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에 갔다.
여름휴가다.
너무 더운 여름 사람들이 몰리는 7월, 8월은 피하고
6월에 갔다.
발리는 볼 것이 많아서
시간이 부족할 거라고들 하던데...
정말 그랬다.
여러 다양한 장소와 경험들 중 인상 깊었던 바투르산으로의 일출 경험을 공유하고 싶어 이 글을 쓴다.
바투르산은 인도네시아 발리섬 북동부에 있는
1717미터의 활화산으로
가장 최근 분출은 2000년도라고 한다.
살아있는 화산으로 일출을 보러 간다는 사실이
약간 위험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지금은 안정된 상태라 하니
화산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호기심이 생겼다.
사실 몸을 부리는 게 귀찮고,
힘든 게 싫은 나로서는
휴양하듯 편하게 지내다 가고픈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젊은 애들의 에너지에 올라타고 가보자하는
뚝심이 생겼다.
새벽 2시 반 출발하는 일정이라 빡새기도 하고
차로 두 시간을 달려야 한다니
고생길이 훤히 그려졌다.
약속된 시간에 못 일어날까 봐 긴장을 한 탓인지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멍한 머리로 1시간을 달려서
산 근처 어느 허름한 농가 옆에서 택시를 내려 기다리고 있는데 지프차 두대가 나타났다.
가는 길이 추우니 담요가 필요하단다.
이미 지불한 비싼 경비에 포함되지 않은
담요 대여비는 개당 5천 원.
하지만 나로선 꽤 도움이 되었다.
지프는 2인승인데
뒤쪽 짐칸을 개조해 작고 좁은 벤치를 만들어
운전자는 안전하고 지붕 달린 앞쪽 좌석에
손님은 뒤쪽 지붕 없고 불편한 짐칸에 타라 한다.
어처구니없어서 ㅠㅜ.
비라도 오면 그야말로 쫄딱 맞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드디어 출발...
새벽 찬바람에 으드드 이빨이 부딪히는 데다
비포장길을 덜컹거리며 가느라 청룡열차라도 탄 것 같았다. 엉덩이가 5센티 10센티씩 튀어올라
딱딱한 의자에 부딪혀 허리가 아픈 데다
자칫 밖으로 튕겨 나갈까 팔걸이를 움켜쥐고 가기를 40여분.
산의 중턱쯤 되는 곳에 도착했다.
산 정상으로 가는 줄 알았는데...
지프를 타고 오는 길 중간중간
머리에 헤드램프를 달고 무리 지어 걸어가던 사람들을 보았는데 그 순례자 같은 사람들은 바로 트래킹족이었다.
우리처럼 차를 빌려 타지 않고 긴 시간을 걸어서 산정상에 오르는 사람들이다.
거의 백인들이었고 강인해 보였다.
힘들여 몸으로 부딪히는 도전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이 존경스러워 보였다.
시간적 여유가 있고 체력이 된다면 나도 해보고 싶었다.
어쨌든 우린 지프를 타고 산 중턱까지 기어 올라갔고
가로로 파놓은 대여섯 줄의 편평한 공간 한 모퉁이에 최대한 밀착해서 차를 주차시키고
해가 뜨기를 기다렸다.
어두운 밤하늘에 총총히 떠 있는 별들은
어릴 적 밤하늘을 떠올리게 했다.
깜깜하고 어두울수록 잘 보이는 역설적인 별들.
동행한 운전자 총각이 아침을 먹겠냐고 물어본다.
엥? 새벽에 뭔 아침밥?
담요값도 비싸게 받더니 밥장사도 하려는 건가?
미심쩍어 안 먹는다고 했더니
여행경비에 포함된 거란다.
컵라면과 샌드위치를 갖다 주었고
당연히 맛은 없었다.
바로 아래쪽에 화장실이 있어서 가니
음험해 보이는 영감이 10000루피아를 내란다.
헐 ~ 한국 돈 900원 정도다.
산중턱에 화장실 세워놓고 이 많은 사람들이 한 번씩 가면?
일 년이면 빌딩을 사겠네.
산에 화장실은 없으면 무료, 있으면 유료다.
지프차 위에 올라가 사진을 찍으란다.
이렇게 어두운데 사진을 찍으라고?
속는 셈 치고 원하는 대로 이런저런 포즈를 하며 하늘을 배경으로 찍었다.
근데 웬걸...
밤하늘에 별이 보인다. 그 아래 내 모습도 잘 나왔다.
인도네시아인들 사진 천재인가.
멋지다. 이런 사진 처음이다.
밤하늘을 손가락으로 찌르며 때로는 레이저 손전등으로 하늘에 궤적을 그리는 사진들이 비현실적이다.
오기를 잘했다.
이렇게 낯선 곳에서
많은 낯선 사람들과
지프차 지붕에 올라앉아
일출을 기다리며.
두런두런 얘기하고 간식 먹고 별보고.
어디서 이런 체험을 해 보겠는가.
드디어 해가 떠오른다.
기다린 시간이 무색하게 순식간에 떠오른다.
일출을 배경으로 또 사진을 찍는다.
해가 떠오르니 주변 풍경이 환히 보인다.
화산이라 그런지 모든 돌들이 까맣고
구멍이 숭숭 뚫려있다.
제주도 돌들과는 또 다르다.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알록달록 멋진 지프차들이
사진 속 특별한 배경을 만들어 준다.
오는 비행기 안에서도
연기가 솟아오르는 활화산을 목격했는데.
인도네시아는 화산이 많고
화산이 자고 있을 땐 이렇게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나라인가 보다.
하긴 애초에 발리도 화산이 폭발해서 만들어진 화산섬이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화산을 신성시하는 느낌을 받았다.
어머니 같은 존재인 것이다
많이 기억에 남을 것 같다.
혹시 발리에 가거든
바투르 산 중턱의 화장실은 꼭 들러보길 추천한다. 거기엔 음험한 화장실도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