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굶주린 아이와 마주하기
‘왜 나는 소중한 사람을 몰아세워서라도 내 곁에 두고 싶어 했을까. 상대를 내 뜻대로 움직여야만 비로소 안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 질문을 가슴에 품고 내 마음을 깊이 살펴보았다. 그곳에는 아주 오래전부터 사랑을 간절히 원했던, 잔뜩 겁에 질린 어린아이가 혼자 떨고 있었다. 상대를 힘들게 했던 나의 고집은 사실 그 아이가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도와달라고 외치는 간절한 소리였다. 나를 지키려 했던 행동들이 오히려 소중한 사람을 아프게 했다는 사실을 이제야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한다.
어린 시절의 나는 아무 조건 없이 사랑을 받아 본 경험이 거의 없었다. 부모님의 기분이나 나의 성적에 따라 나를 대하는 태도가 매번 달라졌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 버려질 수 있다는 두려움은 내 마음속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나에게 사랑은 편히 쉴 수 있는 휴식처가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증명해서 어렵게 얻어내야 하는 고된 일과 같았다.
혼자 남겨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어른이 된 후에도 나를 계속 괴롭혔다. 상대의 반응이 조금만 차가워져도 내 마음은 금방이라도 큰일이 날 것처럼 마음이 불안해졌다. “결국 나를 떠날 거야”, “나는 사랑받을 자격이 없어”라는 생각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내가 선택한 방법은 상대를 내 마음대로 휘두르는 것이었다. 상대를 구속하려 했던 진짜 이유는 사실 내 안의 불안한 속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부린 심술과 같은 것이었고, 그렇게 나는 불안할수록 오히려 더 공격적이고 차갑게 행동했다.
가장 큰 원인은 내가 상대에게 너무 많이 기대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나는 혼자 있으면 아무것도 아닌 사람처럼 느껴졌고, 오직 상대가 나를 인정해주고 반응해줄 때만 내가 소중한 사람이라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상대가 내 생각대로 움직여주지 않으면 나 자신이 거절당하는 것처럼 괴로웠다. 상대의 자유를 막으면서까지 내 곁에 두려 했던 이유는 그만큼 상대 없이는 살 수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내 마음의 빈 공간을 스스로 채우지 못하고, 상대의 마음으로만 채우려 했던 나의 큰 욕심이었다.
또한 나는 늘 내가 해준 만큼 반드시 되돌려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나는 늘 내가 상대에게 쏟은 정성이나 노력에 대해 보상을 바랐다. “내가 너를 위해 이만큼 했으니, 너도 당연히 내 말을 들어야 해”라며는 상대를 자주 몰아세웠다. 사랑을 순수한 마음으로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마치 무언가를 주고받는 거래처럼 여겼다. 그래서 상대가 내 기대만큼 해주지 않으면 서운한 마음에 모질게 행동했다. 상대를 아끼기보다 내가 들인 노력에 대한 반응을 더 중요하게 여겼던 것이다. 아무 조건 없이 사랑하는 것은 그때의 내게는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겉으로는 늘 강한 척하며 화를 냈지만, 사실은 내 약점을 들키지 않으려고 스스로를 보호하려 했던 마음이었다. 나는 내 안의 슬픔이나 부족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몹시 두려워했다. 그런 모습을 보이면 상대가 나를 무시하거나 떠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더 강하게 말하고 화를 냈다. 상대의 잘못을 먼저 지적하고 몰아세워서 대화의 주도권을 잡으려 했던 모습이 상대를 힘들게 하고 있었다. 강한 척했던 나의 모습 뒤에 누구보다 쉽게 상처받고 흔들리는 내가 이었음을 이제야 솔직하게 인정한다.
나는 늘 ‘착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힘들었다. 겉으로는 완벽하고 정성을 다하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지만, 마음 한쪽에는 내 노력을 알아주지 않는 서운함이 계속 쌓여갔다. 그 서운함이 한계에 다다를 때마다 나는 참지 못하고 화를 냈다. 평소에 내가 베풀었던 친절을 이유로 들어 “내가 너에게 얼마나 잘했는데 나한테 이럴 수 있어?”라며 상대를 죄인으로 만들었다. 이것은 상대를 내 마음대로 하려고 내가 자주 썼던 잘못된 방법이었다. 나의 희생은 상대를 보살피는 따뜻한 마음이 아니라 상대를 불편하게 만드는 구속이 되어버렸다.
상담을 받으며 깨달은 놀라운 사실은, 내가 상대를 나를 위해 이용했다는 점이다. 그저 내 불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한 도구로만 상대를 바라보았다. 상대에게도 자기만의 감정이 있고 원하는 것이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잊고 살았다. 내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이 너무나 간절했기에, 정작 소중한 사람의 마음이 상처 입는 줄은 몰랐다. 나는 내 안의 허전함을 채우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을 힘들게 만들고 있었다. 상대를 아프게 하면서까지 내 마음의 안정을 찾으려 했던 이기적인 모습이 이제야 깊이 후회된다.
