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될 자신이 없었다.
나처럼 이기적인 유전자가 어떻게 엄마가 될 수 있을지 만일 된다면 그건 비극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이를 갖는 일에 대단히 신중하고 싶었고 멀리 미뤄두고 싶었다. 하지만 아이는 어느 날 내 뜻과 상관없이 내 마음으로 훌쩍 날아왔다.
날아오는 공을 피할 수 없었던 나는 머리를 얻어맞기 전에 가슴을 활짝 벌려 공을 받아낼 수밖에 없었다. 신나게 날아온 아기는 막상 세상에 나오기가 두려웠는지 진공흡입기의 도움을 받아 머리가 찌그러진 상태로 태어났다.
작고 빨간 아기는 다행히 잘 자고 잘 먹으며 하루가 다르게 변해갔다.
어떻게 키워야 할지 암담하고 막막하던 엄마(나)는 서점에 가서 책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지금처럼 다양한 정보가 없던 시절이었기에 대부분은 어른들의 경험과 충고에 기대어 키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어릴 때 해줘야 할 중요한 뭔가가 있을 것 같았고 그런 것들을 전문가의 지식과 지혜를 빌려 꼭 챙기고 싶었다.
그래서 난 그때부터 공부하는 엄마가 되어 내가 줄 수 있는 최선의 것을 주려고 노력해 왔다. 하지만 그 길이 끝이 없는 길인 줄은 미처 몰랐다. 아이가 성인이 된 후에는 엄마를 졸업하는 줄 알았다. 졸업이란 스스로 하는 걸까 아니면 시켜주는 걸까. 시켜주면 졸업이 되기는 하는 걸까.
아이의 행복한 삶을 힘껏 바라며 지혜로운 엄마가 되고 싶었다. 아이의 얼굴에 떠오른 미소가 백열등처럼 내 마음을 환하게 밝혀주던 시간들은 아름다웠지만 항상 지속되는 건 아니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을 왼발 오른발을 이용해 정교한 드리블과 패스로 골대를 향해가는 길은 난해하고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미운 일곱 살을 넘고 무서운 중2병을 견디고 사춘기의 거센 강을 건너도 장애물 경주는 끝이 나지 않았다.
내가 뛰는 건지 애가 뛰는 건지 둘이 같이 뛰는 건지... 숨은 차오르고 나이는 들어가는데 엄마는 언제 졸업할 수 있는 학교일까
때로는 너무 지쳐 널브러진 채 하늘을 보며 생각해 본다.
나는 달리고 있는 걸까 도망가고 있는 걸까.
삶이 살갑지 않았던 엄마가 아이를 낳고 죄책감을 느끼는 건강하지 못한 육아를 해왔던 건 아닌지.
아이의 얼굴을 살피며 아이가 자기의 삶에 의문을 갖지 않기를, 그 삶을 있게 한 엄마를 원망하지 않기를.
지난한 삶의 시간들을 무수한 질문 속에 후회하고 원망하며 살아왔던 걸 아이한테 들키면 어떡하나. 엄마는 삶에 확신도 믿음도 없었던 사람인데 소중한 아기 천사를 여기 이곳으로 불러버렸다.
그래서 처음부터 망설였던 거고 그 후로는 아기 얼굴을 보면 미안했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분명하지 않은 것을 손에 들고 어쩔지 망설이다 작고 여린 손에 쥐여 주었으니까.
무엇을 준 걸까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그저 아이가 나와는 다르게 삶을 선물로 받아들일 수 있기를, 삶 속에 알알이 박혀 있는 석류 같은 기쁨을 반짝이는 눈망울로 발견할 수 있기를 작은 마음으로 조용히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