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오색딱따구리의 육아일기'(김성호 저)는
어느 날 책을 보다가 그 책 속에서 우연히 알게 된 책이다.
책을 읽다 보면 책이 또 다른 책들을 어미닭처럼 품고 있는 경우가 있어 그렇게 만나게 된 책이었다.
지방의 한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저자는
여느 때처럼 산 자락을 따라 새를 관찰하러 가다가 큰오색딱따구리 암수 두 마리가 봄 번식기를 맞아
죽은 나무에 둥지를 파고 있는 걸 우연히 발견한다.
그렇게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된 관찰이 무려 50일이나 이어졌고 이를 통해 큰오색딱따구리의 산란과 육아, 이소를 한 번에 다 보여주는 한 권의 책이 탄생했다.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개의치 않고 밤낮으로 기다리고 관찰하며 힘들게 완성된 기록물이다.
그런 열정으로 몸이 부서져라 나는 무언가를
해본 적이 있었나.
저자가 존경스럽고 아름다운 사람으로 느껴졌다.
큰오색딱따구리가 새끼를 키워내는 과정은 지난하고 힘들었다.
처음엔 머리가 부서져라 나무에 구멍을 파는 작업을
암수 교대로 했다.
몇 날 며칠을 교대로 해가 떠 있는 동안 둥지를 파다가
날이 저물면 어딘가로 날아가서 아침이 되면 다시 와
또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게
건설노동자와 다를 게 없다.
딱따구리의 둥지는 인기가 많아 자칫 다른 새들에게 뺏기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안전을 위해 네다섯 개의 구멍을 이곳저곳에 한꺼번에 판다고 하니 보통 고된 일이 아니다.
불쌍하다.
머리를 그렇게 망치처럼 두드려대면
치매나 뇌출혈 같은 병에 걸리지 않을까.
새끼가 태어나면 딱정벌레 애벌레를 열심히 물어다 먹이는데 매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오십 번에서 육십 번 정도를 교대로 물어 나른다.
엄청난 체력이다.
원래는 세 마리가 있었는데 가장 약한 한 마리가 죽어서 수컷새가 물고 멀리 날아갔다.
새도 감정이 있을까.
마음이 무척 아팠을 것 같은데...
저물면 둥지에서 아기새와 같이 자는 새는
항상 수컷이었고 먹이를 물어 나르는 횟수도
대부분 암컷보다 더 많았다.
조금씩 자라서 덩치가 커진 아기새들은
바깥세상이 궁금해져서 자꾸만 둥지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구경을 했다.
그러다 우연히 옆가지에 앉아 쉬고 있던 맹금류의 한 종인 매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순진한 아기새는 옆집 다정한 아저씨라도 되는 양
고개를 내밀어 더 가까이 보려 하고...
일촉즉발의 상황이 되었다.
그때 이를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아빠새가 둘 사이의 가지로 내려앉으며 매에게 덤벼들었다.
목숨을 걸고 덤비는 아빠새의 기세에 결국 매는 날아가고 아기새는 목숨을 구했다.
신기하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새끼를 보호하려는 부모의 본능은 자신을 아낌없이 던져버리고 희생하게 만든다.
왜 그럴까.
그럴 때는 다들 제정신이 아니다.
새끼들이 다 크면 둥지를 떠나게 유도를 한다.
먹이를 적게 갖다 줘서 살짝 배고프게 하고
입에 물고도 주지 않고 옆가지에 앉아
밖으로 나오도록 이끈다.
그렇게 첫째가 날아서 성공적으로 독립을 했고
남은 둘째도 엄마의 유도에 이틀 후 떠나갔다.
하지만 먹이를 구하러 나갔던 아빠새는 그 사실을 모르고 뒤늦게 먹이를 잔뜩 물고 와 둥지 입구를 툭툭 두드린다.
평소 같으면 당장 튀어나와 먹이를 받아먹어야 할 둘째가 반응이 없다
몇 번 두드려보다 둘째가 진짜 없는 걸 발견한 아빠새는 화들짝 놀라
둥지나무를 아래에서 위까지 샅샅이 뒤지고 다닌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둘째가 없다.
불안하고 당황한 아빠새는 찾고 찾고 또 찾으며 무려
네 시간을 찾았다고 한다.
먹이려고 물고 온 애벌레를 놓지 않고 여전히 물고서...
미친 듯이 이리저리 헤매고 다니던 아빠새는 마지막에 나무 꼭대기로 올라가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고 한다.
결국 떠났다는 것을 받아들인 걸까.
새들은 왜 함께 모여 이별을 하지 않을까.
기별도 없이 갑자기 사라진 자식을 다시 만날 수는 있을까. 가족이었다가 어느 날 갑자기 뿔뿔이 흩어져 각자의 길을 간다.
사람보다 훨씬 독립적이고 알아서 자기 길을 잘 찾아가니 훌륭하다. 하지만 작별인사는 하고 가야 하지 않나.
아빠새의 황망한 행동은
새들도 분명히 감정이 있다는 걸 보여준다.
아빠새의 상실감이 나에게도 안타깝고 슬프게 전해졌다.
나중에 다시 찾은 그 둥지에는 말벌이 집을 짓고 살고 있었다고 한다.
그들은 한때 그곳에 사랑스러운 큰 오색딱따구리 가족이 살았었다는 걸 알까.
생명이 있는 것들은 모두가 그저 시간의 전깃줄 위에 잠시 앉아 있다가 때가 되면 홀연히 사라진다.
우리도 큰오색딱따구리도 다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