나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마음 때문에, 나는 오히려 다른 사람을 탓하며 내 기분을 높이려 했다. 상대를 부족한 사람으로 몰아세우고 내가 ‘옳은 사람’이 되었을 때, 나는 아주 잠깐은 내가 더 괜찮은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하지만 그런 기분 뒤에는 꼭 나 자신이 싫어지는 괴로운 마음이 찾아왔다. 다른 사람을 무시해야만 생기는 자신감은 금방 사라진다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내가 상대에게 주었던 상처는 결국 나에게 되돌아와 더 큰 아픔이 되었다. 상대를 낮게 볼수록 나 또한 점점 더 초라한 사람이 되어갈 뿐이었다.
내 마음의 허전함은 세상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만들었다. 상대의 작은 실수도 나를 무시해서 생긴 일이라고 생각했고, 상대가 피곤해하는 모습조차 나를 밀어내는 신호로 오해했다. 내 마음이 이미 불안하다 보니 아무리 진실한 사랑이 다가와도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오히려 그 사랑이 진짜인지 의심하며 상대를 힘들게 시험하려 들었다. 사실 문제는 상대를 믿지 못한 것이 아니라, 사랑받을 수 있는 나 자신을 믿지 못한 데 있었다. 나를 믿지 못하는 이런 잘못된 생각이 소중한 관계를 서서히 망치고 있었다.
지난날의 아픔을 똑바로 마주하는 일은 무척이나 고통스러웠다.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좋지 않은 감정 습관들을 내 안에서 발견했을 때, 나는 큰 슬픔에 빠졌다. 내가 그토록 싫어했던 부모님의 모습을 그대로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아픔을 피하지 않고 마주하면서 소중한 사실을 깨달았다. 이 문제의 원인을 찾아내지 않으면, 나는 평생 누군가를 힘들게 하며 살 수밖에 없다는 점이었다. 반복되는 고통을 끊어내기 위해서는 이 아픔을 견뎌내야만 했다. 도망치지 않고 문제를 마주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변화를 위한 시작이었다.
이제 나는 내 마음이 왜 그토록 허전했는지 이유를 분명히 안다. 바로 ‘나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는 사랑받을 수 없다’는 잘못된 생각 때문이었다. 이런 생각이 나를 예민하게 만들었고, 스스로를 지키려는 행동이 오히려 남에게 상처를 주는 결과로 이어졌다. 내 안의 거친 모습들이 사실은 사랑받고 싶어 울고 있던 어린아이였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자, 비로소 나 자신이 안쓰럽게 느껴졌다. 나를 미워하는 마음을 멈추니 상대를 몰아세우고 싶은 마음도 조금씩 줄어들었다.
내 안의 거친 마음을 달래는 방법은 더 큰 힘으로 누르는 것이 아니었다. 그 마음속 아이의 손을 잡아주며 “그동안 혼자 무서웠지?”라고 따뜻하게 말을 건네는 것이었다. 남을 몰아세워 억지로 안심하려했던 노력을 멈추고, 내 마음의 허전함을 스스로 돌보는 연습을 시작했다. 내가 나를 따뜻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자, 상대에게 기대려던 마음도 조금씩 편안해졌다. 이렇게 내 마음의 주인이 되어 불안을 다스리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이제는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직접 나를 돌봐야 한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는다.
나의 상처를 이해하게 되자 상대의 아픔도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상대를 몰아세울 때 그가 느꼈을 겁나고 답답한 마음이 내 일처럼 아프게 느껴졌다.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허전함을 안고 살아가는 여린 사람들이기에, 서로를 이용하기보다는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는다. 나의 아픔만큼 상대의 아픔도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이번 과정에서 얻은 가장 큰 배움이다. 상대를 아끼는 마음은 그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이제는 나는 상대를 공격할 대상이 아니라 삶을 함께 걸어가는 소중한 동반자로 바라본다.
내 마음의 원인을 찾는 일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삶의 매 순간마다 내가 무엇을 바라는지, 그 마음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을 것이다. 내 안의 허전함이 다시는 나쁜 습관이 되어 소중한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도록, 매일 아침 내 안의 아이를 다정하게 마주한다. “오늘도 우리는 이대로 충분히 괜찮아.” 이 믿음이 상대를 몰아세우던 괴로운 습관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있다. 누군가를 불안하게 하지 않아도 나는 충분히 안심할 수 있다는 것을 느낀다. 진정한 평화는 밖이 아니라 내 안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이제야 굳게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