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평범한 미라클 하루

5. 집밥 하기

by 호모 비아토르

나는 밥순이다. 요리를 잘해서가 아니라 밥을 잘 먹어서이다. 양식보다 한식을 좋아하고 사랑한다. 제일 좋아하는 음식을 떠오르면 김치찌개, 비빔밥, 보리밥 정식이다. 좋아하는 음식처럼 나도 토속적이고 일상적이고 부담이 없는 존재이다. 먹는 음식이 나고 내가 음식인 것처럼 느껴진다.

나는 요리를 잘하지 못한다. 결혼하기 전에 주 담당은 설거지였다. 주로 친오빠가 볶음밥이나 라면을 끓여주면 뒤처리를 담당했다. 오빠 말로는 음식 솜씨가 없어 음식을 맡기지 못하겠다고 했다. 그 말을 곧이 곧 대로 믿고 음식을 만들어 볼 엄두를 내지 않았다. 음식을 만드는 것을 귀찮아했다. 내가 굳이 만들지 않아도 오빠가 음식 만들기를 즐겨했기에 오빠의 음식 솜씨를 의지했다. 솔직히 오빠가 해주는 밥이 맛있기도 했다. 그중에 제일은 김치볶음밥이었다.


결혼 후 처음으로 내 손으로 요리를 했다. 핸드폰에서 폭풍 검색을 했다. 처음에는 들어가는 재료와 양념의 용량에 신경을 썼다. 그러나 점차 나만의 스타일이 생겼다. 눈대중으로 들어갈 식재료를 확인하고 그다음부터는 내 마음대로 했다. 그런데 남편이 맛있다고 했다. 친정집에 가서 그 말을 하니 오빠와 엄마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나도 음식을 만들기 전까지 내가 음식을 만들 거라고 상상을 하지 못했다.

첫째 아이를 출산하고 시어머니가 아이를 양육해 주셔서 주중에는 시댁에서 함께 살았다. 그래서 굳이 내 손으로 요리할 일은 없었다. 주말에만 집으로 가서 요리를 본격적으로 하려고 하면 어느새 시댁으로 갈 시간이었다. 직장생활을 할 때는 먹기 위한 생존적인 요리였다. 본격적으로 요리에 관심을 가진 것은 육아휴직 이후였다. 생존만을 위한 것이 아닌 맛있게 먹고, 눈으로 즐겁고, 몸에도 좋은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나의 주 요리는 집밥이다. 집밥은 밑반찬과 국, 메인 요리이다. 처음에 이것저것 해볼 때는 다 어려워 보였다. 이제는 무엇이든 만드는 데 어렵지 않다. 단지 매번 밥을 차리는 상황에서 정해진 식사메뉴를 반복해서 돌리는 것이 스트레스이다. 이번 주는 일주일의 식단 메뉴를 정해놓고 그 메뉴에 맞추어서 준비한다. 주로 하는 음식들은 이렇다. 메인 요리로 닭볶음, 소불고기, 오리훈제, 간장 수육, 명태전, 김치찜 등이다. 덮밥 종류로 짜장, 카레, 마파두부이다. 국 종류는 미역국, 김치찌개, 소고기 뭇국, 된장찌개, 무(배추)된 장국, 콩나물국, 순두부찌개이다. 간간히 주말에는 분식으로 떡볶이, 유부초밥, 김밥을 만든다. 밑반찬은 멸치볶음, 새우볶음, 간장 메추리알, 진미채 볶음, 가지볶음, 깻잎순 무침, 콩나물무침, 시무치 무침, 오이지무침을 한다. 제철 나물이 나올 때마다 산나물, 봄나물, 참나물, 취나물, 돌나물 등 그때그때 달라진다.


