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평범한 미라클 하루

6. 함께하기

by 호모 비아토르
가정이야말로 고달픈 인생의 안식처요. 모든 싸움이 자취를
감추고 사랑이 싹트는 곳이요. 큰 사람이 작아지고 작은 사람이
커지는 곳이다 -H.G. Wells-


처음에 소제목을 양육하기로 정하고 글을 쓰려고 했다. 그런데 문득 ‘양육하기’라는 제목과 마주하니 망설여졌다. 마치 내가 주도권을 쥐고 다할 수 있는 것 같은 압도감에 글을 써내려 갈 수 없었다. 그래서 글쓰기를 멈추고 곰곰이 생각했다. 내가 양육을 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 질문에 ‘아니’라고 바로 대답이 나왔다. 아이들을 낳고 키우는 과정에서 내가 자녀들에게 느끼는 감정은 무엇일까? 를 생각했다. 그것은 양육도 아니고 가르치는 것도 아니었다. 바로 함께하기였다. 지나온 세월을 뒤돌아서서 보면 아이들은 스스로 크고 있었고, 나는 그저 옆에 있어주었다. 우리는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각자 자기의 속도대로 성장하고 있었다.


2011년 가을 첫째 아이가 내게 왔고, 2014년 여름에 둘째 아이가 내 품에 왔다. 어느덧 2021년 겨울이다. 두 아이들은 하루하루 다르게 크고 있었고, 나와 남편은 나이를 먹고 있었다. 직장생활을 할 때는 정신없이 사는 탓에 두 자녀가 어떻게 커 가는지 모른 채 달렸다. 지금은 매일 아이들과 눈을 마주치고 막춤을 추며 장난을 친다. 흐르는 이 시간 속에서 아이들과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행복이고 즐거움을 느끼고 있었다. 누군가 인생은 고통을 맛보고 나서야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나 역시 가족의 의미도 모른 채 그저 매일 숨 가쁘게 살아온 지난 세월 덕분에 오늘을 누리며 살고 있다. 지금의 지루하고 무료한 일상 속에서 가족의 의미를 찾고 감사와 기쁨을 느낀다.


2010년 봄, 남편과 만나 결혼을 하고 그다음 해 가을까지 둘만의 가정을 꾸렸다. 맞벌이를 하면서도 스트레스를 받긴 했지만 행복하고 즐거웠다. 아이를 출산하면서 인생은 급격한 변화를 맞이한다. 직장 일을 하면서 양육을 하는 것이란 정말 지치고 피곤하고 힘든 삶이었다. 그것을 전적으로 이해해주는 사람은 누구도 없었다. 첫째 아이 양육의 이유로 시부모님과 살았다. 직장일과 퇴근 후 육아는 내게 너무 버겁게 느껴졌고 힘들었다. 이때까지도 아이가 예쁜 건 맞지만 내가 느끼는 고통도 컸기에 그 상황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고 괴로움이 더 컸다.


새로운 직장으로 이직 후 남편과 주말부부를 했다. 당시 첫째 아이는 시어머니가 양육해주셨다. 첫째 아이와 남편과 떨어져 살아서 그리움은 있었지만 새로운 직장에 적응하고 자리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컸다. 그러나 내 안에 죄책감은 늘 자리 잡고 있었다. 둘째 아이 출산 후 첫째 아이를 진주로 데려와 내가 키웠다. 남편과는 여전히 주말부부였다. 두 아이를 품고 육아휴직을 했던 1년 3개월의 시간은 힘들지만 행복했다. 전적으로 내 손으로 양육했고, 내 품 안에서 먹고, 자고, 커 가는 모습에 행복했다. 시간에 쫓기지 않았고 아이들의 시간 속에 내가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것도 잠시, 다시 복직을 했다. 그때까지 직장 일을 하며 두 아이를 양육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둘째 아이가 한 달 정도 어린이집에 가면서 계속 아팠다. 그 상황을 계속 지켜볼 수가 없어 결국은 첫째 아이는 내가 키우고, 둘째 아이를 다시 남편이 있는 시댁에 보냈다. 우리 가족은 금요일 밤에 상봉해서 일요일 저녁마다 헤어졌다. 그렇게 1년이 지나 둘째 아이가 어느 정도 클 시기가 되자 나는 다시 둘째 아이를 내 품으로 데려왔다. 이것은 누구도 강요하지 않은 나의 선택이었다. 그저 자녀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는 나의 고집과 책임감이었다. 두 자녀에게 늘 미안함이 있었다. 가족이 온전히 같이 살아본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아이들이 물건도 아닌데 보냈다 데려왔다 하는 것이 할 짓이 아니었다. 막상 두 자녀를 데려와서 생활하고 보니 보통 일이 아니었다. 너무 힘들었다. 7시 40분에 두 아이를 각각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맡기고 저녁 6시 30분에 아이들을 만날 때까지 하루도 마음 편한 날이 없었다. 죄책감의 크기는 점점 커져갔다.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아픈 날이면 회사에서 조퇴를 하고 아이들을 병원에 데려가는 날이 많았다. 어떤 날은 아이 가방에 약봉지를 넣어 어린이집에 보내는 날도 있었다. 매번 반복해서 드는 생각은 ‘이건 아이들에게 할 짓이 아니구나.’라는 것이었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남편과는 일일이 상의하지 않았으니 남편은 그 사정을 속속들이 다 몰랐다.


