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평범한 미라클 하루

7. 말하기

by 호모 비아토르
마음속에 있는 시끄러운 소리는 그것대로 놔두더라도 밖으로 드러나는 말은 매 순간 있는 힘을 다해 조심해야 한다. 편협한 자신이 드러나고 상대에게 상처 주는 말이라면 더 조심해야 한다. 생각은 자유롭게 하되, 표현은 절제해야 한다.
김진해, 『말끝이 당신이다』, 한겨레출판사, 2021년, p44


자신을 표현하는 직접적인 수단은 말하기이다. 말하기는 생각과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 어렸을 때 내성적이고 조용한 성격으로 말로 뭔가를 표현하는 게 힘들었다. 한마디 말을 꺼내기 위해서 수십 번을 생각하고 고민했다. 이 말을 하면 어떻게 생각할까? 저 말을 하면 어떻게 생각할까? 고민 끝에 내뱉은 한마디에 상대방은 아무렇지 않은 듯 쉽게 대답을 한다. 나도 쉽게 말하면 될 것을 왜 이렇게 어렵고 힘들게 입을 열까? 스스로를 자책했다.


세월이 흘러 말을 하지 않음으로써 손해를 겪은 적이 여러 번 있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성격도 맞춤식으로 진화를 했다. 나의 서투른 말하기가 나와 타인을 힘들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점차적으로 나는 말하는 빈도가 늘어났다. 폭발적으로 말을 많이 하게 된 것은 직업적인 성격이 크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상담을 하면서 말은 아주 중요한 도구였다. 그렇게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지금은 어떻게 되었을까? 입만 열면 말을 하고 있다. 그런 나를 어느 순간 인식했다. 그러나 말하기를 좋아하는 나는 사람이 많은 곳을 피한다. 사람을 만나면 자꾸 질문을 한다. 그 사람이 어떤 고민을 하면 내가 알고 있는 정보를 말해주고 싶어 입이 간질거린다. 때론 너무 말을 많이 한 것 같아 집에 와서 후회를 한다. 누군가는 내게 말하는 재주가 있어 보인다고 한다. 진짜 그럴까? 혼자 자문한 적이 있다.


처음부터 말하는 재주가 있었을까? 그렇지 않다. 내 필요와 욕구에 의해 발달한 부분이다. 조용하고 소극적인 어린 시절과 발음이 부정확한 언어 표현을 생각하면 말하기는 용기와 용감함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지금도 말을 할 때 발음이 부정확하지 않은지 신경을 쓰며 말을 한다. 더군다나 생각의 속도를 말이 따라잡을 수 없을 때 발음은 더욱 어눌해진다.


그럼에도 말을 계속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말은 상대방에게 새로운 정보를 전달해준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상대방에게 전달했을 때 뿌듯함을 느낀다. 상대방이 먼저 질문을 하고 도움을 요청할 때 그 뿌듯함은 더 커진다. 마음속에서는 보잘것없는 내가 누군가를 도와줄 수 있다는 게 기쁘고 감사하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정답일 수는 없지만 그런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에게 정말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요즘은 말해주고 싶어도 한 번 더 생각한다. 이 사람이 진짜 내 말을 듣고 싶어 할까? 내 말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할까?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의 눈을 바라보며 마음을 읽으려고 노력한다. 그러면 내 마음에서 울림이 온다. ‘지금 이 말은 안 해도 될 것 같아.’ 그러면 하고 싶은 말도 목구멍에서만 맴돌다가 접는다. 아무리 좋은 말이라고 해도 상대방이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어 있거나 들을 준비가 안 되어 있다면 무용지물이다. 나 역시 지난 시절 내게 도움이 된다고 하는 조언을 잔소리 혹은 비난으로 느낀 적이 있었다.


