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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모 비아토르 Oct 07. 2022

익숙한 단어의 반대말 속에 숨은 의미 찾기

컵처럼 사는 법에 골몰한다

컵에게는 반대말이 없다 설거지를 하고서

잠시 엎어놓을 뿐

모자의 반대말은 알 필요가 없다

모자를 쓰고 외출을 할 뿐이다

모자를 쓰고 집에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게 가끔 궁금해지긴 하겠지만

눈동자 손길 입술, 너를 표현하는 너의 것에도 반대말은 없다

마침내 끝끝내 비로소, 이다지 애처로운 부사들에도 반대말은 없다

나를 어른이라고 부를 때

나를 여자라고 부를 때

반대말이 시소처럼 한쪽에서 솟구치려는 걸

지그시 눌러주어야만 한다

나를 시인이라고 부를 때에

나의 반대말들은 무용해진다

도시에서

변두리의 반대쪽을 알아채기 시작했을 때

지구에서 변두리가 어딘지 궁금한 적이 있었다

뱅글뱅글 지구의를 돌리며

이제 컵처럼 사는 법이

거의 완성되어간다

우편함이 반대말을 떨어뜨린다

나는 컵을 떨어뜨린다

완성의 반대말이 깨어진다

 

김소연, 반대말


시가 인상적이다. 어떤 단어를 떠올리면 바로 반대말을 생각했었나? 지금까지 인식하지 않고 생각했던 내 모습을 되짚어보게 된다. 아무 생각 없이 단어를 사용했다. 그 단어는 용도가 다 되면 즉시 폐기되었다. 


저 컵에 담긴 것은 뭔지는 알 수 없지만 설거지 후에 엎어놓으면 이전에 내용물은 무의미하다. 컵을 연상하면 무언가를 채우고 담으려는 용도로 느껴진다. 나는 무엇을 채우고 담고 있을까?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욕심과 내가 원하는 대로 되기를 바라는 기대가 있을까? 그렇다면 매일 설거지를 해서 엎어놔야겠다. 현실에서의 만족은 자족이다. 헛된 욕심과 기대를 채우다 보면 지금 주어진 오늘을 살아갈 수 없다. 


우리는 단어를 정의하고 인식하는 과정에서 어떤 생각으로 단어를 바라보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도대체 컵처럼 사는 법은 무엇일까? 매일 채운 것을 깨끗이 씻어 비워서 엎어놓는 삶일까? 명사의 정의에 너무 매이지 말고 언제든지 엎어놓을 수 있고, 지그시 눌러 놓을 수 있는 불완전성을 의미하는 걸까? 단어의 반대말을 표현함으로써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삶의 반대말은 죽음이다. 건강의 반대말은 병이다. 변화의 반대말은 정체이다. 변화가 두렵다고 하면서도 정작 정체는 싫고 거북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걸까? 반대말을 생각해보니 더 명확해졌다. 변화가 두렵긴 해도 정체는 더더욱 싫다. 그러니 변화를 하는 수밖에 없다. 


두려움은 주저하는 어떤 감정이다. 어떤 일을 할 때 결과가 예측되지 않아 위험함을 느낄 때나 이전에 느낀 부정적 감정의 재현을 예상할 때 느끼는 감정이다. 내가 바라지 않은 결과가 나타날 거라는 부정적인 예상에서 오는 감정이다. 그렇다면 두려움의 반대말은 무엇일까? 주저하는 감정을 끌어안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라면 그것은 용기이고 믿음이다. 변화는 계속되어야 하고, 두려움을 용기와 믿음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변화에 있어 두려움이 있음을 인정하고 두려움을 직시하고 용기와 믿음으로 나아가야겠다. 


오늘 이 시를 통해 내가 고민하는 단어의 반대말을 정리해봄으로써 내가 생각하는 두려움의 개념이 선명해지고 곁가지들이 제거되었다. 정체보다는 변화를 선호한다. 변화 속에 두려움이 존재한다. 주저하는 감정인 두려움을 용기와 믿음으로 한발 내딛으면 더 이상 주저하는 감정이 아니다. 나아가고 움직이는 역동적인 변화가 시작된다. 이제 두려움에서 용기와 믿음에게 자리를 조금씩 내줘볼까 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일단 정체는 거북하고 싫으니 변화가 필수이다. 변화에 뒤따라오는 두려움은 느끼고 인정하되, 그 옆자리에 용기와 믿음의 자리를 내준다면 조금 더 힘을 내서 변화의 자리에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갖고 용기를 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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