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인생법칙은 자연 속에서 걷고 생각하고 기도하는 것이다.
나는 자연에서 걷기를 좋아한다. 어릴 때 9살까지 강원도 산골에서 생활한 기억이 생생하다. 워낙 시골이라 유치원이 없었고 그 흔한 슈퍼마켓이 없었으니 과자, 아이스크림을 구경하기 힘들었다. 그럼에도 산과 들을 종횡무진하며 동네 동생들을 데리고 대장 노릇을 했다. 풀숲에서 온갖 벌레와 뱀을 만나기가 부지기수였고 거침없이 돌아다녔다. 배가 고프면 산에서 다래, 앵두, 머루, 자두, 산딸기, 오디 등을 따 먹었다. 아주 오래전 기억이지만 지금도 자연 속에 있으면 마치 엄마 품에 안긴 것처럼 편안하고 푸근하다. 흙을 밟고 푸른 나무와 새소리를 들으면 ‘여기가 천국인가?’ 싶을 정도의 행복감을 느낀다. 나는 30대 후반까지 결혼, 직장생활, 육아로 분주하게 달려왔다. 그래서인지 과거의 나를 잊고 살았다.
직장 특성상 제한된 곳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다 보니 보이는 곳은 회색빛의 시멘트 벽이 보일 뿐이었다. 38살 겨울에 휴직을 하고 나서야 자유롭게 마음껏 걸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휴직을 통해 하고 싶은 리스트를 기록하였고 그중 하나가 걷기였다.
본격적으로 걷기를 시작한 것은 2020년 가을부터인 것 같다. 이석증으로 어지럼증에 시달렸다. 운전을 못하게 되면서 웬만한 곳은 걸어서 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평지를 걷다가 점차 산으로 눈을 돌려 주말마다 등산을 했다. 집에서 10분 거리의 가까운 산을 매일 새벽, 오후로 나누어 산 둘레 길을 걸었다. 처음 걷기를 한 이유는 건강을 위한 것이었다. 걷기를 지속하면서 점차 어지럼증은 사라졌고, 걷기 덕분에 건강에 자신감이 붙었다. 몸무게에 큰 변화는 없었지만 어느새 매일 산에 오르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점차 걷기를 하면서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되었다. 혼자 걷기를 하면 두 발은 움직이고 있으면서 머릿속 생각을 가지치기해주었다. 걷기를 하면 내 안에 아주 내밀한 소리가 말을 걸고 있었다. 그 소리는 일상이 분주하고 외부 잡음이 심하면 들리지 않는다. 내적인 갈등과 혼란이 심할 때도 들리지 않는다. 오로지 고요한 시간 홀로 자연 속을 걷고 있을 때만 들을 수 있는 세밀한 소리이다. 그 순간 두려움과 불안이 없고 오직 평안과 완전한 만족감을 느끼게 한다. 내 안에 숨겨져 있던 진짜 자아가 정직하고 진실하게 대화를 거는 순간이다.
자연 속의 걷기는 하나님과 기도하는 시간이다. 걷고 있다 보면 복잡했던 생각들이 거치고 저절로 기도가 된다. 회피하고 숨고 싶은 문제들이 떠오르고 그 문제를 하나님께 가져간다. 어떨 때는 친구에게 말하듯 마음속으로 투덜거리기도 한다. 속상한 감정을 토해내듯 속으로 읊조린다. 그렇게 기도를 하고 나면 상황은 여전히 그대로지만 평안하다. 산 둘레 길을 한 바퀴 돌고 나면 내 상황이 바뀐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바뀌어 있었다. 이것이 하나님의 기도 응답 인지도 모르겠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산을 내려온다. 체중이 감량되지 않았지만 심리적 체중은 확실히 가벼워져서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서 나는 매일 산에 간다. 낮은 동네 산이지만 내겐 더없이 소중한 장소이다. 자연 속에서 나를 만나고, 하나님을 만난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집중한다. 때로는 행운처럼 예상하지 못한 좋은 글감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요즘에는 새벽 5시에 일어나 남편과 산 둘레 길을 걷는다. 칠흑 같이 캄캄하지만 핸드폰 불빛을 의지해서 동네 산을 오른다. 새벽 5시의 산은 아주 고요하고 조용하다. 시끄럽게 지저귀는 새들마저 잠을 자는가 보다. 산을 오를 때면 나와 남편의 헐떡거리는 숨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다. 한 바퀴를 돌면 우리 외에도 2명 정도의 어르신들이 손전등을 들고 걷고 있다. 우리는 아는 사이는 아니지만,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나눈다.
나는 내 두 다리가 허락해주는 한 자연 속을 걸을 것이다. 자연은 나와 늘 가까이 있고 어린 시절 산골 풍경을 재현시켜준다. 자연 속에 있으면 어린 시절 느꼈던 천진난만함과 설렘을 느낀다. 사회적 갑옷 속에 갇혀 있는 나를 탈피하고 내 속에 나를 자연 속에서 발견한다. 자연이 주는 푸근함과 치유, 걷기가 주는 깊은 사색과 기도가 어우러져 나를 더 나답게 해 주었다. 이로써 자연 속에서 걷고 생각하고 기도하는 것이 나만의 인생법칙이 되었다.
비온후 산 둘레 길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