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잃어버린 것들을 애도하는 법

상실이라는 파도를 타고 건너기

by 그대로 박희룡

나는 상실을 마주할 때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큰 슬픔을 느낀다. 상실은 단순히 누군가의 죽음처럼 거창한 이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제는 어색해진 관계의 단절, 간절히 바랐으나 놓쳐버린 기회, 그리고 열정적이었던 과거의 나를 잃어버린 마음은 내 삶 곳곳에 남아 있다. 낡은 사진첩을 보다 멈춘 시선이나 물건을 정리하다 맡게 된 익숙한 향기, 누군가의 빈자리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느낌이 그렇다. 이런 순간을 마주할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지고 숨이 가빠온다. 이처럼 상실의 흔적들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서 불 쑥 나타나 나를 힘들게 한다.


상실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어느 평범한 아침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나는 갑자기 눈앞이 흐려졌다. 창밖 풍경을 보다가 문득 잊고 지냈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제는 내 곁에 없다는 것, 다시는 그 온기를 느낄 수 없다는 사실이 심장을 찌르듯 아프게 다가왔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입술을 깨물었다. 사람들로 가득한 이곳에서 울음이 터져 나올까 봐 무서웠다. 마음속으로는 “괜찮아, 다 지난 일이야”라고 수 없이 되뇌며 두려움을 떨치려 했지만, 이미 내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오랫동안 나는 상실을 외면하며 모른 척 버텨왔다. “시간이 해결해 줄 거야”, “남들도 다 겪는 일이야”라는 말로 나를 속이며 슬픔을 내버려 두었다. 하지만 마음은 결코 속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억누를수록 슬픔과 공허함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 깊게 뿌리를 내렸다. 감정을 밀어낼수록 몸은 천근만근 무거워졌고, 풀리지 않은 긴장은 이유 없는 통증과 불면으로 이어졌다. 내가 상실을 감추려 애쓰는 동안에도, 그 감정은 조용하지만 격렬하게 나를 흔들고 있었다. 피하려고 할수록 고통은 더 끈질기게 나를 따라다녔다.


상실을 제대로 마주하기 위해 나는 나에게 묻기 시작했다. “지금 내 마음이 느끼는 이 기분은 진짜 무엇일까?” 처음에는 안개처럼 뿌연 감정들이 복잡하게 섞여 있어 구별하기조차 어려웠다. 슬픔인지, 분노인지, 아니면 미안함인지 몰라 한참을 혼란스러워했다.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막연한 감정들에 이름을 붙여주었다. ʻ시린 그리움’, ʻ날카로운 고통’, ʻ마음이 빈 것 같은 허전함’, ʻ전하지 못한 후회’라고 하나씩 불러주었다. 이름을 붙이는 순간, 나를 힘들게 하던 모호한 감정들이 비로소 정리되며 어떤 상태인지 분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상실을 애도하는 것이 그저 주저앉아 눈물만 흘리는 일은 아니라는 사실을 이제야 알 것 같다. 그것은 떠나간 존재가 내 삶에 남긴 의미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과정이다. 나는 그와 나누었던 사소한 대화와 함께 웃고 울었던 기억들을 하나씩 꺼내어 찬찬히 돌아본다. 그때 전하지 못했던 고마움과 미안함, 그리고 뒤늦게 찾아온 감정들을 피하지 않고 솔직하게 마주했다. 힘든 감정들이 휘몰아쳐도 그 시간을 충분히 견뎌낼 때 비로소 회복이라는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슬픔을 충분히 겪어내는 것만이 그 슬픔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임을 나는 알게 된 것이다.


