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마주하는 감정 쉼표

어린 시절 감정과 만나기

by 호모 비아토르


감정은 타임머신이다. 과거 어린 시절의 감정을 느끼게 해 준다.
전미영


대학을 졸업하고 사람을 상대하는 일을 하면서도 상대방의 생각과 감정을 공감하고 이해하는데 많이 서툴렀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의 생각과 감정을 다루는데 서툴렀기에 당연한 결과였다. 사람과 갈등이 생기면 경직되고 위축됐다. 혼자만의 세상에서 나만의 스토리를 만들어 더 상황을 악화시켰다.

20대 후반에 우연한 기회로 정신분석 상담을 받게 되었다. 처음에 내가 정신분석을 받을 수 있는지 몇 회의 상담을 거쳐 진짜 카우치에 누워 정신분석을 받았다. 상담을 받기 전 상담에 대한 기대가 컸다. 상담을 받으면 내가 완전히 바뀔 거라는 착각과 환상 같은 게 있었다. 마치 성형 수술해서 다시 태어나는 것처럼 상담자가 내 삶을 다시 리모델링해 줄 거라 믿었다.


매일 새벽 정신분석 상담실 문을 두드렸다. 주 5일, 2년 가까이 매일 그곳을 찾았다. 상담자는 내 편을 들어주지 않고, 조언이나 코칭도 해주지 않았다. 단지 자유 연상을 통해 내가 탐색하는 마음의 길목에서 동행자가 되어주었다. 알 수 없는 불편한 감정들이 내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다. 세상과 사람들이 문제이고 나는 피해자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상담을 받을수록 지금까지 인식하지 못한 내면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쩔 땐 우울, 불안, 두려움, 화 같은 감정이 올라왔다. 내 안에 이런 것들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다채로운 감정들이었다.


자유 연상을 하면서 현재에서 점차 과거의 어린 시절로 가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은 나의 왜곡된 기억 속에서 때로는 과장되고 축소되어 있었다. 그러나 감정은 분명하고 또렷하게 내 마음속에 남아있었다. 나를 탐색하면 할수록 어린 시절 느꼈던 감정이 과거로 끝난 것이 아니라 현재도 여전히 존재하고 지금의 주인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여기서 어린 시절의 감정이 현재를 지배하는 핵심감정이 등장한다. 핵심감정이란 한 사람의 행동과 사고, 정서를 지배하는 중심 감정이다. 이 감정은 주로 어린 시절 내게 정서적 영향을 많이 준 사람에게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좌절되었을 때 형성된다. 상담을 받으며 나는 나의 핵심감정과 마주하게 되었다.


최초의 어린 시절 기억을 떠올려보면 나는 7살, 동생은 4살이었고 부모님은 농사일을 하셨다. 부모님은 나와 동생을 놔두고 아침 일찍 나가셔서 해가 질 때쯤에 돌아오셨다. 위로 한 살 많은 오빠는 나와 놀아주지 않고 나와 동생 둘이 집에서 하루 종일 보냈다. 지금 돌이켜보면 낮잠을 자다 일어난 남동생이 울며 엄마를 찾으면 7살짜리 어린 여자아이가 그 남동생을 달래고 안아주었다. 그때의 내 감정은 외로움과 막중한 책임감이었다. 나도 누군가의 케어를 받아야 하는 어린아이인데 내게는 더 어린 남동생이 있었다. 나 스스로 세상에 혼자 떨어진 것 같은 외로움이 자리 잡았다. 그 가운데 어린 남동생을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이 더해졌다.

어린시절.jpg 출처: 픽사 베이


그 여자아이가 성장했고 어른이 되었다. 몸은 어른이 되었지만 해결되지 못한 감정은 마음속 깊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자신의 약한 부분을 감추기 위해 단단한 성격 갑옷을 입었다. 나 혼자 세상을 개척하고 헤쳐 나가야 한다고 믿었다. 세상에 혼자 떨어진 별처럼 불안, 두려움, 외로움과 싸웠다. 그런 내가 분석을 받으면서 허물어졌다. 내가 만든 성이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는 모래성이었음을 깨달았다. 매일 반복적으로 내 얘기를 하다 보니 내가 보였다.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고 바라봐주지 않아도 그 자리에 있는 내 마음이 보였다.


내 마음을 보기 전에는 거대한 괴물 한 마리가 내 삶을 삼켜버릴 것 같은 두려움이 있었다. 이전까지 두렵고 무서워서 볼 수 없었다. 대면하면 억눌러 있던 감정이 폭발할 것 같았다. 그러나 회피하지 않고 보았을 때 그곳에 불안에 떨고 있는 7살 여자아이가 울고 있었다. 처음에 저 여자아이가 누구지? 낯설었다. 그다음에는 조심스레 다가갔다. 그리고 안아주었다. 펑펑 울었다. 성인이 된 내가 울었고, 내면 아이도 같이 울었다.


더 이상 나는 7살 여자아이가 아니었다. 세상에 혼자 떨어진 별도 아니었고 세상이 그렇게 무서운 곳도 아니었다. 이제 나는 스스로 자신을 보호할 힘이 있는 어른이 되었다. 외로움과 불안 속에 살지 않아도 된다는 현실을 자각하게 되었다. 내 안에 내면 아이를 인식하고 감정을 감지했음에도 나의 옛 습관은 칭얼대는 7살 여자아이가 있었다. 매일 시도 때도 없이 불안해하고 외로움을 호소할 때도 있다. 그때는 명령과 훈계가 아닌 그저 마음으로 안아준다. 안아주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순한 양처럼 조용하다.


나는 오늘도 타임머신을 타고 어린 시절로 여행을 떠난다. 그곳에서 나를 만난다. 7살 여자아이는 그저 자신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길 원한다. 먼저 다가가 손을 잡아준다. 다시 현재로 돌아온 지금 나는 7살 여자아이와 마주한다. 때로는 7살 여자아이의 왜곡된 감정이 갈등을 일으키고 충돌을 만들기도 한다. 뒤돌아보면 별 것 아닌 일에 ‘내가 왜 그랬지?’라는 생각을 남기기도 한다. 그때 나는 내 안에 내면 아이를 마주한다. 그리고 말을 건넨다. “네가 거기 있었지? 오늘 속상했구나. 오늘 기분이 어땠어?” 질문 하나 한 것뿐인데 내 마음은 편안해지고 다시 일상의 평온함이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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