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집

by 범고래



버려진 집이 있었다. 그 집은 아직 예전의 훌륭한 외관이 남아 있었지만 이제는 철길로 마을과 분리되어 소외된 듯 처량해 보였다.

대가족을 이루고 살았던 듯 상당히 큰 규모의 2층 저택에는 앞쪽에 정원이 길게 딸려 있었고 뒤쪽으로는 낮은 구릉이 완만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웃자란 무성한 잡초로 뒤덮인 앞마당을 지나고 단단히 잠긴 앞문을 지나 뒤쪽의 부서진 문으로 들어가면 부엌과 거실 서재가 죽 이어져 있었다. 독특한 구조로 지어진 집이었다.

오랫동안 살지 않았던 집인지라 먼지가 쌓이고 거미줄이 촘촘히 레이스처럼 덮여 있었지만 이상하게 살던 모습 그대로 모든 것이 놓여 있었다.

거실 테이블과 소파, 벽난로 위 공간에 놓여 있는 사랑스러운 도자기 인형과 화병, 사진들. 벽에 걸린 다양한 모양의 액자 틀 속에는 사각모를 쓴 졸업사진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의 결혼사진, 강아지와 아이들이 둘러앉은 가족사진, 그리고 어딘가로 여행 갔을 때의 기념사진들이 소중하게 걸려 있었다.

한때 시끌벅적했을 대저택은 그때의 영화롭던 순간들을 사진으로 박재한 후 문신인 양 자신의 몸에 새겨놓고 잠들어 있었다.

그릇장에 가지런히 놓인 접시들과 찻잔 앙증맞은 찻주전자는 방문한 손님들에게나 대접했을 귀한 그릇들이었을 것이다. 뭔가를 만들다가 막 일어난 듯 재봉틀 위에는 작은 천 조각들이 이리저리 흩어져 있었다.

금방이라도 누가 불쑥 방문을 열고 나타나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누군가의 일상과 순간이 어느 순간 거기에 그대로 멈춰 정지해 있었다.

낡은 서랍 속 잡동사니들 사이에서 발견된 앨범에는 저택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들이 일기장처럼 쓰여 있었다.

한 부부가 있었다. 그들은 젊었고 야심 차게 집을 지었고 예쁜 아이들을 낳았다. 아이들과의 행복한 날들이 책 속에서 자라났고 소중하게 담겨 있다가 잘 익어 떨어져 나간 열매처럼 아이들은 각자 결혼을 해서 집을 떠났다.

누군가가 태어나고 성장하고 떠나고 홀로 남고 또 죽은 이야기.

노부인은 반복된 여러 장의 생일 기념사진 속에서 점점 약해져 갔고 마지막에는 휠체어에 앉아 간신히 미소를 짓고 있었다. 시들어가는 노부인을 따라 성대하던 파티도 점점 쪼그라들더니 결국에 사진 속 인물은 한두 명밖에 보이지 않았다.

힘 빠지고 쓸쓸해 보이는 그 사진을 마지막으로 앨범은 끝이 났고 그녀의 삶도 곧 그랬을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살아 숨 쉬는 이 집은 노인의 체취와 생기가 곳곳에 깃들어 있어 마치 정리되지 않은 죽음처럼 느껴졌다.

이곳에는 삶이 있었고 그 삶은 부푼 희망과 기대 행복을 품고 무성한 나무처럼 자라고 반짝였다. 하지만 세상 모든 것이 그러하듯 시간이 지나며 점점 색이 바래고 갈라져 앙상한 나무가 되었고 뚝뚝 부러졌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 모래알처럼 시간은 그 모든 아름다운 것과 빛나던 것들을 데리고 사라졌다. 그리고 노부인 역시 시간 속에서 점점 투명해졌고 이제는 스스로도 잘 보이지 않을 지경이 되었다.

다 떠나버리고 텅 빈집에 껍데기만 남은 삶이 덜렁덜렁 걸려 있다. 탈피해 날아가 버린 곤충의 허물인 것만 같다.

약간의 후회와 자신에 대한 연민이 있고 오래전 먼저 떠난 남편이 그리워진다. 그리고 잠시 후 작은 공기의 흐름에도 힘없이 흔들리던 투명한 몸이 가볍게 불어온 삭풍에 저 멀리로 훌쩍 날아가 버렸다. 아주 순식간의 일이었다.

그것 말고 나머지는 어제와 같았고 시간은 여전히 심심하게 어슬렁거리며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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