상대방의 시간을 빼앗으며 내가 주목받기를 원해서 말하는 건 아닌지 돌아본다. 말을 하면 사람들이 나에게 시선을 집중하고 내가 주인공이 된 것처럼 느낄 때가 있다. 이 느낌은 그 순간일 뿐 집에 와서 돌이켜 생각해보면 마음이 허전하다. 그저 나의 만족을 위한 행위이지 않았을까? 이제는 입을 뗄 때마다 조심스럽다. 더 이상 주목받는 것은 나에게 의미가 없다. 사람들은 누구나 인정받기를 원한다. 그렇다고 인정받기 위해 산다는 건 나란 존재 없이 타인을 위해 사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답게 살다가 누군가 인정해 준다면 고마운 일이지만, 나 없이 누군가의 인정을 위해 살고 싶지 않다. 그저 나만의 길을 조용하고 묵묵히 걸어가고 싶다. 말 자체만으로 인정받는 건 어느 순간 공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불완전하고 말과 삶이 일치되지 않음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그즈음부터 말을 조심스럽게 한다. 말과 삶의 괴리를 느끼는 순간 내가 안다는 것만으로 쉽게 말을 뱉을 수 없게 되었다.


한때는 내가 구원자라도 된 기분에서 말을 하는 건 아닌지 조심스러웠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구원 환상’이라고 부른다. 구원 환상은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싶다는 정도를 넘어, 그의 절망에 대한 구원자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구원(구조) 환상이라 부른다. 바보 온달과 평강공주처럼 단순히 돕고 싶은 게 아닌 누군가에게 삶의 인도자가 되고 싶다는 열망이다. 나 역시 그런 환상을 꿈꾼 적이 잠깐 있었다. 그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며, 자신만의 환상이고 착각이다. 지금은 상대방이 내 말을 듣고 나서 실행하는지 여부는 묻지 않는다. 조언하면 그 상황에서 끝이다. 그것은 오로지 그 사람의 삶이고 고유한 결정이기에 존중한다. 호기심이 발동해서 묻고 싶을 때도 있지만 묻고 싶은 마음을 잠재운다. 단지 나를 통해서 누군가가 조금이라도 도움을 받고 위로가 되었다면 참 감사하고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말하기를 본격적으로 한 것도 아마 타인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마음에서 시작된 것이다.


말하기는 나의 생각과 감정을 전달한다. 이전에도 말했지만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데 많이 서툴렀다. 속으로 끙끙 앓으면서도 겉으로는 회피하거나 수동 공격적인 행동을 보일 때도 있었다. 그런 행동 패턴이 반복되자 나도 힘들고 내 주변 사람들을 더욱 힘들게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점차 나를 드러내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다. 건강한 나와 인간관계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요즘은 상황과 사람에 따라 생각과 감정표현의 강약을 조절해가며 지혜롭게 대처하려고 한다. 모든 상황에서 동일하게 내 속을 다 표현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상황과 사람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상황과 사람을 세밀히 관찰해서 접근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모든 상황이 내 마음 같지 않음을 전제로 하고 출발한다. 너와 나는 다르고 동일한 상황을 바라보는 시선도 다르다. 그것을 인정하고 출발할 때 우리는 소통을 할 수 있다.


말하기는 하면 할수록 어렵다. 예전에 말하기가 어려울 때는 일단 말만 하면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아니다. 말을 조심스럽게 한다. 내가 하는 말이 곧 나임을 알기 때문이다. 언행일치라는 말이 있다. 말과 행동이 같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 말이 왜 나왔을까? 말은 유창하게 잘하면서 그것을 실행하지 못할 때 그것은 나와 타인을 속이는 행위이다. 그럴 바에는 처음부터 말을 하지 않는 게 서로에게 유익이 될 수 있다.


누군가는 말이 칼과 같다고 한다. 전적으로 공감한다. 말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더더욱 말을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해야 한다. 이제는 말을 잘할 수 있는 자신감은 생겼지만,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말하기에 거리를 두고 서로의 상반된 입장을 생각한다. 나와 너라는 각각의 존재 세계가 있다. 서로의 세계를 함부로 침범하지 않아야 한다. 타인의 세계에 함께 여행하는 마음으로 동참하는 말하기를 하려고 한다. 그러려면 말하기에 앞서 상대를 이해하고 인정하는 너그러운 마음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내가 가진 고정관념과 편견을 내려놓고 마음을 열고 타인의 세계 속으로 모험할 준비를 한다면 말하기의 준비가 된 것이다. 그렇게 말하기는 타인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출처: 픽사 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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