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떴다.
사위는 캄캄했고 밖에는 비바람이 몰아치는지 나뭇가지가 부딪히며 내는 소리들로 달그락거렸다.
먹물 같은 어둠이 내려앉아 눈을 뜨나 감으나 차이는 없었지만 나는 눈을 뜨고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따뜻한 이불속에 있으니 바깥의 요란하고 불안한 진동과 소란이 위협적으로 느껴지지 않고 안전하고 아늑하게 느껴졌다.
새벽을 깨우는 빗소리가 나를 깨우고 하루를 깨우는 중이다.
자연의 기쁨과 축복을 시시각각 누리고 사는 지금이 행복하다. 한 걸음만 내디디면 마당이 있다. 계절의 온갖 이야기가 가득 담긴 마당은 밤새 거대한 자연의 꽃다발을 만들어 아침마다 나에게 안겨준다. 소박하고 단순하게 사는 법도 자연 속에서 배우는 중이다.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고 삶의 태도를 정비하며 내 삶은 진화 중이다. 무엇이 나를 구속하고 자유롭게 하는지 등등 나를 대상으로 연구를 한다고 할까.
모든 문제를 다 벗어버릴 수는 없겠지만 묵은 서랍을 뒤집어 정리하는 기분으로 나를 정돈하다 보면 내 삶에 붙어 있던 쓸모없는 것들을 분간할 수 있지 않을까.
삶이 고단하고 거추장스럽게 느껴지는 이유는 많이 있을 것이다. 이제는 굳이 남에게 나를 증명해 보이느라 애쓰던 관성을 버리고 나에게 시선을 돌려 내 눈을 바라보며 깊이 묻혀있던 얘기들을 들어주고 싶다.
나만이 듣고 공감해 줄 수 있는 얘기들이었지만 그동안 애써 외면해 왔던 얘기들을.
그동안 무심하게 억눌러만 왔고 나를 사랑할 줄 몰랐던 것 같다. 내 안에서 무성하게 자란 고통은 내가 물을 주고 키웠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는 살살 달래서 떠나보내고 싶은데 잘될 수 있을까.
사랑은 내가 나에게 줄 때 더욱 충만하게 줄 수 있고 뫼비우스의 띠처럼 영원히 단절되지 않는 사랑의 띠가 된다.
시시하고 수상쩍어 보이지만 고고학자 같은 인내심으로 나를 탐색하며 얻은 깨달음이다. 지금은 뾰족한 머리 부분이 겨우 보이는 정도이지만 언젠가는 끈기 있는 붓질로 땅속에 묻혀있던 거대한 형체가 드러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내 참모습이 나에게 자신을 드러내고 말을 거는 과정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정받지 못하고 무시당해 왔던 나의 진정한 본체이다. 버리려 해도 몸에 딱 붙어 버려지지 않는, 나를 쓸모없이 소진시키던 존재 증명의 압박감을 훌훌 벗어버릴 수 있는 날이 올 거라 믿는다.
모기와 벌레와 뱀과 도둑과 강도와... 음 또 뭐가 있을까.
처음에 내 발목을 잡던 모든 우려와 걱정이 무색하게 나는 자연 속에 푹 파묻혀 단잠을 자는 중이다.
전원주택은 나를 많이 닮았다. 진가를 몰라주는 세상을 떠나 우리는 서로를 꼭 껴안고 잘 살아간다. 증명할 필요는 없다. 사람이든 집이든 다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