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과거에 김형경 작가가 쓴 칼럼을 읽었다. 김형경 작가는 내가 20대 후반에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을 통해 처음 만났다. 작가가 정신분석을 받으며 느낀 자전적 경험을 소설에 담았고, 아마도 이 소설을 읽으며 정신분석에 더 관심을 갖게 되었던 것 같다.
칼럼을 읽으며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이 내 것인지, 타인의 것인지 의심이 생긴다. 우리 감정이 수직적으로 부모에서 자녀에게로 대물림되는 것처럼, 수평적으로 동시대인 사이에서도 서로 전염된다. 감정은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어 사람을 물들인다. 나와 너라는 경계가 없으면 우리는 그것에 반응하여 누군가에게 화를 내고 갈등을 일으킨다.
여기서 심리적 자기 경계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너와 나는 다르다. 생김새, 감정, 생각, 살아온 라이프 스타일 등 모든 게 다르다. 이에 서로의 고유함을 침범하거나 강요하지 않고 인정해 줘야 한다. 우리에게 심리적 자기 경계가 취약한 이유는 유년기에 견고한 자기 개념을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서적으로 자녀를 침범하는 부모, 아이의 생각이나 의견을 존중하지 않는 부모가 자녀의 심리적 경계를 거듭 무너뜨린다. 그러나 어린 시절부터 이러한 강요와 침범 속에 살았다면 나 자신도 모르게 그것에 길들여져 있을 것이다. 경계가 허물어지면 부모와 부부, 연인 간의 관계 속에서 상대방의 감정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신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며 죄책감을 낳기도 한다.
자기 걱정을 한없이 자식에게 털어놓는 엄마, 술 취한 채 화내는 아버지의 감정이 그대로 아이에게 전해져 불안과 분노의 감정 공동체를 형성한다. 그런 아이는 자신의 감정을 희생시켜서라도 가족이 평화롭기를 소망한다. 이렇게 자라난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자신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을 고스란히 자기의 감정으로 여기고 받아들인다. 감정의 정체를 파악하지 못한다. 타인의 감정까지 자기의 감정으로 떠안고 살다 보니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나에게 어떤 감정이 올라온다면 누군가 그 감정을 느끼게끔 의도했다고 판단하는 것은 잘못된 투사이다. 그래서 경계가 필요하고 그 경계 속에서 나의 감정이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과거 타인의 부탁이나 요구를 적절히 거절하지 못할 때가 있었다. 내가 거절을 하면 ‘저 사람 기분이 나쁘지 않을까? 저 사람이 나를 싫어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있었다. 그래서 마음속은 원하지 않으면서도 겉으로는 착한 양처럼 순응하고 예스맨이 되었다. 아마도 나에 대한 신뢰가 낮았고 타인의 기준이 나를 움직이는 법처럼 느꼈을 것이다.
뒤늦게 내가 예스맨이 되어갈수록 내 안에 불만은 쌓이고 수동·공격적이고 회피적인 성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결국 나는 내 안에 올라오는 감정을 무시한 채 타인의 요구에 끌려 다녔다. 그러나 계속된 성찰과 나를 돌아보는 연습을 통해 이제는 타인과의 경계를 짓고 거리를 두며 내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부분에서 거절할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그러기까지 직접적으로 부딪히는 삶에서 많은 연습과 훈련이 필요했다.
정신분석학은 감정의 역전이 현상을 치료 도구로 사용한다. 분석가가 내담자의 무의식에 도달하는 빠른 길은 내면에서 일어나는 역전이 감정을 점검하는 것이다.
“치료시간에 내담자들은 치료자에게 자신의 감정을 주입한다.(중략) 환자는 그간 자신이 주변 사람들에게 일으켰던 것과 동일한 종류의 갈등을 치료자도 경험하도록 만들면서, 치료자가 이런 갈등을 어떻게 새로운 방식으로 해결해나갈 수 있을지 지켜본다.”
낸시 맥윌리엄스, 『정신분석적 사례이해』 , 학지사, 2005년, 174p
관계 맺기 기술 중 상대방이 가하는 자극에 대해 ‘멈춰서 생각하라’는 타인이 전하는 감정적 자극에 반응하지 말라는 뜻이다. 이것이 어려운 이유는 정서적 자기 경계를 지키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타인이 전하는 감정 자극에 반응하지 않기는 쉽지 않다. 우리는 오늘 하루도 잠시 스치든, 오랜 시간 함께 일을 하든 다양한 사람들과 접촉하고 그곳에서 감정을 주고받는다. 단지 그 감정을 인지하지 못할 뿐이다. 평소에 자신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감정의 흐름을 느끼는지 인지하고 살아야 한다. 그래야 예기치 않은 감정적 자극에 건강하게 반응할 수 있다. 갑자기 호수에 던져진 돌에 파동이 클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다시 잠잠해진다. 우리는 사람들로 인해 흔들리고 넘어지고 혼란에 빠질 수 있다. 하지만 타인과 정서적 경계를 지키는 사람들은 다시 자신으로 돌아올 수 있는 회복의 힘이 있다.
뒤늦게라도 정서적 자기 경계를 갖고 싶다면 정신분석가가 치료 현장에서 내담자에게 해주는 작업을 스스로 해보는 방법이 있다. 내면에서 일어나는 느낌을 알아차리는 것, 그 감정이 내면에 뿌리를 둔 감정인지 외부에서 전해진 감정인지 구분해보는 것, 내면의 무의식이라면 근원을 찾아내 에너지를 제거하고 외부에서 온 감정이라면 반응하지 않으면서 다만 지켜보는 것. 정서적 자기 경계를 지키는 일을 스스로 해보려면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성찰과 내면의 힘이다. 자신이 누구인지 정확히 모르는 사람은 혼란에 빠질 수 있다. 지금 마음속에 일어나는 느낌을 알아차리는 것은 잠깐 멈춰 서서 내 마음의 우물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내부와 외부의 감정을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은 나와 너라는 경계선이 있다는 것이다. 내면의 무의식을 탐색하는 작업은 혼자의 힘으로 어려울 수 있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내가 알지 못하고 인식하지 못하는 무의식의 세계를 탐색하는 것도 자신의 감정을 알아내는데 큰 힘이 될 것이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의 많은 부분이 실은 자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나아가 그 근거 없는 감정이 본래부터 실체가 없는 것임을. 실체 없는 감정에 반응하지 않고 있으면 그것이 마침내 파도처럼 스러진다는 사실을. 그러면 삶의 에너지가 절약되어 보다 창의적인 일에 힘을 쏟을 수 있다는 것을. 하지만 그 모든 일에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심리적 자기 경계를 확립하는 일이다. 심리적 자기 경계를 지키는 일은 어렵다. 글을 읽고 마치면 금방이라도 나 자신을 지킬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막상 그 경계를 지키기 위해 나 자신을 알아차리고 나와 타인을 구분 짓고 무의식 세계를 탐색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김형경은 근거 없는 감정이고, 감정이 실체가 없다고 말한다. 자칫 이 문장은 감정을 소홀히 여기거나 무시해도 된다는 뉘앙스로 보인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다르다. 근거 없는 감정은 없다. 물줄기를 따라가면 그 근원이 있듯이 감정도 시작점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실체가 없는 감정이긴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이 우리 삶을 좌지우지하는 경우가 있다. 그렇기에 감정의 흐름을 인지하고 그것을 들여다보는 여유가 있다면 우리는 감정을 소모하지 않고 그 감정과 불편하지 않는 동거를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