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 가이드와 운 좋은 여행

by 범고래


내가 살면서 얻은 것들은 죽도록 노력해서야 약간의 부스러기나마 핥아먹을 수 있는 야박한 것들이었고 눈먼 행운 같은 것과는 인연이 없었다고 할 것이다. 그래서 이번 여행은 나에게 갑자기 내밀어진 친절한 손처럼 당황스러웠고 다행스럽기도 했다.

겨울 비수기 튀르키예여행은 사람들의 헐렁한 관심 속을 파고들어 여유롭게 즐길 수 있겠다는 이점을 가지고 시작되었다. 이런저런 변수가 많고 불안한 세상에(특히 코로나 팬데믹의 시간들이 우리에게 깨닫게 해 준 것들) 꼭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얼른 먼저 다녀오자는 충동적인 심리가 나를 움직였다.

연휴를 끼고 여름휴가를 겨울로 끌어당겨 얼기설기 열흘 남짓 시간의 동아줄이 꼬아졌다.

비행기 창밖 몽글몽글한 구름바다와 그 사이로 파란 하늘빛이 너무나 아름다워 날개를 배경으로 찰칵찰칵 사진을 찍었다. 사진은 물론 실제로 보는 만큼 눈부신 장관을 담아내지 못하고 찍는 순간 마른 꽃처럼 생기가 사라져 버렸다.

패키지여행은 쇼핑과 가이드가 패키지로 딸려있어 패키지인가. 어흐...

긴 비행 끝에 이스탄불 공항에 도착한 우리는 잔뜩 구겨지고 지친 감자 포대자루 같은 꼴로 가이드를 만났다.
여행 내내 우리를 안내해 줄 가이드는 17년 경력 중 튀르키예에만 14년을 있었다고 한다.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가이드는 만나자마자 스무 명 남짓의 우리를 나이 불문 유치원생처럼 대했다.

무엇을 하든 자기한테 꼭 물어보고 하라며 목청을 높이고 침을 튀겼다. 종교도 문화도 다른 이국에서 어설픈 행동으로 문제를 일으킬까 봐 사전에 단단히 교육을 시켰다. 조용한 주택에 살며 새소리 바람 소리만 듣던 청정한 내 귀는 버스 안 가이드의 끝없는 잔소리와 쇼핑을 위한 사전 작업 멘트에 경기를 일으키고 문풍지처럼 부르르 떨어댔다.

버스만 타면 이상하게 피곤해지는 바람에 눈을 감고 좀 자려해도 기세가 없다 에너지가 없다 억지로 끌려온 여행이냐며 심술궂은 마누라처럼 바가지를 긁어댔다.


하지만 사람은 적응의 동물 아니던가. 우리는 하루 이틀 지나며 금세 가이드의 성향을 파악하고 약삭빠르게 순한 양이 되었다.

처음엔 너무 드세고 시끄러워 살짝 짜증이 나기도 했는데 가만히 지켜보니 열정적인 사람이었다. 피곤할 법도 한데 개의치 않고 자기 역할을 충실히 잘 해내려는 모습도 엿보였다.

자유여행이라면 스스로 공부하지 않는 한 알기 어려운 여러 가지 역사와 거기에 깃든 이야기들이 귀에 달게 들리기 시작했다.(패키지여행의 장점)

물론 여전히 어려운 점(난이도 최상)도 있었다. 쇼핑센터에서 충분한 결제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얼굴이 굳어지고 잘하던 말도 버벅대며 받은 실망을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냈다. 투명 인간인가. 생각과 감정이 다 읽히는 지경이었다.

해외에 살면 다 애국자가 된다더니 조국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고 이동하는 버스 정면 유리창에는 태극기가 자랑스럽게 붙어 있었다. 가족들이 모두 한국에 있고 튀르키예에는 혼자 거주하며 일을 한다고 한다.

튀르키예에는 한국인 가이드가 대략 300명 정도 있고 날씨나 교통정보 같은 걸 서로 공유하며 미리 대비할 수 있게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다고 한다. 일정이 겹치거나 식당에서 마주치면 그들끼리 농담도 주고받고 하며 친하게 지내는 듯 보였다.

