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엔 현자가 산다
새카만 눈알이 구슬처럼 반짝인다.
자알 들여다보면 맑은 영혼마저 보일 것 같다. 말은 못 해도 우린 서로 다 통하고 죽이 척척 맞는다. 이렇게나 자연스럽게 통한다는 사실이 가끔 의아스럽긴 하다.
하지만 말할 수 없다고 소통조차 못하는 건 아니니까.
무슨 개소리냐고?
그러게 말이다. 하지만 키워보면 알게 된다.
텔레파시인지 뭔지가 너무 강력해서 심지어 뒤에서 쏠 땐 뒤통수가 찌릿해서 돌아보게도 된다.
폭닥한 대걸레 속에 박힌 축축한 코를 들이밀며 킁킁대다 내게 몸을 바짝 붙이고 편안한 자세로 엎드린다.
강아지의 행복은 단순하다. 맛난 거 먹고 산책하고 주인 곁에 눕는 거다.
배우고 싶은 삶의 태도이다. 복잡하게 살지 않는다. 잠시 깃들어 사는 찰나의 삶이라는 걸 아는지 욕심으로 망치지 않는다.
마구 흔들릴 수밖에 없는 삶 속에서 이러한 틀을 지키며 사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 어려운 삶의 태도를 우리 강아지는 보란 듯이 잘도 실천한다.
아~ 열등감 느껴...
누군가 말했다. 친환경은 인간만 사라지면 된다고. 충격적 이게도 공감이 된다. 왠지 스스로 쓸모없는 기분이 들기는 하지만 사실 지구상 대부분 문제는 인간이 자초한 것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인간은 지구상 모든 생물 무생물의 적인지도 모른다.
그중 하나인 나는 우리 집 강아지의 눈을 들여다보며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든다.
혹시 세상만사 모든 이치를 이미 다 알고 있는 건 아닐까. 다 아는데 모르는 척 가장하는 건 아닌지...
이 작은 강아지는 현자에 가깝다. 햇살 비치는 바닥에 엎드려 해바라기를 하다가 그림자를 드리우는 나에게 비키라고 눈치 주는 모습은 알렉산더 대왕을 대하는 디오게네스 그대로다.
소원을 들어주겠다는 왕에게 햇빛을 가리니 헛소리 말고 저리 비키라고 손을 휘휘 저어대던 누추한 철학자 디오게네스.
옛날엔 이렇게 멋진 사람도 살았었다.
이참에 우리 강아지 이름도 바꿔줄까 보다. 디오게네스 할아버지 이름을 따라서 '디오게네스'하고 부르면 역시나 들은 척도 안 하려나.
우리 집엔 현자가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