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만 여는 식당

by 범고래




겨울에만 여는 식당이 있다고 한다.
그 식당은 겨울만 되면 웨이팅이 길고 문전성시라는데 주요 고객은 독수리이고 간혹 까마귀도 섞여 있다.
먼 나라 몽골에서 여기까지 날아와 줄을 서는 독수리는 눈 덮인 광활한 논과 밭을 날아다니며 여기저기 널려있는 생고기를 맛있게 먹는다.

십여 년 전 탈진해 죽은 독수리를 발견해 동물단체에서 죽음의 원인을 알고자 부검을 시행했다고 한다. 하지만 위장을 갈라보니 그 안에는 아무것도 없이 텅 빈 채 위액만 흐르고 있었다고 한다.

영하 40도를 넘나드는 추운 겨울을 견디지 못해 따뜻한 남쪽나라로 날아왔지만 먹을 게 없어 결국 굶어 죽고 말았던 것이다.

그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그때부터 겨울마다 손님들에게 식당을 열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두 번 350킬로 정도의 고기를 넓은 논밭 여기저기에 나누어 놓으면 기다리고 있던 독수리들이 몰려와 사이좋게 나누어 먹는다.

독수리는 죽은 동물의 사체만 먹어서 자연의 청소부라는 별명이 붙어있고 지구의 생태계 순환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한다. 어찌 됐든 지구를 밥상으로 살아가는 같은 식구로서 굶주리는 어떤 생명체도 (사람이든 동물이든) 있으면 안 되겠기에 선한 지구인들이 식당을 열어 무료급식을 시작한 거라고 하니 그 소식을 듣는 순간 마음이 따뜻해지고 행복호르몬이 솟아오른다.

사실 겨울에만 여는 식당은 우리 집에도 있다.
추운 겨울 먹이가 없어 굶어 죽기 십상인 새들을 위해 보릿고개를 무사히 넘기도록 삼 년 전부터 열게 된 무료식당이다.

찬바람이 불고 서리가 끼기 시작하면 머릿속에서 딸랑딸랑 종이 울리기 시작하고 나는 그 소리를 신호로 식당 문을 연다. 해바라기씨와 각종 곡식을 섞어 퓨전요리를 만들어 새들의 식성을 살피고 잘 안 먹는 곡식은 가려내어 입맛 까다로운 새들의 비위를 맞춘다. 처음에는 몇 마리 오지 않던 식당이 맛집이라고 알음알음 소문이 났는지 멀리서도 여러 산새들이 찾아와 줄을 선다. 진짜 사람처럼 순서를 기다리기도 하고 나름대로 규칙을 잘 지킨다. 이런 게 바로 자연의 질서인가 보다.

올해는 딱따구리도 찾아와 제집처럼 하루 종일 머문다. 대추나무를 오르내리기도 하고 지붕 밑 약한 곳에 부리를 대고 드릴질을 하며 구멍을 내기도 한다. 처음엔 싫어서 쫓기도 했는데 지금은 포기하고 새들의 이런저런 성격을 받아주며 살아가고 있다.

밤이면 특이한 리듬에 맞춰 랩을 하는 멧비둘기나 머리에 유대인처럼 까만 모자를 쓴 물까치, 알록달록 귀여운 곤줄박이, 박새, 가끔씩 찾아와 휘파람을 불며 꼬리를 흔들어대는 딱새와 멋진 잿빛의 직박구리, 동고비, 논에서 먹이가 떨어져 날아온 참새떼까지 이름을 알기도 모르기도 하는 다양한 새들이 한 번씩 들러 안부를 전하고 간다.

도시에 살 땐 비둘기와 까치 말고는 마주칠 일이 없었고 내가 이렇게 새에 관심을 갖게 되리라 생각도 못 했다. 그래서인지 지금처럼 새를 사랑하게 된 게 사뭇 신비롭다.

다양하고 귀여운 새들이 이제는 내 마음속으로 날아들어와 사랑스러운 자태로 재롱을 부린다. 날마다 문전성시를 이루는 수상한 식당에는 해가 드는 날이면 동네 고양이도 자리를 잡고 그 소란을 꾸벅꾸벅 졸며 구경을 한다.

하늘엔 구름이 오종종 흘러가고 나뭇가지엔 바람이 살랑거리고 마당에는 평화가 가득하다. 혼자서만 잘 살면 만들어질 수 없는, 나누며 살아야 비로소 알 수 있는 소박하고 소중한 평화는 행복과 닮은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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