보통 가이드는 여행사와 계약을 맺고 일을 하는데 요새는 나이가 많은 가이드를 여행사 측에서 기피한다고... 힘들고 스트레스가 많은 일이라 젊은 나이에 급사를 하는 경우도 있어 튀르키예에는 한국인 가이드들의 무덤이 있다고도 했다.(너무 슲픈 이야기였다)

가이드 일은 힘들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고 할 일이 있으니 감사하다고 했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 관광업계의 어려움이 사람을 겸손하게 만든 것 같았다.

요란했던 껍데기가 벗겨지고 속살이 드러나니 열심히 정직하게 살려하는 가장의 모습이 보였다. 일 년에 한두 번 보는 가족들. 오랜 세월 객지에서 돈을 벌며 가족을 부양하느라 아이들의 크는 모습을 다 놓치고 이제는 큰애가 군대를 간다고 자랑스러워한다.


가이드로 사는 삶은 어떤 것일까.
한국에서 대기업을 다니다 우연치 않게 가이드의 길로 들어섰다는 그의 표정에는 비밀스러운 삶의 기쁨도 반짝거렸다. 색 바랜 가죽 재킷과 면 목도리를 목에 두른 그는 살짝 지쳐 보였고 조금 뻥을 치자면 그리스인 조르바가 떠올랐다. 정해진 규격을 벗어나 자유로운 삶을 희구하는 유랑자 같은 이미지가 입혀져 있었다.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일들을 겪으며 단단해진 삶의 마디가 느껴졌다.

한 번은 개에 물린 사람이 있어 한밤에 병원을 찾아 광견병주사를 맞히기도 했다. 사람만 보면 순딩순딩 다가와 웃어주는(진짜 웃는 표정) 길거리 개가 많아 역시 관광대국답게 개들도 친절하다고 생각했는데... 하지만 개를 실수로 밟는 바람에 그렇게 됐다고 하니 나라도 밟히면 물겠다는 생각이 들긴 한다.

그렇게 아쉬운 시간들이 지나고 우리는 헤어져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짐을 풀고 여행의 흥분과 여운을 달래고 있을 즈음.

세상에나... 전쟁이 일어났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에 대대적인 공습을 퍼부으며 전쟁을 시작했고 주변 중동 국가들 역시 그 전쟁의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갔다. 예고도 없이 갑작스레 일어난 전쟁으로 발이 묶인 여행객들이 외국공항에서 기약 없는 귀국 비행기를 기다린다고 했다.

얼마 전 여행객들의 설렘으로 부풀어 있던 공항은 미사일이 밤하늘을 가르고 엄청남 굉음과 진동이 견고해 보였던 건물들을 뒤흔들었을 것이다. 일주일 전 아쉬움과 미련 속에 헤어진 공항의 평화로운 모습이 떠올랐다.

모든 것이 일순간에 변해버렸다. 평화롭던 시간과 장소들이 사실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 이미 전쟁의 기운을 품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나 갑자기 전쟁이 일어나고 세상은 불안과 공포로 덮이고...

즐겁고 여유로웠던 모든 걸음걸음들이 지금 생각해 보니 아슬아슬하게 느껴진다. 과거 언젠가 여행 중에도 하루 전날 우리가 지나친 공항 검색대에서 폭탄 테러가 일어났었다. 그때도 우리는 하루 간격으로 테러를 피해 무척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다.

그리스신화 속 헤르메스는 날개 달린 모자와 신발을 신고 다니며 여행자를 보호하고 길을 잃지 않게 도와주는 여행자의 신이라고 한다. 예로부터 여행을 떠나는 모든 이들은 길이나 숲 혹은 바다에서 언제든 위험을 만날 수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험 속으로 뛰어들며 세상을 탐험해 나갔다.

문명이 발달한 현대에도 여행자에게는 여전히 위험이 뒤따르고 우리에게는 헤르메스의 날개가 필요하다. 그 날개가 전쟁의 무자비함까지 막아줄 수 있을까.

평화는 유리그릇만큼이나 깨지기 쉽지만 우리는 늘 그 사실을 잊고 산다. 한번 깨진 평화는 긴 시간 피를 흘릴 것이고 역사의 몸에 깊은 상처로 새겨질 텐데... 피와 딱지로 덕지덕지 덮인 역사의 현장 속을 오늘도 아슬아슬하게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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