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 비둘기 노래

by 돌솥밥

이제야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건 나에게 글을 쓰게 만드는 원동력은 갈등이라는 거다. N극과 S극의 팽팽한 곁눈질만 갈등이 아니다. 89도가 직각이 아니라는 사실과 ‘좋은 게 좋은 거다’, ‘그럴 수도 있지’라는 듣기 좋은 너털웃음 사이의 모든 것은 갈등이다.


88올림픽 성화식에 비둘기가 타버린 일에 깔깔대며 웃다가 “그래도 생명이 죽은 건데 그렇게 웃겨요?”라는 질문에 멋쩍게 눈 마주치기를 피하는 것도 그러하다. 내가 피한 건 상대일까, 나일까? 내가 갈등하는 것은 생명의 홀대함에 대한 자기반성과 못마땅함 어딘가를 떠돈다.


자존감과 자존심의 차이에 대해 명확히 정의 내려본 적이 없다는 사실에 부끄럽다. 글은 감옥의 쇠창살과도 같아서 대상을 가둬둘 뿐 마주하고, 같은 공기를 호흡한다는 사실을 더욱더 명확하게 깨닫게 한다. 그럼에도 ‘가둘 것’이 없는 것만큼 비참한 것은 없다.


가둘 것. 흔한 청춘의 대화 중.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갖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좋아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현실과 나름 타협한 또는 인정받는, 그 말인즉슨 사회에서 부가가치를 창출할 가능성이 그나마 또는 현저히 높은 일을 하는 게 옳은가? 에 대한 내 답은 언젠가부터 같았다. 가장 좋아하는 노래를 알람으로 맞추는 것이 과연 ‘가장 좋아하는’이라는 전제를 충족시킬 수 있는 가정인가? 삶이란 게 대게 그렇다. 가정과 동시에 전제조건을 파괴한다.


삶에서 이러한 갈등을 통해 가둬야 하는 것은 분명 존재한다. 다시 노래로, 노래의 가사던 멜로디던 하물며 앨범 재킷의 재질이던 개인의 필터로 걸러내고 가둬낸 여과물이 있어야 한다. 그것들은 우리를 생각보다 긴 시동안 사유하게 한다. 반복재생. 그렇게 알람으로 맞췄던 그토록 좋아했던 노래에 질려 보기도.


당신의 인생 노래는 무엇인가요? 떠오르는 노래가 없다면 핀잔을, 이미 대답했다면 나는 사실 두 번째로 뽑을 만한 노래가 궁금했다고, 너무 많은 노래가 떠오른다면 그 하나하나의 노래에 대한 이야기로 대화를 이어가고 싶다. 그리고 당신이 그 노래를 마지막으로 들었던 시점으로 함께 가고 싶다. 누구의 인생도 한곡의 노래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그래서 이 질문은 전제조건을 파괴하는 가정이자 갈등이다.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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