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민낯과 만나는 순간
6월초는 그녀에게 행복한 시간들이다. 회사가는 날이 적은 날이다.
6월2일 하루만 출근하고 3일은 대통령선거, 4-5일은 비대면 줌교육, 6일은 현충일이다.
그녀는 5월 31일부터 마음이 편하고 행복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주말동안 오전, 오후 동네산을 걸었고
3일부터 5일까지 새벽에 자동으로 눈이 떠져 새벽등산을 했다.
새벽 5시 45분이면 눈을 떠서 물 한잔을 마시고 설레는 마음으로 나섰다.
연속3일을 걷던 마지막날, 평소 산둘레길을 한바퀴만 돌았는데 그날은 웬지 산둘레길을 한바퀴 더 돌고 싶어 두바퀴돌았다.
음악을 듣고 있었다.
조승우 '꽃이 피고 지듯이'였다. 반복해서 들었다.
리듬도 슬프지만 가사를 듣고 있으면 가슴이 아프고 아려왔다.
처음에 그저 가사가 슬퍼서겠지 싶었다.
이 노래는 영화"사도"의 ost이다.
"사도"의 영화줄거리는 비극적이고 슬픈 부자관계를 다룬 영화이다.
"영조는 뒤늦게 얻은 귀한 아들 세자만은 모두에게 인정받는 왕이 되길 바랐지만 기대와 달리 어긋나는 세자에게 실망하게 된다. 어린 시절 남다른 총명함으로 아버지 영조의 기쁨이 된 아들. 아버지와 달리 예술과 무예에 뛰어나고 자유분방한 기질을 지닌 사도는 영조의 바람대로 완벽한 세자가 되고 싶었지만 자신의 진심을 몰라주고 다그치기만 하는 아버지를 점점 원망하게 된다. 왕과 세자로 만나 아버지와 아들의 연을 잇지 못한 운명,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가족사가 시작된다."
결국 세자는 아버지 영조에 의해 귀주에 갇혀 죽는 비극을 맞이한다.
출처 : 스트레이트뉴스(https://www.straightnews.co.kr)
스트레이트뉴스는 세상을 밝게 비추는 언론, 국가발전에 기여하는 언론, 국민의 행복을 추구하는 언론이 되겠습니다
https://www.straightnews.co.kr
그런데 오늘 노래를 듣다가 감정이 흔들고 울렁거리는 파동이 일어났다.
처음 나레이션으로 나오는 "사도"영화대사가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y-sqDi4cgdI
"내가 바란 것은 아버지의 따뜻한 눈길 한번 다정한 말 한마디였소"
마음 속 밑바닥에서 주먹만한 불구덩이가 목구멍까지 올라왔고 눈물이 났다. 애써 지나가는 사람이 볼세라 눈물을 삼키고 입을 막았다. 그것은 갑자기 길을 걷다가 뒷통수를 세게 얻어 맞은 기분이었다. 그것도 평생동안 맞아 본 적 없는 아주 센 강도의 충격이라고 할까?
그 대사는 영화에서 아들이 아버지에게 바랬던 것이지만 그녀에게 적용해볼때 그녀 자신에게 바래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바란 것은 그녀의 따뜻한 눈길 한번 다정한 말 한마디였소"
타자의 손길이 아닌 그녀 자신에게 바란 것이었다. 그녀는 그러한 사실을 무시한채 외부에서 따뜻한 눈길과 다정한 말 한마디를 바라며 살아온 것이다. 그녀의 마음을 읽지 못한 채 타인에게 그 인정을 갈구했으니 늘 목마르고 힘든 삶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 속에 뭔가가 늘 부족했다. 그것은 결핍된 사랑이었을까?
20년 넘게 사회복지사로 살면서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고 도와주려고 했을까? 그것은 아마도 그들의 삶을 통해 그녀에게 주는 심리적 보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도 누군가로부터 따뜻한 눈길 한번 다정한 말 한마디 듣고 싶은 무의식적 역동이 작용할 때마다 더욱 더 사람들에게 따뜻한 눈길과 다정한 말을 권내 주었다. 그들이 좋아지고 더 나아진 삶을 살아가는 것을 보았을 때 마치 그녀 자신이 그렇게 된 것처럼 동일시하였다.
