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구에 사는 인간 동물이다. 내가 아는 모든 인간, 그리고 다른 모든 생명체도 지구에 살고 있다. 하지만 지구라는 공간에 살고 있다고 느끼는 날이 살면서 며칠이나 있을까. 비행기에 올라 하늘에서 지구를 내려다볼 때? 아니면 그랜드 캐니언 같은 광활한 대지에 감탄할 때? 내가 지구에 살고 있다고 인지하는 날이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럼에도 우리는 모두 지구에 있다. 참 마음에 안 들고, 서로를 괴롭히는 여러 인간이 지구라는 한 공간에 갇혀있다. 우리끼리도 복닥거리며 살기가 참 괴롭고, 요즘은 인간의 존재마저 자연에 참 해롭다고 느껴진다. 조금이라도 덜 해롭고 싶어서 비건을 하고 되도록이면 쓰레기를 만들지 않으려고 하는데, 식재료를 사며 딸려온 비닐이 아까워 모은 것이 부엌 서랍에 이미 한가득이다.
어떻게 하면 자연과 나의 연결감을 키울 수 있을까? 코로나 같은 전염병이 지구의 모든 곳을 휩쓸어도, 어디 도망갈 곳도 없으면서 서로를 비난하고 혐오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위생과 편의를 명목으로 수많은 플라스틱 쓰레기를 계속해서 생산하고 배출하는데 말이다.
코로나 시기에 나는 참 많이 울었다. 갑작스럽게 뇌출혈로 쓰러지신 할아버지는 뇌수술을 받았지만, 코로나로 인해 가족 누구도 할아버지를 만날 수 없었다. 의식이 없는 할아버지는 응급실과 수술실 그리고 일반병동과 요양병원으로 옮겨지셨다. 할아버지가 서서히 죽어가고 있을 때, 나는 살면서 계속 죽음을 느꼈다.
일상을 보내며 아무것도 아닌 일에 자꾸만 눈물이 나왔고, 아픔을 느낄 때 나는 어느 때보다 연결감을 느꼈다. 어느 날은 내가 몸이 좀 아파서 더 아팠을 다른 몸이 생각나 울게 되었고, 어느 날은 너무 편안하고 따듯했지만 동시에 그러지 못한 다른 몸이 생각나서 또 눈물이 나왔다. 나는 할아버지가 사라지고 나서야 다른 존재들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
지금은 조금씩 옅어졌지만 나는 여전히 죽음을 느낀다. 너무도 쉽게 보이는 동물들의 살점에서도 같은 죽음을 느낀다. 할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하고 분명히 존재하던 생명이, 아프고 고통스럽게 사라지는 게 마음이 쓰리다. 누구나 이유를 모르고 태어나지만, 어떤 몸은 죽음을 목적으로 생겨나고 고통을 겪다 죽임 당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힘들다.
자연과의 연결감은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생각한다. 사랑하는 존재가 아프면 나도 아프게 되고, 내가 다른 존재와 연결되면 그 연결이 이어져 사랑의 영역은 확대된다. 울타리를 치지 않고 사랑하는 마음이 계속 확대되기를 나와 다른 이들에게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