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마주하는 감정 쉼표

인생은 모든 게 공부 거리랍니다

by 호모 비아토르
‘다 공부지요’라고 말하고 나면 참 좋습니다.
김사인, 『공부』중에서


공부가 따로 있을까? 굳이 학교에 가서 의자에 앉아 필기구를 꺼내야 공부일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러면 공부는 무엇일까? 어릴 때는 그저 학교에서 주야장천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 공부였다. 대학을 졸업하면 공부는 영원히 안녕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회에 첫발을 내딛으며 진짜 인생 공부의 시작은 여기부터임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책을 펼치고 앉아야 공부가 아니었다. 세상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공부였다. 어릴 때 느끼지 못했던 부모님의 양어깨에 짊어진 삶의 무게를 볼 수 있는 게 공부였다. 결혼해서 두 자녀를 낳으며 삶의 패턴이 완전히 변했다.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나 자신을 내려놓고 희생하는 것이 공부였다.


진짜 공부는 삶에서 부딪히는 것이었다. 일상의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 내 피부에 와닿을 때 느껴지는 깨달음이었다. 거창하게 “나 지금 공부하고 있어.”라고 말할 필요가 없다. 인생 자체가 공부이니까. 어른이 되어 옆에서 공부하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나는 오늘도 의자에 앉아 주섬주섬 필기구와 노트를 꺼내고 책을 펼친다.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보다 조금 더 나아진 어른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어떤 사람이 인생 공부를 할 수 있을까? 어떤 상황 속에서든 배우려는 태도를 가진 사람이다. 자기중심적이고 자기가 아는 것이 다 인 것처럼 느끼며 지적 오만에 빠져있다면 우리는 어디서든지 배울 수 없다. 오히려 계속 자기가 아는 것이 답이라며 누군가를 가르치려 들 것이다. 그런 사람에게는 더 이상 공부는 없다.

어느덧 마흔을 넘겼고 지나온 세월을 뒤돌아보고 앞으로 살아가야 할 미래를 내다보게 된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숨 가쁘게 살아올 때는 그저 내 직업의 필요에 의해서 사람의 마음에 대해 공부했다. 이제는 내 마음을 진짜 들여다보기 위해 마음공부를 시작하고 있다. 공부를 하는 잣대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이 사회에서 내가 필요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였다. 지금은 잠시 멈춰 서 있다. 오직 나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기 위한 공부를 하고 있다. 멈추니까 보이는 것들이 많다. 뭔가가 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할 때 비로소 공부의 맛을 느끼게 된다. 저 멀리 하늘에 떠 있는 구름, 길가에 핀 들꽃, 매일 만나는 경비실 아저씨,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이웃주민들이 오늘도 내게 배움을 선사한다.


불현듯 평생 공장에서 일하시며 고생하신 엄마의 손을 본다. 아빠의 처진 어깨를 본다. 눈물이 핑 돈다. 두 분의 고된 삶 속에서 인생의 의미는 무엇일까? 애써 눈물을 감춘다. 평소 말수가 없고 조용한 아버지도 술을 드시면 입을 떼신다. “잘 자라줘서 고맙고 결혼하고 잘 살아줘서 고맙다. 내가 해준 게 없어서 미안하다. 고맙다.” 그 말을 들으면 왜 이렇게 마음이 아픈지...

부모님의 인생을 통해서 공부를 한다. 삶의 모양은 다르지만 나도 시간 속에서 늙어갈 것이다. 강원도 산골 마을에서 만나 결혼해서 세 자녀를 낳고, 멀고 먼 부산으로 이사해서 자녀들을 몸소 고생하면서 장성하게 키우신 부모님의 삶을 본다. 그때는 몰랐다. 그저 가진 것 없고 가난한 집이 싫었다. 지금은 알아가고 있다. 부모님과 대화를 나누며 농사일과 부산에서의 적응을 묻는다. 엄마는 삶이 고되고 힘들었으며 너무 젊어서 어떻게 자녀들을 키우는지 몰라 서툴렀다고 한다. 그래도 자녀들이 잘 자라줘서 고맙다고 마무리를 한다. 젊은 시절의 고생이 나이 들어 자녀 걱정하지 않고 노년을 맞이할 수 있어 감사하다고 한다.


내 눈을 조금 더 낮추고 배우려는 마음을 가진다면 김사인이 쓴 ‘공부’ 시에서처럼 ‘다 공부지요’가 된다. 아기 때부터 나이 들어 숨을 거둘 때까지 나는 공부를 할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 됐든 제한하지 않고 오감을 동원해서 공부를 할 것이다. 오감을 열기 전에 마음의 빗장을 먼저 열고 세상을 본다면 공부할 게 너무나 많다. 단지 마음을 닫고 움츠려있기 때문에 그냥 지나치는 것들이 많다.

아직은 한 겨울이고 몸은 저절로 움츠려 든다. 몸은 겨울에 반응하지만 마음은 사계절의 변화에 상관없이 활짝 열고 세상을 보자. 엄마가 아이에게 모유를 공급해서 생명을 주듯, 신은 내게 모든 상황을 주어 그 속에서 알고 깨달아 성장하기를 원할 것이다. 그리고 나의 아빠와 엄마도 그런 나를 응원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다. 오늘도 일상 속에 숨겨진 소소한 공부 거리를 찾아 재미와 흥미로 다가가 보자. 그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 즐거움을 발견하며 그 누군가와 그 배움을 나누며 살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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