주부의 삶이었지만 일을 하고 있었던 터라 조금은 용서가 되었다. 첫째 아기를 출산하고 시댁 부모님들과 같이 살면서 기존에 집안일도 거의 하지 않았다. 이후 주말부부로 살면서 직장생활을 했지만 정신없이 돌아가는 하루에 제대로 된 청소를 한 기억은 없다. 그저 아기 양육과 직장생활이 다였다.

본격적으로 집안일을 하게 된 건 2017년 12월 육아휴직을 하고부터이다. 결혼 8년 차에 접어든 시점이다. 아무것도 못하는 내가 집안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새로운 세상이었다. 주로 핸드폰에서 검색하고 터득해서 한 가지씩 내 손에 익혀갔다. 뒤돌아보니 내가 집안일을 못한다는 이유로 정리정돈을 하지 않아 집안이 엉망이었다. 옷, 물건 정리부터 시작해서 식재료들 중 냉동고 깊은 안쪽에서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이 묵은 김치처럼 오래도록 묵어가고 있었다. 그 찰나인 2018년 1월 말 우리는 새로운 보금자리로 이사를 했다. 이사하기 두 달 전부터 정리정돈에 들어가고 버리기를 시작했다. 지금까지 당연한 것처럼 집안을 차지하고 있던 물건들이 어느 순간 버려야 할 존재로 여겨졌다. 그전까지는 버리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다. 그때 처음 내가 아끼던 책을 버렸다. 2년 이상 읽지 않은 책을 책꽂이에서 찾아 비우기 시작했다.

청소에 대한 사전적 정의는 더럽거나 어지러운 것을 쓸고 닦아서 깨끗하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 나에게 청소는 쓸고 닦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청소는 물건을 정리 정돈하고 제자리에 두는 것부터 시작된다. 늦은 나이에 청소의 의미를 알았다. 이때부터 청소를 할 때 집안 창문을 다 열고 물건 제자리 두는 것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알집매트를 다 일으켜 세워 먼지를 털었다. 빗자루로 큼지막한 쓰레기를 대충 쓸었다. 드디어 청소기를 들고 온 집안 구석구석을 밀고 다녔다. 마지막으로 막대걸레를 들고 닦는다. 선반 위 먼지는 매일 닦지 않는다. 먼지가 눈에 보일 때마다 수시로 닦아낸다. 제일 하고 싶지 싫은 청소는 화장실 청소이다. 변기는 자주 청소하지만 바닥 물 때 청소는 왜 이렇게 싫을까? 그리고 실리콘에 붙은 곰팡이 제거도 아이들이 등교하면 마음을 굳게 먹고 제거작업을 한다. 뭐 하나 쉬운 일이 없다. 직장 생활할 때는 직장일이 제일 어려운 것처럼 느꼈다. 집안 청소를 하면서 집안 청소가 제일 어렵게 느껴진다. 더구나 집안일은 안 하면 티가 확 나고, 해도 그 자리다. 성취와 보람을 못 느낄 수 있다.


과거 학생 시절 전공수업을 들을 때 ‘상황 속의 인간’이란 말을 떠오른다. 인간은 그 상황 속에 존재하고 적응해서 살아간다. 나 역시 이제는 주부로서의 보람과 만족을 찾고 있다. 누가 알아주고 인정해주지 않아도 청소를 하고 나면 어질러진 내 머릿속이 정리된 것처럼 기분이 상쾌하고 시원하다. 아이들이 오면 다시 엉망이 될지라도 말이다. 다만 아이들 방을 청소하고 나면 바로 엉망이 되는 경우가 잦아 머리가 아플 때가 있다. 한편으로는 아이들의 특성이란 게 있고, 하루 TV 시청 30분과 핸드폰이 없다는 것을 감안하면 아이들이 방안의 모든 물건을 다 꺼내놓더라도 이해하는 것이 맞겠다는 생각도 든다.


조던 피터슨의 ‘12가지 인생의 법칙’에서 ‘세상을 탓하기 전에 방부터 정리하라.’는 문장을 읽었다. 뒤통수를 탁 맞는 느낌이었다. 세상과 남 탓을 할 시간에 자신의 주변을 살피고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책을 읽고 나서 매일 반복되는 사소한 일상에 의미가 더해졌다. 내가 하는 작은 행동이 그냥 행동이 아니라 커다란 사건이 될 수 있었다. 그렇게 청소가 나의 마음을 살피고 점검하는 의미 있는 시간으로 바뀌었다. 신기한 일이다. 그전에는 그저 청소라는 단어로만 끝났던 행위가 이제는 뭔가 특별한 의미가 더해져 삶을 충만하게 해 주었다. 그렇다고 청소가 매일 즐겁지 않다. 청소하기 싫을 때도 있다. 그런 때는 대충대충 설렁하게 하고 넘어간다.

집을 꾸미고 장식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집안은 단순하고 소박하고 깔끔한 것을 원한다. 그래서인지 집안 분위기는 아주 단순하다. 구입했던 소파도 2주 만에 팔았다. 아이들이 하루 TV 시청 30분 외에는 사용하지 않아서 처분했다. 어른들은 TV를 전혀 보지 않기에 소파의 활용성이 떨어진다. 그리고 구입했던 2주 동안 이유 없이 소파에 드러누워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나의 생활패턴은 잠이 오거나 아프면 침대에 눕고 그렇지 않을 땐 식탁에 앉아 책을 읽거나 글을 쓴다. 그것도 아니면 집 밖에 나가 움직인다. 사람들은 이런 나를 참 불편하게 산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삶이 약간은 불편해야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건강하다고 생각한다. 일부러 약간의 긴장, 스트레스, 불편함을 주려고 일상에 장치를 해놓는 셈이다.


휴직 이후 청소는 깨끗한 가족의 공간을 만들기 위한 나의 고정 루틴이었다. 그러나 어느덧 돌아서서 생각해보니 이것은 나의 공간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편안함을 누리기 위한 소소한 노력이었다. 아이들은 하교 이후 깨끗하게 정리된 공간에서 다시 물건을 다 끄집어내서 자신들의 세상을 만든다. 이곳저곳 책이 너부러져 있고, 여러 종류의 블록들이 거실, 아이들 방에 나뒹구는 상태이다. 매일 아침 의식처럼 아이들이 등교를 하면 또다시 정리 모드에 들어간다. 무한반복이다. 때로는 짜증 날 때도 있고 때로는 기분 좋게 치운다. 그때그때 내 기분에 따라 이 상황이 다르게 느껴진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이 모든 공간은 공간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공간을 위한 공간이라면 사람이 살지 않는 모델하우스가 맞겠지. 이곳은 나와 가족들을 위한 공간이다. 매일 치우는 과정이 수고스럽지만 그 과정 역시 나와 가족들이 오늘을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공간이기에 힘을 내어 청소를 한다. 따뜻한 햇살이 거실 창을 비춘다. 창문을 열고 청소를 시작할 때가 되었다. 자~ 시작!

출처: 픽사 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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