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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의 뱀은 억울할까

벗어나기 힘든 편견

by 범고래




난 뱀이 너무 무섭다.

지난번에는 무심히 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가다
데크에서 일광욕을 즐기던 뱀과 눈이 딱 마주쳤다.
혼자 조용히 휴식을 즐기던 뱀은 나를 보자마자 빛의 속도로 숲으로 도망갔다.

얼마나 빠른지...

다리가 없다고 달리기를 못할 거라 오해하면 안 된다.

벌써 몇 번째 인지 모른다.

주차장에서 문을 열고 계단을 올라오다
딱 마주친 뱀.
마당 한편 풀밭에 몸을 숨기고 포복훈련 하던 뱀.
울타리에 대롱대롱 매달려 그네 타던 뱀.

남편은 어릴 적에 동네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뱀사냥을 하고 놀았던 경험이 있어서
뱀만 보면 좋아서 흥분을 한다.

누가 듣고 싶댔나

뱀 목격담을 자세히 공유하려 하고
뱀을 자주 안 봐서 무서운 거라며
오히려 자꾸 보라고 했다.

내가 무서워하니 더 재미있어하는 거 같기도 하고...


정말 그런가 싶어
휴대폰으로 땅꾼(뱀사냥꾼)들의 유튜브를 찾아
조금씩 봤다.

그건... 뭐랄까... 뱀 숙련가의 어깨너머로 숨어서 보는 느낌?
무서움이 조금 가려졌다.

하지만 이런저런 노력에도
이브를 유혹한 뱀이지만 나를 유혹하진 못했고
휴대폰엔 괜한 알고리즘 영향으로
뱀 영상만 엄청나게 쏟아져 들어왔다.

아 정말...

어느 날은 꿈속에도 뱀이 나왔다.
뱀으로 가득 찬 커다란 동굴로

'툭'하고

내가 떨어진 것이다.

아아아 아아앙......

얼마나 생생 하던지

난 왜 이렇게 뱀이 싫을까
뱀이 무섭고 징그럽다는 편견은 어디서 비롯된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출발선이 보이지 않는다.

남편은 뱀이 귀엽다고 한다.

헐~

물론 사람마다 귀여움의 포인트가 다를 수는 있다.
이상하게도 난
장미꽃에 붙어있는 털이 슝슝 나있는 송충이 같은 애벌레는 안 무섭고 귀엽다.

남편이 질색하는 송충이를 난 귀여워 한참 쳐다보기도 하고 작은 나뭇가지로 살살 건들며 놀리기도 한다.

나에게 귀여운 건 대체로

길이가 너무 길지 않고

털이 많이 나 있고 통통하고

행동이 바보처럼 느린 경우가 많다.

아니면 머리와 손발이 몸보다 상대적으로 커서 가분수 같은 형태다.

보통 새끼들이 그렇다.
아기들은 아장아장 걷다가도 머리가 무거워 잘 넘어지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난 까르르 웃음이 터질 정도로 귀엽다.

그러니 손도 발도 털도 없는
끝도 없이 긴 뱀은 나의 귀여움의 단추를 절대 누르지 못한다.

길고 털 없는 것들이 주는
혐오감이 인종차별이나 다름없는

잘못된 편견일 텐데

난 여전히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예외가 있다

갈치다

갈치는 징그럽지 않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을 본 적도 없다

털이 없어도 번쩍번쩍한 은빛 갑옷을 두르고 있어서
멋지다

뱀이 금칠이나 은칠을 하면 어떨까
그렇게 상상을 하자마자 간사하게도 혐오감이 스르르 사라진다.

그럼 그건 용인가

마당에 용이 나타나면...
기분이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금빛 여의주라도 물고 오면 대환영일 것 같다.

아 정말이지 곤란한 편견 때문에 괴롭다.
뱀 탓은 아니다.

뱀은 자유로운 영혼이고
자유롭게 살 권리가 있다.

그래도
내 눈에 띄지 않으면 안 될까 ㅠㅠ 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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