지금 생각하면 참 미련한 곰처럼 꾸역꾸역 살았구나 싶어 속상하고 마음이 아프다. 그렇게 버티다 첫째 아이 1학년 입학을 앞두고 결정을 했다. 계속 이렇게 가족이 분리된 채 살아야 할 것인지 아니면 특단의 조치를 통해 가족이 함께 결합하는 방향으로 갈 것인지를 선택했다. 남편은 1년만 휴직을 하기를 바랐다. 경제적 이유였다. 나는 일평생 동안 가족들이 함께하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장기 휴직을 하고 집을 팔아 남편이 있는 곳으로 이사하기로 했다. 물론 남편도 지금까지 시댁에서 출퇴근하는 것을 정리하고 나와 독립된 공간에서 진짜 가족으로 살아보기로 했다.


2018년 1월 20일 역사적인 순간이다. 드디어 우리 가족들이 주 7일을 한 공간에서 같이 살게 되었다. 얼마나 고대하고 기다렸던 순간인가? 과거 함께 살 수 없었던 여러 이유를 들어 그 상황을 합리화하고 정당화했던 우리들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처음 우리는 같이 살면서 서로 맞지 않는 부분을 발견하며 충돌이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일관되게 ‘가족은 같이 살아야 한다. 가족이 함께하는 시간은 다 때가 있다. 지금이 그때이고 또 이때가 지나면 각자의 길을 가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 말이 사실이기도 했다. 두 자녀가 장성해서 크면 이 집을 떠나게 될 것이고, 남편과 나도 공동육아의 목적이 없어지면 어떤 의미로 부부관계를 건강하게 유지하며 살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함께하는 것이란 무엇일까? 어떤 사람들은 같은 공간에 살지 않더라도 심리적으로 함께하면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내 경험은 다르다. 함께하는 것은 같은 공간에서 서로 부대끼고 심리적인 갈등을 겪으면서 그 갈등을 해결하고 소통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것이 가족이라고 본다. 이전에 주말부부를 할 때는 서로의 좋은 모습만 보여주려고 했다. 지금은 서로의 있는 모습 그대로 보여주고 차이를 인정하고 이해하며 살아간다. 어떻게 보면 좋은 모습만 보여주는 주말부부가 더 좋지 않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온전히 가족이 함께 살아본 경험이 없었다. 그렇게 살아본 다음에 주말부부를 했다면 다른 선택을 했을지도 모른다. 다만 함께 살아본 경험이 부재한 채 처음부터 주말부부를 하는 것에 대해 반대 입장에 서게 된다.


몇 달 후면 다시 복직을 한다. 남편과 자녀와 다시 매일의 일상을 같이 하지 못한다. 이제 결심은 섰다. 복직하자마자 전보 신청을 해서 집 근처로 올 것이다. 공간적 분리로 오는 틈을 줄이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소통의 방법이 무엇일지 구체적으로 고민하게 된다. 오늘 아침 첫째 아이가 내게 묻는다. “엄마, 회사 가면 우리랑 같이 매일 못 자는 거야?” 이에 대답한다. “응, 그렇지. 엄마는 금요일 집에 와서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 이렇게 3일 같이 자. 그리고 월, 화, 수, 목 4일은 아빠와 같이 자.” 아이는 씻으러 화장실로 간다.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앞으로 있을 변화를 아이가 마음속으로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하다. 그러나 걱정은 되지 않는다. 내 마음이 흔들리고 갈피를 잡지 못할 때는 걱정과 두려움이 컸던 것이 사실이다. 지금은 내 마음에 중심을 잡고 나니 조금의 변화나 일상의 흔들림은 그냥 가뿐히 넘길 동산 정도로 생각한다. 어차피 인생은 늘 행복하고 좋은 일만 있을 수 없다. 그렇게 어려움을 만나면 넘기고 견뎌야 할 일을 만나면 인내하면 된다. 단지 내 마음이 단단하고 어느 방향을 향해 가고 있는지 알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가족들과 함께하는 이 시간이 소중하고 행복하다. 다시 오지 않을 이 순간은 매우 일상적이고 지루해 보인다. 그러나 나에겐 지루하거나 일상적이지 않다. 그렇게 찾고 싶었고 함께하고 싶었던 순간이기에 붙잡고 싶은 지금 이 순간이다. 그 속을 들여다보면 매일 웃고 기쁜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나의 짜증과 신경질적인 말투, 아이들이 싸우는 소리, 남편의 한숨이 뒤섞여 있을 때도 있다. 어차피 인생은 비빔밥이다. 여러 나물이 한데 어우러져 맛있는 비빔밥이 되듯 우리 가족도 여러 성향과 기질이 한데 어우러져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형성한다.


가족이란 늘 행복한 순간만 있지 않았다. 나 역시 지금의 가족의 울타리를 만들기까지 우여곡절이 있었다. 그 시절이 없었다면 지금의 든든한 울타리를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앞으로도 늘 화사한 햇살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인생에서 가족이란 나를 나 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고, 자녀들과 남편이 그들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에너지 공급처가 되었으면 좋겠다. 인생의 위기가 닥쳐와도 가족의 품 안에서 쉬고 회복하고 다시 세상 속으로 나아갈 수 있는 안식처로 자리 잡기를 꿈꾼다. 그러려면 집은 편안하고 안정된 곳이어야 한다. 공간적인 편안함과 심리적인 안정감이 함께하는 그곳이 우리 집이었으면 좋겠다.

출처: 픽사 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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