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기 위해 나를 지워온 시간들
ʻ왜 나의 관계는 늘 한쪽만 더 노력하는 걸까?’ 나는 이 질문을 던지며 자주 밤잠을 설치곤 했다. 가족, 친구, 연인 등 누구를 만나든 나는 늘 더 많이 애쓰고 참으며 상대의 눈치를 살피는 쪽이었다. 누군가와 사이가 멀어져 불편한 기분이 들 때면, 상황을 해결하려고 먼저 다가가는 사람도 언제나 나였다. 상대의 기분을 살피느라 먼저 사과하고, 어색한 침묵이 무서워 억지로 말을 꺼내며 상처를 입으면서도 관계를 놓지 못해 혼자 버텼다. 처음에는 그것이 넓은 마음이라 믿었고, 나중에는 착한 성격이라 생각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는 그것을 피할 수 없는 운명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누군가와 약속이 있으면 나는 습관적으로 10분, 20분 먼저 도착한다. 상대가 나를 기다리며 조금이라도 불편해할까 봐 걱정되기 때문이다. 메뉴를 고르거나 장소를 정할 때도 내 취향은 늘 말하지 못했다. 상대의 표정을 살피며 그가 좋아할 만한 것을 먼저 선택하는 일은 습관이 되었다. 나는 이것을 배려라고 생각했지만, 실상 내 마음은 단 한 순간도 편히 쉬지 못했다. 나는 늘 긴장하며 다른 사람의 기분을 맞추는 데에만 온 신경을 쓰고 있었다. 내 감정은 숨긴 채 상대가 원하는 대로만 행동하며 나는 힘겨운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관계가 깊어질수록 무거운 책임감이 내 어깨를 짓누른다. 상대의 안색이 조금만 어둡거나 말투가 평소와 달라도, 답장이 몇 분만 늦어져도 나는 ʻ내가 무엇을 잘못했을까’라며 스스로를 끝없이 되돌아본다. 조금만 더 잘하고 참으면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나는 늘 제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그 대가로 나는 언제나 내 행복을 뒤로 미룬 채 상대의 기분과 만족을 먼저 챙겨야 했다. 상대를 위한다는 이유로, 정작 나 자신은 늘 뒷전으로 밀려나 있었다.
상대와 멀어진 기분이 들 때면,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른 채 혼자 남겨진 것 같아 괴로웠다. 다툼 뒤의 어색함이나 오해로 사이가 멀어지면, 나는 상대를 이해하기 위해 애써 이유를 만들었다. ʻ피곤해서 그럴 거야’, ʻ표현이 서툰 사람이니 내가 이해해야지’. 그렇게 타인을 너그럽게 이해해 주려 노력하는 동안 정작 내 마음은 큰 상처를 입었다. 서운함과 짓밟힌 자존감을 마음 깊은 곳에 숨기며, 나는 나를 힘들게 하면서까지 상대를 사랑하려 애쓰는 괴로운 시간을 견뎌왔다. 상대를 지키기 위해 나를 먼저 포기하는 것이 그때의 내게는 유일한 관계의 방식이었다.
어느 순간, 가슴이 답답해지며 이 모든 노력이 늘 비슷하게 끝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잘해보고 싶은 마음에 정성을 다하지만, 곧 상대의 반응에 불안해졌고 끝내 허전한 마음만 남았다. 이런 과정이 나에게는 너무나 익숙했다. 이제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도 결말을 뻔히 아는 슬픈 영화를 다시 보는 것처럼 마음이 아팠다. 애쓰면 애쓸수록 관계는 더 불안해졌고, 내가 아무리 애를 써도 결국 상처받는 상황이 반복될 것만 같아 두려웠다.
언젠가 상담실 의자에 앉아 있던 그날을 잊지 못한다. “내가 너무 예민해서 문제인 걸까요?”라고 묻는 내게, 상담사는 성급한 위로 대신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그렇게까지 애쓰지 않으면, 당신에게 어떤 끔찍한 일이 생길 것 같나요?” 순간 나는 숨을 쉬기가 힘들 정도로 당황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머릿속이 텅 비는 기분이었다. 한 번도 스스로에게 물어보지 못했지만, 사실 내 삶 전체를 흔들어 놓았던 질문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질문을 수개월 동안 고민한 끝에 마침내 대답을 찾아냈다. 애쓰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버려질 것 같았다. 누구에게도 필요 없는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 영영 혼자 남겨질 것만 같았다. 내가 먼저 손을 내밀고 양보하지 않으면, 모든 관계가 한순간에 끝날 것 같다는 두려움이 내 마음을 채우고 있었다. 그 불안감은 아주 오래전부터 내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내가 그토록 애써 노력했던 이유는 상대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혼자 남겨지는 것이 너무나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오래전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어두운 거실 구석에서 숨죽여 우는 아이와 바쁘게 움직이는 어른들의 모습이 보인다. “바쁘니까 저리 가 있어”, “제발 조용히 좀 해”, “조금만 참으렴, 착하지?” 냉담한 말들 속에서 아이는 혼자 살아남는 법을 배웠다. 울어도 달래줄 사람이 없으며, 내 마음을 알아줄 여유가 그들에게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아이는 살기 위해 아픈 선택을 했다. 울음을 그치는 대신 상대가 좋아하는 ʻ완벽하게 착한 아이’가 되기로 한 것이다. 다른 사람이 원하는 것을 빠르게 알아차려야만 사랑받을 자리가 생긴다는 것을 아이는 너무 빨리 알아버리고 말았다.
