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사자

일주일의 특별한 여행

by 범고래




멈춰있던 일상의 시계가 째깍째깍 돌아간다. 별 고장 없이 돌던 때는 무한히 반복적이고 지루한 일상이 하찮아 보였고 때로는 증오스럽기까지 했는데...
믿어지지가 않는다.

때로는 감사와 소소한 행복을 덕지덕지 붙여도 길게 늘어져 드러나는 권태와 피로감을 감출 수 없을 때도 있다..

인간의 이중적이고 변덕스러운 모습을 나라고 피할 수 있을까. 노력하고 또 노력하며 자신의 모습이 정갈히 유지되도록 다듬어야 하는 거겠지.

마치 고양이가 그루밍하듯이 끊임없이...

어느 날은 아침부터 속이 메슥거리고 배가 아팠다.
'뭘 잘못 먹은 걸까. 그런데 왜 나만 그러는 거지 아 이제는 으슬으슬 춥기까지 하네.'
아침부터 누워서 끙끙거렸지만 하루가 다 가도록 나아지지 않았다. 참다 참다 뒤늦게 응급실을 찾았고 그냥 주사 좀 맞고 약이나 받아오면 되겠지 하던 예측과 달리 입원을 하란다.

헐~

갑자기 병원에서 자라고?
불면증에 잠자리를 가리는 예민 고슴도치가 어떻게...

그렇게 시작된 입원생활은 내가 전에 경험해 보지 못했던 또 다른 세계를 낱낱이 보여주었다.
수술 후 고열로 그리고 합병증으로 위험한 파고를 넘나들며 보낸 일주일가량의 시간은 나를 더 겸허히 낮아지게 만들었다.

오랫동안 병원에서 머물며 침대를 떠나지 못하는 환자와 보호자들의 눈빛에서는 동물원에 갇힌 동물의 아니 어쩌면 교도소에 갇힌 죄수들의 절망이 어려 있었다.

자신의 자존심을 누르고 수치스러운 부분을 남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언제가 될지 알 수 없는 병의 회복이 모두를 지치게 하고 날카롭게 만들었다.

조용히 눈이 오던 날.
창밖으로 보이던 풍경은 여태 보던 것과는 어쩐지 달라 보였다.

금식 후 유동식으로 이어지는 병원밥에 진저리가 날 무렵 입맛은 며칠 사이에 세속의 때가 쏙 빠지고 원점으로 돌아갔는지 외부에서 들어온 모든 것이 다 맛있었다.

입맛도 겸손해졌나 보다.
훈련소에 입소한 군인들이 왜 주말마다 초코파이 하나에 팔려서 절과 교회를 오가는지 조금은 알 수 있었다.

화장실만 가려해도 복잡하게 얽힌 이런저런 줄을 제거하고 수액이 매달린 폴대를 들들 끌며 오가야 해서 여간 번거롭지 않았다. 특히 새벽에 갈 때는 힘들게 잠든 환자들을 깨울까 봐 도둑처럼 살금살금 다녀와야 해서 어려움이 많았다.

오랜 입원 기간에 지친 환자들 사이에선 종종 작은 일에도 다툼이 일어났고 간병인과도 큰소리가 났다. 간병인들은 대개가 조선족이었고 서로가 친밀했으며 자기가 돌보는 환자보다 훨씬 나이가 많았음에도 건강하고 에너지가 넘쳤다.

'스스로 돌볼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어떡하지?'

잠깐은 가족들이 돌볼 수 있겠지만 길어지면 내가 이런 상황을 견딜 수 있을까. 짐짝같이 귀찮고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는 순간. 돈을 주고 돌봄을 받는다는 게 어떤 건지 알아버린 지금. 난 갑자기 절망감이 들었다.

'아직은 아니야. 미리 당겨 생각할 필요가 뭐 있어. 뭔가 방법이 있겠지. 누구에게도 피해 주지 않고 마음 편할 방법이...'

스스로를 위로해 보아도 주르륵 흘러내리는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쓸모가 없어지면 동물들은 어떻게 하더라? 언젠가 티브이에서 본 늙은 사자가 떠올랐다.

우두머리이던 사자가 어느 날 젊고 힘센 사자에게 밀려 홀로 무리를 떠나던 모습. 그리고 얼마 후 들에서 발견된 그 늙은 사자의 사체.

사람이나 동물이나 다시 돌아가는 길이 쉽지가 않다.

병원 안에서는 의사 선생님이 신처럼 보였다. 수술 후 아침에 회진을 돌며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고 오더를 내리고 잘 보기는 힘들지만 어디선가 나를 신경 써준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에 반해 간호사 선생님들은 내 곁에 머물며 즉시즉시 필요한 처치를 해주고 환자를 살피며 엄마처럼 보살펴 주었다. 밤새 고열로 잠 못 들던 나를 걱정해 주고 돌봐 주었던 간호사 선생님의 천사 같은 손길을 잊지 못할 것 같다.

그동안 밀렸던 집안일을 하고 마당을 둘러보고 새들을 살피는 사소한 일들이 다시 소중해졌고 마음을 환하게 밝혀준다. 기온은 낮지만 화사한 햇살이 마음속 깊이 세포 하나하나에까지 온기를 주며 반짝인다.

일상의 시계가 돌아간다. 멈췄던 기억을 털어버리고 째깍째깍 느리지만 쉬지 않고 돌아간다. 모든 것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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