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별 여행자 가이드(1)
나는 자책과 후회, 걱정을 정말 심하게 하는 스타일이다.
어느 정도냐면 몇 주를 식음을 전폐하면서 과거 생각을 끊임없이 되새기곤 한다.
그게 정녕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생각이라 하더라도, 마치 난 나에게 벌을 주듯 끊임없이 후회하고 자책한다.
이게 바로 셀프 고문이다. 누군가가 라디오로 옆에서 나의 잘못들을 짚어주는 것도 아닌데 자꾸 셀프로 고통받는다.
이런 사람은 비단 나뿐이 아닐 것이다.
시간을 돌려놓고 싶고, 과거의 나를 뜯어말리고 싶고, 어떻게든 과거로 돌아가 내 멱살을 잡고 절대 그러지 말라고, 혹은 제발 이렇게 하라고 알려주고 싶다.
타임머신이 있다면 되돌아가고 싶다.
그런데 아직 타임머신도 없을뿐더러 난 하루하루 과거에서 더 멀어진다.
이런 습관적이고 침습적인 과거 생각을 '반추'라고 한다. 되새김질하듯 아픈 기억을 구태여 꺼내 질겅질겅 씹는다.
쓴맛이 나오고 뱉어내고 싶어도 또 곱씹고 곱씹는다.
이 반추가 심하면 그때부턴 우울증일 가능성이 높아진다.
우울증으로 인해 망가진 뇌 회로 때문에 자꾸만 과거 생각에 빠져 좌절하고 있는 것이다.
나 또한 약을 먹어봤다. 그때 당시까진 괜찮아진다.
머리가 멍해지며 단순해진다. 그러나 본질적인 해결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약을 평생 먹어야만 한다면 그렇게 하겠지만, 본질적으로 무언가 바꿔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보다는 오래 걸리는 방법이라도 난 이걸 꼭 고쳐서 편안해지고 싶다.
그러면 어떻게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까?
: 생각해 보면 아니다. 내가 큰 결정들에 대한 실수만 보여서 그렇지 하루하루 소소한 결정들에선 잘 해내고 있었을 수도 있다. 지나가다가 어르신을 도와드린 것, 짜장면 먹으려다가 짬뽕 먹었는데 맛있었던 것, 옷을 샀는데 정말 잘 어울리던 것. 오히려 개수로 따지면 더 많은 결정을 잘해왔을 것이다. 왜냐면 당신은 늘 가장 원하는 것, 가장 나은 것을 선택했을 테니까.
: 솔직히 인생 2 회차라면 후회하는 것을 인정한다. 어떻게 두 번이나 삶을 사는데 또 실수를 한단 말인가?(농담)
그렇지만 우리는 다행히도(?) 삶을 처음 살아본다.
아이들이 실수하면 어른들이 눈 감아 주는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실수를 가끔은 귀엽게 넘어가도 되지 않나. 인생 처음 살아봐서 ' 아 몰랐다고! 그땐 몰랐다고!! 어쩌라고!!' 하고 넘어가줄 수도 있지 않을까
:내가 과거보다 행복하면 뭐 하러 과거를 반추하는가? 아픈 과거야말로 잊어버리고 싶어 지겠지. 내가 과거를 돌려놓고 싶은 것은 과거를 고침으로써 현재가 조금이나마 달라지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과거는 돌릴 수 없지만 현재는 돌릴 수 있다. 그게 삶이 내게 준 기회고 자비이다. 만약 과거만이 날 바꿀 수 있다면 얼마나 절망스러울까? 그래도 현재가 있고, 내일이 있다는 것은 내게 몇 십 번의 기회가 더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과거의 배움으로 더 나은 삶을 살게 될 수도 있는 보너스를 받은 것과 같다.
당장은 기회가 없을 것 같지만, 남은 생에 기회가 단 한 번도 없을 거란 보장보단, 한 번이라도 있을 거란 생각이 더 맞을 거 같다. 언제나 모든 것엔 예외가 있으니까.
: 결국 자책과 후회도 현재의 힘든 내가 잘 되었으면 좋겠어서, 그게 너무 안타까워서 반복하는 일종의 자애(自愛) 의 행위이다. 후회할수록 더욱 느낀다.
만약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잘못되었다고 가정해 보자.
후회가 드는가? 아니? 잘됐다 생각되겠지.
그만큼 반대로 생각해 보면 내가 너무 잘 됐으면 좋겠고, 시간을 돌려서라도 내가 행복했으면 좋겠기 때문에 후회하고 힘들어하는 것이다.
결국 나는 나를 안아줘야 한다.
나를 가장 사랑해주는 나를.
단지 그 방식이 틀렸던 나를.
'잘했어. 최선이었어.'
지금 후회하고 자책하는 내가 너무 고통스러워 보이지 않는가? 당신이 잘 됐으면 좋겠어서 아픈 과거까지 자꾸만 상기시키는 당신이 안쓰럽지 않은가?
합리화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애초에 합리화를 하는 사람들은 후회를 하지 않는다. 고로 후회를 하는 사람들은 자신을 안아주고 용서해 줄 자격이 충분하다.
나는 인생을 처음 살아본다.
물론 다른 사람도 처음이다. 멀쩡히 살고 있는 것 같아 보이는 누군가도 뼈저리게 후회하는 장면이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처음 해보는데, 모든 게 처음인데 어떻게 실수를 안 하겠는가.
모든 건 경험이다.
아픈 기억도, 도려내고 싶어서 밤마다 가슴 치는 날도.
내가 이 지구별에 태어나 겪는 모험이자 경험이다.
더 빨리, 더 먼저 실패하고 실수하자.
이왕 여행온 거 재밌게 살자.
실패도 하고 실수도 하고, 찢어지게 가슴 아파도 보고 울어도 보고. 여기도 가봤다가, 저기도 가봤다가.
이것도 해봤다가, 저것도 해보자.
사람으로 태어나 격렬한 고통을 느끼며 삶의 생명력을 느껴보자.
잘 살고 싶어서 아팠던 당신,
힘들수록 기억에 남는 여행이듯이
당신의 삶의 여정도 잘 꾸려나가고 있다.
경험이 많은 당신이,
잘 살고 싶어서 힘든 당신이,
남들보다 길을 더 돌아온 당신이.
진정한 여행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