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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모 비아토르 Jun 23. 2022

오늘, 무슨 생각하니?

3. 비 오는 날 슬리퍼를 신고 동네 산을 오른다면

2022. 6.16. 목요일     

 

이번 주 화요일, 수요일 이틀 연속 비가 왔다. 이런 날씨에는 눈꺼풀조차 무거워 눈뜨기도 힘들다. 마치 눈꺼풀이 살이 쪄서 미동도 하기 싫은 것 같다. 남편과 나는 날씨와 상관없이 새벽 산을 고집한다. 신발에 진흙이 묻을까 봐 걱정되어 슬리퍼를 신고 출발한다. 낮은 높이의 동네 산이라 우습게 본 탓일까? 첫째 날은 괜찮았는데 두 번째 날은 발바닥과 발가락 사이에 통증이 오기 시작했다. 발바닥과 슬리퍼 사이에 물기와 작은 돌들이 들어갔다. 미끄럽고 마찰이 생기면서 물집이 생겼다. 걸음을 뗄 때마다 통증이 오고 걸음 모양새가 약간은 이상했다. 그렇게 좋아하는 산 둘레 길을 엉거주춤한 걸음으로 걷고 있었다. 제아무리 좋은 산이라도 발가락이 아프니 자꾸 발밑으로 온 신경이 갔다. 비가 와서 운동화를 적시지 않기 위한 목적은 성공했다. 그러나 발에게 통증과 불편함을 주었다. 미안했다.      


운동화에 진흙을 묻히는 게 나을까? 뒤늦게 질문을 던진다.

오늘 이 상황을 보며 한 가지를 배운다. 인생에서 나에게 맞지 않는 역할, 명함, 모양새로 자신을 불편하게 하는 건 없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하나를 얻으면 다른 하나는 잃는 법이다. 두 개를 다 얻을 수는 없다. 굳이 통증과 불편함을 주면서까지 삶에서 취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분명 자신에게 이득이 있기에 그렇게 하고 있겠지. 그러나 한 번 더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 이득을 위해서 더 큰 삶의 손실을 초래하고 있는 건 아닌지 말이다.       


이득과 손실이라는 단어 앞에 머뭇거려진다. 삶의 진실을 들춰야 할까? 나에게 이득이라고 생각했던 부분이 사실은 큰 손실이었다는 것을 발견하면 어떡하지? 쉽게 바꿀 수 있는 용기는 있을까? 일단 조금이라도 이득이면 현재 자신과 타협하며 아이를 달래듯 안주할 수 있다. 그렇다고 손실을 무시하거나 회피한 채 그냥 살아가는 게 맞는 걸까?    

  

손익계산서가 분명한 삶은 무엇일까? 그 기준은 타인이 아니라 오로지 내 몫일 것이다. 인간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심리적인 요인에 의해 신체적인 질환이 나타나기도 하고, 신체적인 질환이 다 나았음에도 심리적인 이유로 그 질환을 붙잡고 있기도 한다. 타인이 볼 때는 명확한 것들이 자기 자신 안에 들어오면 복잡해지고 추상화가 되어버린다. 결국 손익계산서가 분명한 삶은 존재하지 않는다. 내 안에서 그 기준이 모호하고 기준조차 모르고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비 오는 날 운동화에 물기 가득한 진흙을 묻히지 않겠다는 목적으로 이틀을 슬리퍼를 신고 걸었던 그녀는 결국 그 목적대로 운동화는 깨끗했다. 그러나 발에 물집이 생겨 며칠 동안 밴드를 붙이고 걸을 때 통증과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다. 어떤 선택이 옳았을까? 지금도 정확하게 답을 내릴 수 없다. 슬리퍼를 신었던 순간엔 내 선택이 옳았다. 물집이 생긴 경험 이후 어느 비가 오는 날 운동화를 신어야 겠다는 그 선택도 옳을 것이다. 이렇듯 선택이란 나에게 맞지 않을 것 같은 것도 그 순간엔 옳은 것이고 시간이 지난 후에 다른 선택을 하는 것도 옳은 것이다. 누구의 선택도 비난받을 수 없다. 당시에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단지 그 당사자가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느냐가 초점이다. 내 경험과 지식을 기준으로 봤을 때 틀린 선택이라도 함부로 조언하지 말 것이며 묵묵히 그 곁에서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보자. 그 사람의 선택을 존중하고 실패했을 때 혹여 도움을 요청하면 손잡아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람은 참 단순하다. 한 면만을 보고 단정적으로 판단하고 평가한다. 그러나 인생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입체적이다. 여러 각도에서 보면 한 면도 달리 보인다. 동일한 상황을 보더라도 각기 사람들마다 서있는 상황, 위치, 마음상태에 따라  천지차이다. 내가 보는 상황이 사실이냐를 논하기보다 내가 보는 무엇이 사람들마다 수십가지로 다르게 보일 수 있다는 생각을 먼저해야 하지 않을까? 어떤 상황과 사람에 대해서 다각적으로 볼 수 있는 입체적인 눈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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