"내가 바란 것은 너의 따뜻한 눈길 한번 다정한 말 한마디야."
이제야 깨달았다. 그녀 마음 깊은 곳에서 불같은 덩어리가 올라와서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타인의 따뜻한 눈길과 다정한 말이 아닌 그녀 자신이 그녀에게 해달라는 애처롭고 슬픈 마음속 울림이었다.
그녀와 타자를 동일시하고 그녀가 받지 못한 사랑과 결핍된 부분을 그녀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퍼주고 나눠주고 있었다. 지칠법도 한데 상담을 하고 프로그램을 할 때 그들이 힘을 얻고 안정감을 느끼면 그것 자체가 그녀에게 보상이 되었다. 그녀는 그들을 구원할 수 없지만 그녀가 느끼는 결핍을 본능적으로 그들도 가지고 있음을 알고 있는 듯 했다.
눈물이 났고 눈물을 삼키고 목구멍에서 올라오는 소리를 애써 참으며 걸었다.
최근에는 건강이 좋지 않아 자기돌봄이라는 주제로 글을 쓰고 있었는데, 글주제를 생각하고 고민하다보니 마음 속 밑바닥에 숨겨져 있던 민낯을 마주하게 되었다.
오늘 드디어 그녀 자신의 민낯과 만났다.
불편한 진실을 마주한다는 건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다. 더군다나 그 진실을 글로써 써내려가는 건 그녀에게 많은 용기가 필요한 부분이다. 그럼에도 글을 쓰는 것은 그녀의 있는 그대로의 민낯을 인정하고 수용하고 사랑해주고 싶은 깊은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나 이제 가려합니다 아픔은 남겨두고서
당신과의 못다한 말들 구름에 띄워놓고 가겠소
그대 마음을 채우지 못해 참 많이도 눈물 흘렸소
미안한 마음 두고 갑니다 꽃이 피고 또 지듯이
허공을 날아 날아 바람에 나를 실어
외로웠던 새벽녘 별들 벗삼아 이제 나도 떠나렵니다
이렇게 우린 서로 그리워 하면서도
마주보고 있어도 닿을수 없어
왜 만날수 없었나요
행여 당신 가슴 한켠에 내 체온 남아 있다면
이 바람이 흩어지기 전 내얼굴 한번 만져주오"
가사에 당신은 그녀 자신이다. 그녀 마음을 채우지 못해서 눈물을 흘렸다.
이렇게 우린 서로 그리워하면서도 마주보고 있어도 닿을 수 없었는데
이제야 우리는 만났다. 비로소 오늘 그녀가 그녀 자신에 민낯의 얼굴을 만져주었다.
드디어 그녀는 그녀을 진실하게 대면했다.
그녀는 그녀 자신을 조금 더 헤아려주고 안아주고 기다려주고 따뜻한 눈길과 다정한 말로써 사랑해주기로 했다.
진짜 그녀가 원하는 삶은 어쩌면 밖에서 찾을 필요가 없었다. 내면의 그녀와 마주하고 그녀 자신의 얼굴을 만져주는 것이다. 그것이면 충분했다. 그것으로도 세상에 홀로 서 있어도 외롭지 않고 고요히 혼자 걸어도 그녀 하나만으로도 만족했다.
진짜 자신을 만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언제부턴가 혼자 하는 활동이 좋아지기 시작했고 그것이 루틴이 되어 혼자 걷고 읽고 쓰고 달렸다. 그렇게 혼자있다보니 그녀 자신을 만났다. 외부의 소음이 꺼지고 나니 비로소 내면의 소리가 들렸다.
외향성과 내향성의 차이가 아닌듯 했다. 지금까지 그녀가 보지 못한 어둠의 그림자였던 진짜 자신이 그녀를 만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고 홀로 있는 고요한 시간을 점차 늘리며 드디어 때가 되어 그녀 자신을 보고 만지고 안아줄 수 있었다.
드디어 그녀가 그녀를 만났고 그녀를 안아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