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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 짐바란 시푸드와 선셋비치

by 범고래

인도네시아 발리로 떠난 여행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사실 가보기 전엔

그저 흔히 가는 동남아 관광지중 하나겠지 싶어서

크게 기대하진 않았는데


아름다운 자연과

도시 자체의 예술적인 감수성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중 그저 싱싱한 해물이 먹고 싶어

잠시 들른 짐바란비치는

바닷가 선셋과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겨졌다.



막 도착해서 가게 뒤편으로 차를 대고 내릴 땐

하늘이 온통 연기로 가득해 무슨 쥐불놀이라도 하나 싶었다.

그러다 가게 뒷문을 통과해 안으로 들어가자 갑자기 탁 트인 넓은 해변이 펼쳐졌다.


매캐한 연기는 해변을 따라 끝도 없이 늘어선 시푸드 가게에서 생선을 굽느라 나는 것이었다.


바닷가 모래밭 위로는


하얀 식탁보를 두른 테이블이 줄을 맞춰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고 이미 많은 좌석이 채워져 사람들은 저마다 가족끼리 음식을 먹고 있었다.


기다리다 안내된 자리에 앉을 때쯤에는

이미 태양이 살짝 기울어

공기가 푸른빛을 머금었다.


오래지 않아 나온 음식은 커다란 쟁반에

바닷가재와 생선 왕새우 등 신선한 해물이

먹기 좋게 손질되어 양념을 넉넉히 두르고 있었다.​


우리는 부자가 된 기분으로 평소엔 비싸서 잘 먹지도 못하는 해물요리를 사이좋게 나눠 먹었다.


갓 잡은 해물은 입안에서

기름지고 고소한 향미를 폭죽처럼 터트리며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었고


우리는 서로의 눈빛 속에서 말로 다 담아내지 못할

삶의 기쁨을 읽었다.


음식 하나로 기적을 일으키다니...


하지만 기적 같은 일이 또 일어났다.


갑자기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한 무리의 밴드가 우리의 주위를 둘러싸고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어디서 왔냐고 해서 한국에서 왔다고 했더니...


우리~마 나믄 우여니 아니야

고것은~ 우리의~ 바래 미여써

이끼에 너무안 나의 운명 이여끼에

바랄꾸는 어찌만 여워늘 태오리...


이렇게 신청하지도 않은 노사연 씨의 만남 노래를

뼈 없는 오징어 같은 발음으로 불러 제꼈다.


하와이안 셔츠를 입고 기타와 북 리듬악기 작은 엠프 등을 들고 대여섯 명이 몰려다니며

멕시코 마리아치라도 된 듯 기분을 살랑살랑 띄워주었다.


남편은 노래가 끝나자 부라보를 연신 외치며 멋지게 호주머니에서 5만 루피아(4500원)를 꺼내 재벌 2세처럼 흔들며 악사에게 주었다.


하지만 악사는 남편의 수작에 속지 않고

너무 적은 돈에 실망하여 쌩하니 다른 테이블로 가버렸다.


몇 곡 들은 뒤에 줘도 될 걸 미리 줘서 가버렸다고

타박을 했고

할 수 없이 그 후로는 다른 테이블에서 들려오는 노래를 귀동냥해서 들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귀를 쫑긋 세우고 듣고 있는 걸 눈치챈 걸까


갑자기 그들은 치사하게 소리를 작게 하여 노래를 불렀고

그럴수록 내 귀는 토끼처럼 예민하게 안테나를 세우고 그들의 동선을 쫓아 이리저리 움직였다.


덕분에 나는 밥을 먹는 내내 공짜로 음악을 다 들을 수 있었고 그들과 다르게 기분이 좋았다.


한국 사람이 많이 오는지 한국 노래를 많이 알고 있었고 대부분은 7080 노래여서 신기했다



밥을 다 먹고 난 후엔 해변에서 산책을 했다.


반짝이는 야광 장난감이 어둑해진 공중을 날아다니고 아이들은 함성을 지르며 이리저리 몰려다녔다.


주홍빛으로 반짝이는 물먹은 모래사장에 찍힌 수많은 발자국들, 뿌옇게 가라앉는 하루를 배경으로 거니는 사람들과 사람을 태운 말들이 섞여 든다.


여기가 천국이고 지금이 행복이었다.


모든 아름다운 것들이 버무려진 이 순간은 너무 완벽해서 믿기지 않을 정도였고 벅차오르는 기쁨이 있었지만


그 끝엔 슬픔의 맛도 느껴졌다.


다른 것들처럼 이것들도 모두 안개처럼 사라지겠지...


테이블 위에 켜진 작은 촛불

사랑스러운 것들을 이미 덮어버린 어둠

그 안에 도란도란 들리는 다정한 대화들

발바닥에 닿는 시원한 모래

얼굴을 스치는 부드러운 바람

저 멀리 보이는 작은 불빛들

공기 속을 부유하는 냄새


하나하나 다 포장해서 가져갈 순 없을까

기억이 희미해진 먼 훗날

살며시 열어서

지금 이 순간으로 다시 한번

돌아올 수 있도록...


유한한 것들은 애틋하고 아쉽고 허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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