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 미쳤나 봐."
옆에 앉은 중년여성이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뭐지?'하고 그녀의 시선을 따라간 곳은 카페의 큰 통창.
창문 너머 밖에는 열대 폭우성 비바람이 키 큰 나무들을 미친 듯이 흔들어 대며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멀끔했던 하늘이 갑자기 급변해 통창에 물을 퍼붓고 있어 워터파크에 온 것 같았다.
위험해 보이는 자연의 몸부림은 웅장하고 장엄해서 카페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하나로 묶어 놓았다.
읽던 책에서 시선을 돌려, 쓰던 글에서 잠시 손을 멈추고 멍하게 바라보는 시선들.
다들 무슨 생각을 하며 바라볼까.
충동적이고 잔인한 듯 보이는 자연의 변덕스러움은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어도 속이 시원해졌다.
살면서 괴롭고 고통스러운 순간마다 나는 울고 싶었다
가슴을 치면서 소리를 지르며 펑펑 울고 싶었다
그러면 답답하게 막힌 속이 시원하게 뻥 뚫릴 것 같았고
조금은 숨도 쉬어질 것 같아서였다.
눈물이 막은 것도 아닐 텐데
왜 그랬을까
단 한 방울도 흘릴 수 없어 건조한 울음만 울며
가짜인 것만 같은 슬픔과 애도는 나를 진정으로 위로해 주지 못했고 내 안에는 미처 뱉어내지 못한 슬픔들이 가래침처럼 목구멍에 걸려 덜렁거리고 있었다
카악 켁 크아악...
아무리 애를 써도 뱉어지지 않는 슬픔은 애통함으로 변했고 나를 병들게 했다.
입은 달려있으나 그 어느 것도 뱉어지지 않는 물고기 같은 입. 땅바닥 위에 내쳐진 물고기의 버끔거리는 입.
서서히 느려지고 눈빛이 흐려지고... 죽는다.
모든 태어난 것들이 다 죽듯이...
어릴 때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빨리 되지 않을 거면 빨리 죽고 싶었다.
열 살 남짓한 아이가 뭐 그렇게 철학적인 생각을 하며 삶과 죽음으로 머리를 가득 채웠는지.
차가운 마루에 앉으면 멀리 하늘로 송전탑의 깜박이는 빨간빛이 보였다.
내 어릴 적 상상 속 친구는 바로 그 송전탑이었다.
별보다 낮아 더 밝게 보이는 송전탑은 밤이고 낮이고 언제나 그 자리에서 깜박이며 나의 친구가 되어주었다.
피차 달리 갈 곳도 없는 외로운 신세여서 더 서로의 눈이 바라봐졌을까.
기약 없는 영원의 하늘에서 홀로 깜빡이며 나에게 등대가 되어 주었다. 외로우면 그 무엇이라도 친구가 될 수 있다.
상상 속이든 상상 밖이든 외로움은 나처럼 외로운 존재를 쉽게 눈에 뜨이게 하고 서로 의지하게 하여 지팡이가 되어준다.
내 가슴속 세상이 다른 이보다 조금이라도 넓다면 아마 그때 만들어졌을 거라고 확신한다. 뭔가가 만들어지는데 외로운 시간은 필수니까.
지금도 그 허허로운 공간에 서 있을까
거기 서서 나만큼 외로운, 바싹 마른 누군가와 친구하고 있을까.
그러겠지. 분명 그럴 것이다.
진실하고 변치 않는 영원한 친구니까.
변하는 모든 것은 슬프다.
변하지 마
제발...
평생 울지 못하고 가득 고여 있는 울음은 이제는 다 말라 버렸다. 밖으로 나왔어야 할 눈물들이 다 증발되고 굳어서 짜고 쓴 돌이 되어 심장을 채우고 있다.
정말이지 뛰기라도 한다면 달그락달그락 소리가 난다.
뛰지 말아야지.
고인 슬픔이 내는 소리는 너무 허무하다
좌절된 꿈과 미련, 후회가 서로 대화하는 것 같다.
무슨 결론이 나겠어 그저 허무할 뿐이지.
대신 울어주는 것만 같은 큰 비가 온다.
자연은 이래 저래 나랑 잘 맞는다.
나를 위로해 주고 달래준다.
친구가 되어준다.
사람보다 낫다.
오늘은 대단한 자연이 큰 울음을 울었다.
시원하게...
설움도 조금 씻겨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