상실은 나 자신과의 관계를 가장 솔직하게 돌아보게 만든다. 내가 무엇을 놓치며 살았는지, 무엇을 간절히 지키려 했는지, 나의 선택들이 나를 어디로 이끌었는지 되짚어 보게 한다. 상실의 고통은 쓰라리지만, 동시에 삶의 영원하지 않다는 것과 소중한 가치를 알려주는 기회가 된다. 힘든 시간을 지날 때마다 나는 나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내가 이토록 아파한다는 것은, 내가 그만큼 진심으로 누군가를 사랑하고 무언가를 소중히 여겼다는 분명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나는 일상의 작은 상실을 받아들이는 연습을 한다. 반려동물이 떠난 뒤의 빈자리, 오랜 우정이 끝난 순간, 공들였던 기회를 놓친 일, 그리고 거울 속에서 발견하는 내 모습의 변화까지 모두 포함된다. 처음에는 모든 상실이 나를 힘들게 하는 큰 충격이었지만,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느껴주자 변화가 생겼다. 스스로 내 마음을 다독이는 순간, 날카롭던 슬픔은 조금씩 무뎌진다. 상실은 여전히 내 삶의 일부로 남아 있지만, 더 이상 나를 무너뜨리거나 멈춰 서게 하지 못한다. 나는 이제 슬픔 속에서도 나를 아끼며 상실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운다.


상실 앞에서 흘리는 눈물은 나약함의 증거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감정을 솔직하게 마주할 줄 아는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용기 있는 행동이다. 눈물을 흘리는 동 안 나는 내 마음의 상태를 확인한다. 고통을 정직하게 인정하고, 삶에서 피할 수 없는 상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상실은 더 이상 나를 힘들게 하는 무거운 짐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슬픔은 나를 다른 사람의 아픔에도 깊이 공감할 수 있는 따뜻한 사람으로 만들어주고, 그리움 또한 내 마음속에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나를 살아가게 한다.


나는 상실을 겪으며 관계의 의미를 다시 생각한다. 내게 아픔을 남긴 사람과 돌아올 수 없는 순간들은 이제 내 곁에 없지만, 그들이 남긴 흔적은 사라지지 않는다. 떠나간 것들을 충분히 슬퍼하고, 내 마음속에 그들을 기억할 자리를 마련해 주는 것이야말로 상실의 아픔을 이겨내는 가장 좋은 방법임을 이제는 안다. 이 과정을 반복하며 내 마음은 조금씩 단단해지는 동시에 유연하고 부드러워진다. 상실로 생긴 빈자리는 결코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이해와 사랑으로 가득 채워지는 소중한 공간인 것이다.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상실은 단순한 고통이 아니라 삶을 더 깊게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계기라는 사실을 말이다. 상실을 겪으며 나는 사람으로서 느끼는 여러 감정들을 있는 그대로 느꼈고, 다른 사람과 나 자신을 향해 너그러운 마음을 갖게 되었다. 나는 이제 상실 앞에서 억지로 괜찮은 척하며 숨기지 않는다. 슬픔을 충분히 느끼고 소중히 기억하는 이 과정이야말로 나 자신과 내게 주어진 삶을 가장 진실한 방법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오늘도 나는 내 마음 깊은 곳에 남아 있는 상실의 기억들을 하나둘 꺼내어 찬찬히 들여다본다. 마음껏 울고 그리워하며 나에게 속삭여 본다. “괜찮아, 마음껏 아파해도 돼. 지금 네가 느끼는 이 그리움과 통증도 모두 너라는 사람을 만드는 소중한 경험이야.” 그 속삭임이 내 마음에 울려 퍼질수록 상실은 더 이상 나를 힘들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 자신을 이해하게 하고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시키는 소중한 과정처럼 느껴진다.


상실은 피할 수 없는 삶의 운명이지만, 그것을 회피하지 않고 마주하며 충분히 슬퍼할 때 우리는 다시 일어설 힘을 얻는다. 힘든 시간 속에서 나는 진정한 나 자신과 만나게 되고, 내 마음의 상태를 이해하며, 조금씩 회복의 빛을 향해 고개를 든다. 상실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운 나는 이제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나를 잃지 않고 살아갈 용기를 얻었다. 내게서 떠나간 것들이 고통만을 남겨준 것이 아니라, 남은 삶을 더 진실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음을 이제는 믿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