오늘도 메뉴를 생각하면 늘 했던 음식을 하려니 고민이다. 참 웃긴 일이다. 이전에는 어떤 메뉴를 하더라도 두렵고 잘할 수 있을까 라는 걱정 때문에 고민이었다. 지금은 잘할지에 대한 고민보다 늘 하던 음식을 했을 때 가족들 반응이 시원치 않아 그것이 더 고민이 된다. 음식을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무엇이든 가족들이 맛있게 먹어졌으면 좋겠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나의 바람일 뿐이다. 맛있게 먹고 안 먹고는 가족의 입맛이고 반응이다. 그런데도 자꾸 기대를 하게 된다. 정성스레 준비한 음식에 늘 가족들이 맛있게 먹어졌으면 하는 욕심이 큰 것도 사실이다. 그런 나에게 남편은 내가 해주는 대로 맛있게 먹겠다고 한다. 그러니 신경 쓰지 말고 준비를 하라고 한다. 그 말은 그냥 말뿐이다. 그 말을 들어도 마음에 부담이 된다. 나만 이런 마음이 들까?


집밥을 생각하면 한편으로 남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집에 있을 때 가족들에게 내 손으로 지은 밥을 해주고 싶은 것이다. 주말부부와 직장생활을 할 때 가족들에게 제대로 된 밥을 챙겨주지 못한 죄책감이 컸다. 그래서 남들이 보면 그까짓 밥일지라도 내겐 너무 마음 아프고 속이 쓰린 밥 한 끼이다. 누군가는 요즘 시중에 밑반찬과 국, 메인 요리 잘 만들어서 나오니 사 먹는 게 싸게 친다고 한다. 그런데도 시간, 돈, 정성을 들이는 집밥을 고집하고 싶은 건 지금 이 순간 가족들에게 해줄 수 있는 나의 사랑이라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아주 비합리적인 고집인데, 이 고집을 꺾고 싶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언젠가 집밥을 시간과 정성을 들여 할 수 없을 때가 온다. 2022년 9월 드디어 복직이다. 뭐든지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육아휴직의 시작이 엊그제 같은데 끝이 몇 개월 앞에 있다. 그때까지 남편과 두 자녀가 뭐라 하든 집에서 만든 따뜻한 밥 한 끼를 먹이고 싶은 소망이 있다. 옛날에 아랫목에 밥을 놓고 이불로 덮어놓았던 그때 그 시절의 어머님들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이해가 간다. 별것 아닌 것 같은 사소한 그 행동에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이 담겨있었다.


내가 집밥을 만들어 가족들에게 내놓기 전에 친정엄마의 따뜻한 밥 한 끼의 의미를 잘 몰랐다. 그저 당연한 줄 알았다. 엄마도 평생 맞벌이를 하셨다. 힘든 공장 일을 하면서도 퇴근 후 부리나케 아빠와 세 자녀의 저녁식사를 준비했다. 지금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퇴근 후 엄마가 얼마나 피곤했을 텐데 자신의 고단함은 뒤로 하고 가족들을 위해 저녁을 준비한 손길에 마음이 아프고 쓰리다. 엄마 자신의 삶보다 가족을 위한 삶을 살았던 인생 덕분에 내가 꽃처럼 피워 난 것이다. 그것을 생각하면 나도 엄마처럼 그 인생이 고단하더라도 남편과 두 자녀들을 위해 하는 집 밥이 그렇게 힘들지 않다. 집밥을 먹고 장성하게 커줄 두 아들 녀석들과 조금 더 건강하게 늙어가길 바라는 남편을 바라보면 힘이 나고 즐겁다.


복직하고 나면 집밥의 의미가 조금 달라질 것이다. 시간과 상황에 따라 내 역할도 조금씩 바뀔 것이다. 그때는 집밥과 사 먹는 것이 혼재될 것이다. 그때는 그때이고 지금은 이 순간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된다. 지금은 집밥이다. 오늘도 나는 집밥을 한다. 매일 반복해서 하는 지루하고 무료할 수 있는 이 작업에 삶의 의미를 부여한다. 내 존재 가치와 가족의 의미가 더해지고 버무려지면 벌써 집밥이 완성된다. 내 존재 의미와 가족은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 가족과 함께 있다 보면 그 속에서 내 존재도 발견하게 된다. 음식은 누구와 같이 먹고, 누구를 위해 만드느냐에 따라 음식에 대한 의미와 가치가 달라진다. 나와 가족을 위해 음식을 만들고 가족과 같이 먹는 이 시간이 소중하다. 가족이 오늘 하루도 건강하게 삶을 유지하고 살아가는 힘이 집밥이라는 믿음이 있기에 오늘도 부엌 앞에서 분주하게 몸을 움직인다.

우리집 집밥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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