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무슨 생각하니?
4. 그냥 기분이 좋아
참 오랜만이다. 사람들 앞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낯선 사람들과 말하고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이며 소통하는 시간은 내 마음을 설레게 한다. 마을학교에서 ‘나를 탐색하는 그림동화’라는 주제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지난밤 그림동화를 여러 번 읽고, 자료를 수집하고, ppt 화면을 보며 계속해서 곱씹었다. ‘이게 정말 나일까?’라는 그림동화를 가지고 자기를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어른이 되었지만 진짜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진지하게 고민해 볼 기회가 없다. 바쁘고 분주하게 살아가는 시간 속에 자신의 몸을 던져 그저 흘러왔을지도 모르겠다.
프로그램을 준비하면서부터 나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알 수 없는 뭔가가 요동친다. 하나의 그림동화가 정해지면 그 주제와 관련된 자료를 수집한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프로그램 하나가 창조된다. 그림책 속에서 던질 수 있는 질문과 관련된 다른 책문장을 찾는다. 작가의 세계를 살펴보고 인터뷰 속에 인상적으로 말했던 그의 말을 ppt에 집어넣는다. 이러한 과정은 내 마음을 두근거리고 설레게 한다.
프로그램을 하기 전에 여러 번 반복해서 시뮬레이션을 해본다. 곱씹는 과정에서 나는 진행자와 대상자를 번갈아 오가며 진행자가 되었다가, 대상자가 되기도 한다. 이미 사전에 가상으로 프로그램 대상자가 되어 에너지를 제공받은 느낌이다.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과정은 오랜 시간 심혈을 기울기고 몰입과 집중이 필요한 시간이다. 이 프로그램을 도구로 삼아 낯선 사람들의 미지세계를 탐험하는 과정은 내 눈과 마음을 빛나게 한다.
내가 살아있다고 느끼는 순간이다. 참여자들의 생각지도 못한 말도 그 시간 안에서는 모두 허용된다. 다양한 참여자들의 생각표현은 나를 긴장시키는 것과 동시에 오히려 내 좁은 생각을 넓혀주는 귀한 재료가 된다. 내가 지금까지 하나만 고집하고 생각했다면 참여자들의 다양한 생각들로 고집을 깨고 생각을 확장시키는 계기가 마련된다. 그들은 프로그램 안에서 주인공이고 자기를 발견해 나가는 시간이다. 그래서 어떤 생각도 자유로울 수 있고 자기의 것으로 가져갈 수 있다. 나는 그저 그들이 자기 자신을 탐색하는데 도구가 될 뿐이다.
1시간 30분의 프로그램이 끝났다. 내 눈은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기분이 좋았다. 어떤 이유일까? 그냥 이 자리에 서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내가 좋았다. 잘하고 있는지 못했는지는 모르겠다. 자기애에 빠져서 그런 것은 아니다. 원래부터 프로그램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 그 자체가 내게 행복이었다. 어떤 주제를 정해서 프로그램 매뉴얼을 만들고, 그것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는 과정은 나에게 즐겁기만 하다.
언젠가 이 자리가 그리워질 것 같다. 5년 만에 선 이 자리가 어제 했던 일처럼 생생하다. 다시 복직하면 이 일을 못한다. 기회가 된다면 자원봉사를 통해서라도 계속 사람들 앞에 서고 싶다. 그들의 다양한 소리를 귀 기울여 듣고 그들 스스로 바라는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등불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 일은 그들뿐 아니라 나 자신을 돌아보고 성장하는 기회를 준다.
누군가는 착각한다. 상담자가 도움을 주는 사람이고 내담자는 도움을 받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하지만 나는 아니다. 상담자와 내담자는 서로에게 동지이다. 서로 주거니 받거니 피드백을 하면서 서로가 서로를 성장시켜주는 고마운 존재이다. 상담자는 내담자의 어려움을 듣고 도울 방법을 찾는 과정에서 자신의 삶을 비춰보고 재점검하게 된다. 이미 내담자에게 개입해서 치료하는 과정에서 상담자는 내면의 큰 힘을 얻은 셈이다. 때론 사람과의 관계에서 소진이 찾아올 수 있다. 그럼에도 나는 생각한다. 사람이 희망이다. 사람을 살리고 일으켜 세우고 그들 스스로 자기만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손을 잡아주어야 한다고 믿는다.
어둠 속에 있으면 그곳이 어둠이었는지 인지할 수 없다. 불을 비추면 비로소 자신이 어둠 속에 있었음을 안다.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어둠 속에 있는지 모른 채 당연하고 익숙한 환경에서 살아간다. 나 역시 어둠에 있을 때 그게 어둠인지 몰랐다. 빛을 발견하고 나서 알았다. 나처럼 모른 채 살아가는 누군가에게 그 빛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 오늘 참여했던 사람들이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발견하고 찾아가는 계기가 되었기를 희망해본다. 나 역시 매일 내가 누구인지 질문하고 찾고 발견하는 과정을 현재도 계속 진행한다. 이것은 평생의 숙제이다. 하나님이 주신 독특한 자기다움이 각자 존재한다. 자기 다운 삶을 살기 위해 자기를 찾고 발견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