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조각들

모든 조각을 가진 것은 너, 유일한 너뿐

by Bella


지금은 허물어졌지만 예전 캠퍼스 건물 3층에는 과자료실이 있었다. 오래된 컴퓨터 몇 대, 교수님이 기증하신 옛날 책, 80년대 논문 같은 것이 가득 쌓인 곳이었다. 복학생 선배들은 탕수육에 같이 시킬 콜라값을 누가 낼지 스타크래프트 내기를 했다. 옆에는 나란히 여자 독서실, 남자 독서실이 붙어있었다. 12시가 되면 제 1 학식에서 1500원짜리 점심을 먹고, 언덕 아래 학교 카페에서 시럽을 다섯 번 넣은 천 원 짜리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 온다. 그걸 마시며 오후 내내 과자료실에서 수다 떠는 것이 내 하루 일과였다.


그 곳에는 늘 과자료실 도우미가 있었다. 보통은 제대 후 갓 복학한 남자 후배들이었다. 한달에 2만원 정도 받고 공강 시간마다 과자료실에 상주하며 바닥 청소도 하고, 컴퓨터 관리도 하는 근로 장학생 비슷한 것이었다. 임용고시를 재수할 무렵 과자료실 도우미는 복학한 지 얼마 안된, 키가 크고 몹시 마른 한 학번 아래 후배였다. 더벅머리에 갈색 뿔테 안경을 쓰고, 주로 체크 셔츠에 청바지를 입었다. 후배나 동기보다는 선배들과 더 자주 어울렸다. 예의가 바르고 갓 제대한 복학생 또래 특유의 허세가 없어 참 좋은 아이라고 생각했다. 과자료실에 가면 거의 그 아이가 있었다. 형들에게 깍듯이 존댓말을 쓰고 장난의 선을 넘지 않으면서도 나누는 대화마다 재치가 있었다. 무료했던 고시생 시절의 한때, 나는 그 후배와 대화하는 것을 꽤 즐거워했다. 단둘이 밥 한번 먹은 적 없으면서 다른 선배들보다는 가까운 사이, 보통보다는 더 친한 사이라고 혼자 착각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 날도 탕수육 대짜를 시켜서 나눠먹고 예비역 선배들의 스타크래프트 내기를 구경하고 있었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 어떤 주제의 대화가 굉장히 즐거웠다. J가 한 말이 너무 재미있어서 깔깔 웃었다. 그때의 나는 한 번의 연애를 거치긴 했으나 아직 사람 사이의 감정을 읽는 데 몹시 서툴었으며 누가 내 말을 잘 받아주면 그것이 이성 간의 호감일지도 모른다는 착각을 가지고 있었던, 간단히 말하면 (이성교제에 관해서는) 조금 무지한 상태였다.


"J야, 너 서른까지 결혼 안하면 누나랑 결혼할래?"


잠깐의 짧은 정적이 흘렀고, 그 아이는 예의 바르게 "아 누나, ㅎㅎ" 하고 웃었고, 그 다음날 우리는 조금 어색해졌고, J는 정중하게 거리를 두었다. 나는 그와 서서히 멀어졌다. 그게 어찌나 서운했던지 일기에도 적었다. 다음 해 나는 과독서실을 나와 집 근처의 개인 독서실로 들어갔다. 몇 년에 한 번쯤, 그가 생각났다.


5년이 지났다. 번화가 이자카야에서 테이블 가장자리마다 맥주병을 줄세워놓으며 소맥을 말아 마시던 밤이었다. 옆자리 테이블의 남자 두 명 중 한 명의 얼굴이 눈에 익었다. J는 어엿한 직장인이 되었다고 했다. 근무지도 내 학교와 멀지 않았다. 몹시 반가웠고, 시간이 지나 사회인이 되어 만난 그 아이의 제법 날카로워진 얼굴선이나 생김새가 꽤 멋있다고 생각했다. 예전엔 동생 같았는데, 그 날은 남자 같았다. 술기운으로 달아오른 뺨을 식히러 나간 문 밖에서 마주친 J에게 슬쩍 밥 한번 먹자, 자연스럽게 전화번호를 물어 봤지만 그 밤 이자카야 문 앞에서 J는 한번 더 공손하게 선을 그었다. 원래 그런 아이인 건 알고 있었다. 시간이 오래 지났어도 넌 변하지 않는구나, 싶었다. 그런 모습조차 J다웠다.


