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by Iasqua

집 떠나면 고생이다.


첫 여행이 어땠더라 하고 생각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기억이 첫 여행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강렬하게 남아있는게 있다. 영화 인사이드아웃에 나온 코어메모리처럼 뇌리에 박혀있는 장면인데 초등학교 시절 수련회 갔다가 너무 지쳐서 터덜터덜 걸어오며 바라보던 아파트단지 입구이다. 그때 엄마가 아 드디어 집에 왔다고 기뻐하는 날 맞이해주면서 했던 말이 “그거봐 집이 최고지? 집 떠나면 고생인거야“ 였다.


그리고 나서 꽤 오랫동안 나는 여행이 부담스러웠다. 여행가기 전에는 여행을 준비하고 계획하는 과정이 설레기도 했지만 사실 완벽하게 해내야 된다는 부담감이 있었고 과정 중에는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속에서 일정 도장깨기 하느라 여행을 온전히 즐기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계속 꾸준히 여행을 다녔던 걸까.


이유는 너무 심플하다. 남들 다 가니까. 자꾸 여행에서 의미를 찾아온다고 하니까. 나도 그 놈의 의미 한번 찾아보자 하는 단순한 이유였다. 그래서 그랬을까. 여행을 가면 하나라도 더 보고 경험해보겠다고 애를 써댔다. 그래서 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여행의 참된 의미는 사실 집이 최고라는게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던 적도 있다.


그러다 차츰 여행의 의미같은거 찾을 생각도 내려놓게 되면서 동행자의 여행 성향에 맞춰 계획을 세우고 여행 중에 동행자의 상황에 따라 계획을 수정하기도 했다. 완전히 마음을 비우고 마치 동행자의 행복을 위한 여행 미션 클리어 하듯 여행 ‘수행’을 했던 거다.


그러던 어느날 엄마와 유럽 여행 중에 이태리를 갔던 때였다. 유럽 여행도 엄마를 위한 여행 계획을 세우고 하나 하나 일정을 수행해 나가듯이 다니고 있었는데 그 과정 속에서 사실, 첫날부터 이상했다. 로마부터 갔었는데 책에서, 영상에서 많이 보았던 유적지를 관광할 계획을 세울땐 역사 덕후임에도 불구하고 사실 별로 감흥이 없었다. 그런데 포로 로마노, 콜로세움 등등 수많은 유적지들을 보자마자 압도 당했고 나의 계획에 나 스스로가 매우 신나서 행복하다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여행지에서 이렇게까지 신이나고 행복할 수 있다니 낯설었다.


정점은 피렌체에서였다.

로마의 일정을 마치고나서 피렌체로 이동했던지라 꽤 지쳐있었고 엄마도 굉장히 지쳐서 계속 불만을 토로하고 있었다. 그런 상태로 피렌체의 심볼인 두오모 성당을 안볼 수 없으니 가야지 가야지 하며 무거운 발걸음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두오모 성당까지 가는 길은 매우 좁은 골목길을 도보로 걸어가야 했다. 걸으면서도 이상했다. 이렇게 좁은 오래된 건물들 사잇길을 걸어가면 두오모가 나온다고? 그럴리가 있나? 반신반의하며 걸어가는데 점점 많은 관광객들이 함께 한 곳을 향해 걷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좁은 틈 사이로 점점 두오모가 보이기 시작했다. 지쳤던 발걸음이 점점 빨라지는데 인파에 막혀 속도를 낼 수 없고 심장은 두오모가 보이면 보일 수록 빨리 뛰기 시작해서 애가 탔다.


그러다 그 모든 길이 끝났을때 광장이 펼쳐지고 두오모대성당이 영화 속 주인공처럼 등장했다. 저절로 탄성이 내질러졌고 그 장소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다 같은 마음일거라고 확신했다. 꽤 컸던 내 탄성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였으니까.

두오모의 등장만으로 나는 아주 매우 감동받았다. 그때의 그 감동과 여운만 생각하면 지금도 행복해질 정도로.

그리고 꼭 다시 와야겠다 반드시 다시 와야겠다 이 생각만 머릿 속에 되내었다. 여행을 다 마치고 나서부터는 ‘죽지 말고 열심히 살아서 다시 보러가야지. 두오모를 보고 행복했던 기억으로 그때까지 열심히 살아봐야지‘ 하는 생각 뿐이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알았다. 여행 속에서 찾아낼 수 있는 의미같은건 없다는 것을. 그냥 여행을 최선을 다해 즐기며 행복해 하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여행은 삶의 원동력을 만들어 주는 수단일 뿐이니까. 수단이라는 표현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삶을 살아가는데 지치지 않고 꾸준한 힘을 내게하는 계기가 될 정도의 원동력이라면 매우 소중한 수단이지 않는가.

나는 그런 원동력 덕택에 삶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지게 되었다. 지치고 지루하고 끝이 안보이는 마라톤 속에서도 아름답고 계속 새로운 풍경들이 있다. 그래서 기어코 지치지 않고 때론 행복하고 기쁜 마음으로 끝마칠 수 있다.


엄마가 유럽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나에게 약속했다. 적어도 1년에 한번 큰 여행을 다녀오자고. 그리고 그때까지 우리 1년 열심히 살아보자고.

엄마도 나와 같은 것을 느꼈음을 알았고 덕분에 여행 마지막까지 행복했다.

다음을 위해 ‘함께’ 열심히 살아갈 힘을 얻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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