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여정
나무는 숲 속에 산다. 숲 속에 있는 나무는 다른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비를 맞는 모습을 본다. 나무는 늘 옆에서 보는 다른 나무와 동일하게 자신을 인식한다. 그러나 정작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다. 나무는 어른이 되었다. 나무는 다른 숲 속 친구들에게 숲 속 생명체와 숲 속 세상 밖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비로소 나무는 다른 존재에 비추어 자신의 모양과 기질을 알게 된다. 나무는 이 숲 속에 여러 가지 종류의 나무가 있고, 생김새와 특징이 다르며 이 숲 속 밖에서는 전혀 한 번도 보지 못한 나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김춘수 시전집』, 현대문학, 2004, 178p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감정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감정을 읽어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감정을 공감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공감받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존재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