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나를 지키지 못했던 선택들

비겁함이 아닌 생존을 위한 타협

by 그대로 박희룡

가족사진 속의 나는 언제나 머리를 단정하게 빗고 밝게 웃고 있었다. 하지만 그 사진 속 미소 뒤에는 차마 하지 못한 수많은 말이 쌓여 있었다. 울고 싶을 때면 억지로 눈물을 참았고,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도 세상에서 가장 순하고 부드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어른들은 그런 나를 보며 “참 속이 깊고 착하다”고 칭찬했다. 그 칭찬을 들으며 나는 슬픈 사실을 몸으로 배웠다. 나를 숨길수록 사랑받을 수 있고, 내가 참을수록 가족이 평화로워진다는 사실 말이다. 그렇게 나는 칭찬을 받기 위해 가장 빛나야 할 시절에 정작 나 자신을 깊은 곳에 숨겨버리고 말았다.

나는 이제야 이해하기 시작한다. 나를 지키지 못했다고 자책했던 그 선택들은 사실 힘든 상황에서 나를 살려내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그것은 나를 버린 선택이 아니었다. 당시의 내가 택할 수 있었던 가장 안전한 길이었고 무너지지 않고 버텨낼 수 있었던 유일한 길이었다. 그동안 나는 나를 버렸다고 생각하며 미워했지만 사실은 정 반대였다. 나는 나를 살리기 위해 그 힘든 시간을 견디며 버텨온 것이다. 비겁해 보였던 침묵과 비굴해 보였던 미소는 사실 내가 사라지지 않도록 스스로를 지켰던 가장 간절한 사랑이었다.

관계에서 매번 양보하고 물러설 때마다 내 마음은 조금씩 힘들어졌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나는 완전히 무너지지 않았다. 겉으로는 구차하고 답답해 보였을지 몰라도 나만의 방식으로 내 마음을 끝까지 지켜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야 나는 나의 나약한 모습이 사실 더 큰 상처를 막기 위한 선택이었고, 나의 침묵은 나를 지키기 위해 애쓴 결과였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나는 비겁하게 도망친 것이 아니라, 다시 힘을 내기 위해 잠시 몸을 낮추고 기다렸을 뿐이었다.

한때는 모든 관계를 끊고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었지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떠난 뒤에 마주할 외로움이 지금 내가 겪는 힘든 상황보다 더 무서웠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떠나지 않고 남는 쪽을 택했다. 그리고 상처뿐인 관계를 필사적으로 붙잡고 있는 나를 보며 자책했다. ‘나는 정말 구제 불능의 비겁자야.’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때의 나는 비겁했던 것이 아니라 두려움과 불안, 책임감이라는 무거운 짐 사이에서 버티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 선택은 비겁함이 아니었고, 당시 내가 가진 힘으로 나를 지키기 위해 했던 가장 간절한 생존 방법이었던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마음이 조금씩 단단해진 뒤에야 나는 예전과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여전히 목소리는 떨리고 가슴은 두근거리지만, 이제 더 이상 나를 숨기며 타인의 기분을 맞추지는 않는다. 이런 작은 변화는 과거의 내가 어떻게든 끝까지 살아남아 나를 지켜주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만약 그때의 내가 자신을 완전히 포기했다면 오늘의 나는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이제 과거의 나에게 진심 어린 위로를 건네고 싶다. 나를 여기까지 데려오기 위해 그 힘든 시간을 견뎌준 나에게 진심을 담아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그때 네 선택은 틀린 게 아니었어. 너는 그 지옥 같은 순간에 네가 할 수 있는 가장 너다운, 가장 최선의 선택을 한 거야. 네가 그렇게 굴욕을 견디며 버텨준 덕분에, 지금의 내가 이렇게 숨 쉬며 너를 이해할 수 있게 됐어. 정말 고생 많았어. 그리고 나를 포기하지 않아 줘서 정말 고마워.”

나는 이제 과거를 떠올릴 때 미안함이나 부끄러움으로 마음을 졸이지는 않는다. 대신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 시절의 나를 깊게 인정한다. ‘그래, 그땐 그게 네가 할 수 있는 전부였지.’ 그 짧은 한 문장이 무거웠던 마음을 가볍게 해준다. 이해한다는 것은 ‘용서’라는 거창한 말보다 먼저 필요한 마음의 준비다. 무언가를 억지로 바꾸려 하기 전에, 그저 그럴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 그것이 나를 위한 가장 소중한 선물이며, 진정한 사랑이자 치유의 시작이다.

나를 지키지 못했던 것처럼 보였던 수많은 선택들 속에는 사실 살아남기 위해 애썼던 노력과 인내가 숨어 있었다. 우리는 영화 속 주인공처럼 언제나 당당할 수는 없지만 살아가기 위해 힘든 순간을 견디고, 때로는 목소리를 죽이며 나를 숨기면서도 우리는 결코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비겁해 보였을지 모를 그 모든 순간에도 우리는 삶을 지키려 최선을 다했다.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충분히 잘해왔고 소중한 사람이다.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이 과정은 과거의 잘못을 따져 판결을 내리는 재판이 아니다. 그저 춥고 외로운 곳에서 홀로 서 있는 과거의 나를 찾아가 따뜻하게 안아주고 곁을 지켜주는 일이다. 그렇게 우리는 스스로를 비난하던 엄격한 모습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리고 가장 힘든 시간을 함께 견뎌온 ‘나를 이해하는 다정한 친구’로 다시 태어난다. 나를 몰아세우는 일을 멈추고 내 편이 되어주는 것, 그것이 우리가 이 글을 쓰는 진짜 목적이다.

나를 이해하는 과정은 아직 계속되고 있지만, 적어도 이제는 확실히 안다. 나를 지키지 못했다고 자책했던 그 선택들마저, 결국 나를 사랑하게 된 지금의 이곳으로 이끌어준 소중한 길잡이였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제부터 시작될 새로운 길 위에서 나는 더 이상 나 자신을 외롭게 두거나 비겁하다고 비난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제 나의 가장 든든한 내 편이 되어 내 안의 모든 선택과 흔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