관계에서 내가 더 노력했던 이유는 사랑받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것은 버림받지 않기 위해 혼자서 외롭게 애써 온 과정이었다. 혼자가 되는 것이 너무나 무서웠기에 나는 늘 상대보다 먼저 움직여 그들의 마음을 사야만 했다. 내 솔직한 마음을 말하는 순간 상대가 떠나갈까 봐, 나는 내 생각을 숨기고 상대가 원하는 모습으로만 살았다. 그래야만 내가 다른 사람 곁에 머물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나는 사랑을 받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내가 있을 자리를 잃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해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약해서 생긴 결과가 아니라, 가장 아팠던 시절 내가 선택할 수 있었던 유일하고 간절한 생존 전략이었음을 이제는 안다. 관계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해야 했던 그 작은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그 슬픈 습관을 버리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었다. 그것은 내 성격의 결함이 아니라, 한때 나를 살게 했던 노력의 흔적이었다. 나는 더 이상 과거의 나를 부끄러워하거나 탓하지 않기로 했다. 그 아이는 그저 누구보다 치열하게, 끝까지 살아남고 싶었을 뿐이다.
나는 이제 조금씩 ʻ애쓰지 않는 연습’을 시작했다. 답장이 없어도 먼저 메시지를 보내지 않고, 대화 중 어색한 침묵을 억지로 메우지 않으며, 불편한 감정이 생길 때 서둘러 사과하지 않고 가만히 견뎌보는 연습이다. 처음에는 너무 불안해서 세상에 나 혼자 남겨질 것만 같은 두려움이 밀려왔다. 하지만 나는 이 떨림이 다른 사람의 눈치만 살피던 ʻ착한 아이’라는 습관이 사라지면서 겪는 당연한 과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 불안을 더 이상 ʻ이상한 것’이라 부르지 않기로 했다. 그것은 익숙하지 않은 일을 시작할 때 느끼는 당연한 두려움일 뿐이다. 노력하지 않아도 관계가 이어질 수 있는지, 나를 지키면서도 다른 사람과 잘 지낼 수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조심스러운 마음이다. 나는 이제 이 불안을 다독이며 천천히 나아가려 한다. 나를 숨기며 얻은 편안함보다, 조금은 불안하더라도 나 자신의 모습으로 있는 이 시간이 훨씬 더 소중하기 때문이다.
언젠가 한 번은 큰 용기를 내어 말했다. “미안해, 지금은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나중에 다시 이야기할 수 있을까?” 고작 한 문장이었지만 내 손바닥은 땀으로 젖어 있었다. 하지만 내가 걱정했던 큰 싸움이나 이별은 일어나지 않았다. 상대는 내 상황을 존중하며 묵묵히 기다려주었다. 그 짧은 경험은 나의 좁았던 생각을 분명하게 넓혀주었다. 내가 나로 있어도 세상은 무너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내 마음을 솔직하게 드러내도 다른 사람과 잘 지낼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된 순간이었다.
관계를 나 혼자 힘겹게 이끌어갈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내가 억지로 붙잡지 않아도 곁에 머물 사람은 분명 존재하며, 나를 편하게 만드는 것은 오히려 애쓰지 않아도 마음이 놓이는 자연스러운 관계들이었다. 이제 내게 관계의 평가 기준은 ʻ내가 얼마나 노력했는가’가 아니라, ʻ그 사람 곁에서 내가 얼마나 꾸밈없이 나 자신으로 편안하게 있을 수 있는가’로 바뀌고 있다. 나는 이제 나를 잃지 않는 관계 속에서 살아가려 한다.
물론 나는 여전히 가끔 예전 습관으로 돌아가고 싶어진다. 나를 지워가며 애쓰는 것이 훨씬 익숙하고, 당장의 불안을 잠재우기엔 그편이 마음 편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왜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려 하는지 그 이유를 정확히 안다. 그 이유를 아는 것만으로도 나는 멈출 수 있다. ʻ아, 내가 또 버림받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있구나’라고 스스로를 알아차리는 순간만으로도 내 안에는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길이 열리기 때문이다.
왜 늘 내가 더 애써야만 했을까? 그 질문의 끝에서 나는 더 이상 나를 탓하거나 한심하게 여기지 않는다. 대신 지쳐 있던 내 안의 작은 아이를 이제야 이제야 따뜻하게 안아주기로 한 것이다. 그 간절한 노력은 어린 시절의 나를 지켜온 최선의 방법이었음을 이제 알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아도 괜찮다는 사실을 기쁘게 받아들인다. 나는 이제 나를 숨기며 유지하는 관계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으로 편하게 숨 쉴 수 있는 길을 향해 한 걸음씩 내딛고 있는 것이다.
나를 이해한다고 해서 삶이 단번에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해는 내가 나아갈 방향을 조금씩, 그러나 분명하게 바꿔놓는다. 그동안 나는 나를 ʻ고쳐야 할 사람’으로만 생각해 왔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나를 고치기 위해 과거를 들춰내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안아주기 위해 그 원인을 차근차근 살펴보는 일이 먼저라는 사실을 말이다. 나를 모른 척하지 않고 곁을 지켜주는 것, 그것이 지금 내가 나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이라고 나는 믿는다.
관계에서 늘 마음을 졸이며 노력해 온 당신에게, 그리고 거울 속의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당신의 그 간절했던 노력은 결코 나약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이 힘든 세상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홀로 애써온, 아주 열심히 살아온 기록이었다. 이제는 그 무거운 마음의 짐을 잠시 내려놓아도 괜찮다. 당신 곁을 지켜줄 진정한 관계를 선택할 자격은 이미 충분하니까 말이다. 그 작은 휴식이 당신의 삶에 새로운 평온을 선물할 것이다. 더 이상 애쓰지 않아도 당신은 존재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