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는 존재에 비추어 보면 별것 아니어서 대개는 기억 속에 덧없는 흔적만을 남길뿐이다. 거기에는 분명 본질적인 소박함 속에서 삶에 대한 의욕을 키우는 힘이 있다.
다비드 르 브르통, 『느리게 걷는 즐거움』, 북라이프, 2014년, 229p
걷기는 내 하루 일과의 고정 루틴 중 하나이다. 처음부터 걷기가 내 하루의 일부를 차지한 것은 아니었다. 아주 우연한 기회에 시작된 것이었다. 그것은 40대 초 건강이 약해지고 코로나가 겹친 직후의 일이다. 내가 건강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고민하던 시점에 가장 손쉽게 가능한 운동이 걷기였다.
2020년 가을부터였으니까 벌써 2년 가까이 되어간다. 처음엔 가볍게 일주일에 세 번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집 근처 목적지를 차가 아닌 걷기로 대체했다. 단순히 건강을 위해서였다. 그러나 점차 걷기 자체에 대한 매력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걷기는 그냥 걷는 것이 아니었다. 걷기는 내가 지금 현재 살아있고 숨 쉬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내 몸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오로지 나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뭐라 표현해야 할까? 분주하고 바쁜 일상을 잠시 벗어나 멍 때리며 걸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계속 걷다 보니 새로운 경험을 맛보게 되었다.
2021년 봄, 3월 목적지를 바꿔 매일 산 둘레 길을 걷게 되었다. 매일 새벽 동이 트기 시작할 때 조용한 숲길을 걷는다. 주위 사람들은 위험한데 겁이 없다고 말을 한다. 처음 몇 번은 산길에서 만나는 사람이 무서웠다. 수많은 무덤에서 귀신이라도 나올까 봐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매일 동일한 시간에 만나는 사람들이 눈에 익었고 몇몇 사람들과 간단한 아침인사를 주고받는다. 그리고 수많은 무덤을 보며 매일 삶과 죽음의 경계를 눈으로 확인한다. 삶에 서 있는 내가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하게 만들어준다. 나도 언젠가 저 무덤처럼 흙으로 돌아갈 날이 올 것이라는 사실을 되새긴다. 그리고 돌아서서 지금 현재 삶의 소중함을 느끼고 잘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하절기가 되면서 새벽에 가는 시간은 더 빨라졌다. 5시 20분에 출발해서 두 바퀴 정도 돌면 1시간 40분 정도 걸린다. 동네 산은 133m의 낮은 동산 정도라 부담이 없다. 아직 동이 트기 전에 땀을 흘리며 걷는 이 느낌은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지금은 동절기라 새벽 동트기 전은 한밤중처럼 캄캄하다. 요즘은 일출이 7시로 미뤄졌다. 7시 이후에 산에 가면 남편과 아이들의 아침 준비를 못해서 해가 길어질 때까지 새벽 걷기는 잠시 중단하기로 했다. 대신 아이들 등교 후나 오후에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걷는다. 시간은 대중이 없다. 그때그때 시간 되는대로 걷는다. 오로지 내 발자국 소리, 새소리, 바람 소리에 귀를 쫑긋 새우며 어떤 것에도 방해받지 않고 걷는다. 비가 오는 날도 우산을 쓰고 걷는다. 나의 감정이 다 다르듯 산도 그날의 컨디션이라도 있는지 다 다르다.
생각이 많은 날 길을 걸으면 생각을 정리해준다. 불안과 두려움의 감정을 안고 걸을 때 어느새 평안을 안고 산길을 내려온다. 걷기만 한 것뿐인데 내 몸과 마음에서 변화가 찾아온다. 어떤 목적을 가지고 걸은 것도 아닌데 내리막길을 내려오면 큰 선물을 매일 받아 온다. 육체의 건강, 생각의 가벼움, 마음의 평안이라는 선물꾸러미를 한가득 안고 내려온다.
때론 내 속에서 내 존재의 목소리가 말을 건넨다. 그 소리는 진짜 목소리는 아니며 내 생각에서 들리는 듯하다. 조용한 가운데 내게 위로와 평안을 주는 목소리다. 나를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으며 내가 어떤 상태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어 인생의 나침반과 같은 말을 내게 건넨다. 그 소리는 분주하고 바쁜 일상에서는 결코 들을 수 없다. 정말 조용하고 침묵 속에서 혼자 고요한 시간을 보낼 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다. 그 목소리는 오로지 산길을 혼자 걸으면서 발견했다. 그래서 더더욱 어떤 일이 있어도 하루의 시간 중 혼자 걷기를 하려는 것이다.
요즘은 시간이 안 나면 저녁에 동네 한 바퀴라도 혼자 돌고 온다. 의무감에서 하는 것이었다면 벌써 그만두었을 것이다. 걷기는 하고 싶다. 걷는 것 자체에서 오는 힘이 있다. 누가 인정해주거나 눈에 띄게 체중이 감량되는 것도 없다. 나만의 비밀을 간직한 것처럼 걷기에는 나만 아는 힐링의 힘을 가지고 있다. 어느 날은 갑자기 마음이 무겁고 생각이 복잡한 날이 있다. 남편에게는 음식물쓰레기를 버리러 갔다 오겠다는 핑계로 점퍼 하나 걸치고 저녁에 집을 나선다. 그저 30분이든 1시간이든 걷는다. 걷고 나면 마음이 시원하고 가볍다. 뚜렷하게 문제가 해결된 것도 아닌데 신기하다. 한 시간 전에 느꼈던 무거움과 복잡함이 조금은 가볍고 편안하게 느껴진다. 생각이 한쪽으로 치우쳐서 균형을 잃어가고 있다고 느낄 때는 걷기를 추천한다.
“움직임의 힘”이란 책이 있다. 말 그대로 움직임으로써 얻어지는 힘이 있다는 말이다. 그 힘이란 근심을 없애고 행복을 선사한다고 한다. 걷기도 이 움직임의 힘과 연결되는 부분이 있다. 일단은 움직이는 것이 왜곡된 인지를 변화시키고 마음에 활력을 준다. 눈에 보이는 무언가로 일상을 채우기보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내 존재를 일깨우고 에너지를 만들어주는 나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나만의 시간을 만드는 것 중 하나가 혼자 걷기다. 누군가는 혼자 걸으면 심심하지 않냐고 질문을 한다. 표면상으로는 심심할 것처럼 보여도 전혀 심심하지 않다. 혼자 걸으면 같이 걸을 때 보이지 않던 무언가가 보인다. 들리지 않던 소리가 들린다. 온몸의 감각이 깨어난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그것은 혼자 걸었을 때야 느낄 수 있는 경험이다. 일단 혼자 걸어봐야 서로 공유할 수 있는 감정이다.
오늘도 걷는다. 그냥 걷는다. 뚜렷한 목적이나 이유도 없다. 마냥 걷는 게 좋다. 기회가 된다면... 아니 기회가 된다면 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기회를 만들고 싶다. 꼭 한번 산티아고 순례 길을 걷고 싶다. 그 길을 가기 전에 전국에 많은 길을 걸어보고 싶다. 지금은 동네 산이나 인도를 걷고 있지만... 언젠가 내 눈에 수많은 길들이 나를 반기며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 수많은 길들이 내어준 품 안에서 존재에 눈을 뜨고 성찰하며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미래의 어느 곳을 걷기 위해서 그리고 오늘 익숙한 일상에 길을 걷기 위해서 나는 오늘도 현관문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