3년이 흘렀다. 오래 친하게 지내던 선배와 약속을 했다. 그 쪽이나 나나 삶이 바빠 차일피일 만남은 미뤄졌다. "너 J 알지? 내가 둘 다 밥 사주기는 도저히 시간이 안나는데 밥 같이 먹을래?" "J 요? 그러세요." 그 날은 11월 11일, 빼빼로 데이였다. 그때 그 이자카야 옆 골목 레스토랑에서 셋이 만났다. J는 와인을 들고 왔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사장님이 주신 빼빼로를 나눠 먹었다. 만남은 재미있었다. 예전처럼 즐거운 대화였다. 그 날 일기에 내 삶이 꽤 풍요롭고 멋있게 느껴진다고 적었던 기억이 난다. 그 날은 연락처를 받았다.


그리고 일주일인가, 이주일 뒤 우리는 지인들과 함께 그가 데킬라를 맡겨 놓았다는 바에 가서 칵테일을 마셨고, 해장국집을 들렀다 새벽 세시에 헤어졌다. 다음날 안부를 물으며 주고 받은 문자 끝에 J는 해물탕이 맛있는 집 주소를 알려줬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우리는 조개가 가득 든 해물탕을 먹고, 산 아래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다. 음식을 잘 못 먹던 때였다. 뭘 먹어도 구역질이 나서 끝까지 목넘김을 못했다. 내 속에 자리잡은 불안함으로 배가 불렀다. 늦가을 내내 타인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슬픔과 괴로움 속에 살았다. 매 순간 두렵고 불안했다. 영영 혼자 살 것만 같았다. 살이 무척 빠졌고, 정신상태가 별로 좋지 않았다.


그날 그 커피숍에서 J는 홀로 여행 중에 경주에서 사 왔다는 엽서를 선물로 줬고, 몇달 새 해쓱해진 내 두 눈을 바라보며 사람은 누구나 자기를 알아주고 소중히 여기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고 말했다. 그건 내가 타인에게 무척 듣고 싶었던, 그러나 아무도 말해주지 않던 종류의 말이었다. 가슴에서 시작한 떨림으로 손끝까지 저릿했다. 갑작스럽게 핸들을 꺾어 들어간 골목에서 맞닥뜨린 덤프트럭으로 심장을 들이받힌 기분이었다. 그 날 커피숍에서 나는 와플 접시를 깨끗하게 비웠다.


J와 나는 겨울과 봄 사이 벚꽃을 보고, 고궁을 걷고, 미술관 앞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다. 반 년이 지난 다음 해 5월, 우리는 윤동주 문학관에 갔다. 봄감기에 걸려 기침이 심했다. 밀폐된 전시실의 먼지 가득한 공기를 견디지 못하고 뛰쳐나와 길거리에서 기침하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J가 내게 "좋아해, 누나." 라고 말했다. 그건 내가 태어나 인생에서 처음으로 받은 고백이었다. 숨이 멎을 것 같던 기침이 좀 잦아든 다음 우리는 손을 잡고 문학관 건너편의 돌로 된 산을 오래 바라봤다. 하늘이 무척 맑고 푸르렀다. 맞은 편 돌산이 스페인에서 본 몬세라토의 풍경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몬세라토는 일주일의 스페인 여행 중 내가 가장 좋아했던 여행지였다.


J는 내가 결혼하자고 했던 농담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한다. 한번도 나랑 친하다고 생각한 적 없어 그 농담을 들었다면 '저 누나 왜 저래'라고 생각해서 거리를 두었을 거라고 했다. 같이 밥 한끼 먹은 적 없으면서 도대체 밑도끝도 없이 결혼하자는 얘기는 왜 했느냐고, 아마 그래서 '이상한 선배구나' 라고 생각했을 거라고 웃으며 말했다.


그의 주변 사람들을 더러 만났다. J의 고등학교 친구, 내겐 데면데면하지만 그는 친한 같은 과 후배, 자주 가는 칵테일 바 사장님, 직장 동료들. 그들은 모두 J의 어떤 면을 조금씩 나눠 갖고 있었다. 음악을 좋아하거나, 술을 깊이 있게 알고 있거나, 말을 함부로 하지 않거나, 화분을 키우거나, 동물이 나오는 유튜브 채널을 봤다. 모두 내가 좋아하는 J의 부분이었다. 그들의 일부분을 합치면 J가 된다. 그 모든 조각을 갖고 있는 사람은 세상에 단 한 사람밖에 없다.


우리는 올해 5월에 결혼했다. 나는 결혼할 인연은 따로 있다는 말을 믿는다. 가끔 깊은 밤 과자료실에서 내가 했던 말을 떠올린다. 키 크고 마른, 예의 바른 후배였던 그의 스물 두엇 무렵의 얼굴을 생각한다. 그리고 침대로 가서 규칙적인 숨소리를 내며 잠들어 있는 J의 얼굴을 바라본다. 이제는 서른 중반이 된 남자, 내가 평생을 사랑하기로 다짐한 남자의 얼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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