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부터 나를 돌보기로 했다.

달릴때만큼은 그냥 나여서 좋다

by 호모 비아토르

격일 30분 달리기와 빨리 걷기가 일상에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매일 해가 뜨기 전 새벽과 해가 지고 나서의 운동은 그나마 햇빛을 피해 움직이기에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슬로러닝은 몇 번의 발바닥 통증과 다리 당김을 겪다. 속도조절을 하면서 다리에 무리를 주지 않기 위해 신경을 썼다.

처음엔 150 bpm을 유지하려 했으나 나에겐 무리였고 더 느리게 달리기로 했다.

평균 140-150 bpm을 유지하는 게 나에게 적합했다.


최근 며칠은 갑작스러운 열대야로 더웠는데 이틀 전부터 습기 없는 시원한 바람이 불면서 움직이고 싶은 마음이 꿈틀거렸다.

새벽 4시 20분 기상해서 30분을 슬로러닝했다.

그리고 출근준비를 하면 새벽부터 몸이 개운하고 가볍다.


퇴근 후 옛 습관인 소파에 앉아 유튜브를 보다가 안 되겠다 싶어 옷을 챙겨 입고 집 근처 공원에 가서 1시간 넘게 걸었다. 움직일 때만큼은 머릿속에 잡념이 없어져서 좋다.


다음날 새벽 토요일임에도 두 아들 녀석이 일어나는 소리에 나도 덩달아 5시 40분에 눈을 뜬다.

나갈까 말까 몇 분 고민하지만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하기로 했다. 물 한잔을 마시고 현관문을 나선다. 어제저녁 걸었던 공원으로 가서 연속해서 달린다. 솔직히 달리고 싶었다.


마음보다 몸에서 달리자고 손짓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달릴 때는 늘 고통스럽고 숨차고 힘들다. 힘들지 않을 때가 없다. 그럼에도 계속 달리는 이유는 뭘까? 달리고 나면 느껴지는 성취감, 개운함, 가벼움, 온몸을 적신 땀을 보면 기분이 날아갈 거 같다.


자기 돌봄은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다. 가정과 직장에서의 역할에 따른 중압감으로 지친 영혼을 잠시라도 쉬게 해주는 시간이다.

어느 순간 그 역할에 치여 존재가치를 잊은 채 역할에 충실한 연극 같은 삶을 살아왔다.

나는 없고 누군가를 위한 역할만 하는 빈껍데기만 남고 알맹이 없는 삶...


단순한 움직임을 통해 깨달아가고 있다.

어떤 역할과 지위 속에 내가 아니고 어떤 조직에 내가 아니어도 그냥 나로서 소중하다는 사실을 알아가고 있다.


그 무언가가 나를 포장해 줄 순 있어도 그게 진짜 나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포장하지 않고 꾸미지 않아도 그저 민낯의 자신을 돌볼 수 있는 시간이다.


사회적 껍데기 속에 갇힌 나를 끄집어내서 아무 조건 없이 바라보는 시간이다.

달릴 때만큼은 그냥 나여서 좋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작은 움직임을 통해 조금씩 나다움을 찾고 나다워져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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