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치를 짓는 것이 누에다”라는 속담이 있다.
누에가 고치를 짓지 않으면 누에라고 할 수 없다는 의미가 아닐까?
지난주 서울 성북동에 있는 선잠 단지를 가보았다. 그곳은 누에치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중국 고대 황제의 황비 서릉 씨를 누에 신으로 모시고 제사를 지냈던 곳이다. 조선 시대 왕비의 소임 중 하나는 친잠례(親蠶禮)를 지내는 일이었다고 한다. 조선 시대 왕들도 농가에서 누에농사를 잘 짓도록 많은 지원을 했다니 놀랍다.
어릴 적, 우리 집에서도 누에를 키웠다. 안방 윗목에 걸쳐놓은 시렁은 누에의 운동장이며 놀이터이고, 잠자리였다. 깨알만 한 누에씨에서 꼬물꼬물 개미누에가 깨어난다. 그리고 잠깐 사이에 송충이와 같이 생긴 징그러운 애벌레가 스멀스멀 기어 다닌다. 혹시 그 애벌레가 잠자는 나의 얼굴에 기어오르지는 않을까 두려워 잠을 못 이룬 적이 있었다. 누에가 허물을 벗을 때마다 누에가 먹는 뽕잎도 곱빼기로 늘어났다. 늘어나는 뽕잎을 대느라 엄마의 손길이 점점 바빠졌다. 뽕잎을 먹은 누에가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나에게는 흥미로 왔다. 나도 누에처럼 뽕잎을 잘근잘근 씹어 본 적이 있었다. 씁쓸하고 떫은맛이어서 곧바로 뱉어냈다.
누에가 손가락 크기만큼 자라고 몸통은 터질 듯 탱탱하고 윤기가 난다. 엄청 많은 청년 누에가 힘차게 꿈틀꿈틀 기어 다니는 모습은 마치 전사들의 군사 행진 같았다. 한창 자라는 누에의 식성은 대단했다. 잠자기 전에 두툼한 솜이불처럼 덮어준 뽕잎도 아침이면 얼기설기 속이 다 보이는 모시이불처럼 잎줄기만 남아 있었다. 밤새 누에가 뽕잎을 갈아먹는 소리는 사그락 ~ 사그락~ 늦가을 가랑잎이 바람에 날리는 소리처럼 들렸다. 밤새 뽕잎을 먹어 치운 누에들은 아침이면 진초록색의 별 모양 똥을 수북하게 남겼다. 깨알만 한 크기의 누에가 성장하여 집채를 갈아먹을 것 같은 공포감을 주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뽕잎이 한창 피는 5~6월 사이에 벌어지는 일이었다.
지난 4월과 5월 두 달을 초록이 짙어가는 줄 모르고 살았다. 즐겨 찾던 산책로를 맘 편히 한번 못 거닐고 눈앞의 일에 떠밀려 바쁜 나날을 보냈다. 오늘 아침, 내 몸에 초록 기운이 방전됐다는 느낌이 왔다. 간밤에 밤새도록 숲을 헤매고 다니는 꿈을 꾸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애막골 등산로를 천천히 걸었다. 신선한 숲 공기를 가슴 깊은 곳까지 들여 마셨다. 허기진 내 몸을 초록 기운으로 가득가득 채우고 싶었다. 숲이 여전히 나를 반겨주었다. 머릿속이 가슴속이 시원하고 상쾌했다. 이리저리 뭉치고 꼬인 생각들이 한 가닥 한 가닥 풀어지는 듯했다. 진한 아카시아꽃 잔향이 코끝에 다가와 반갑다며 말을 걸었다.
누에는 고치를 치기 시작할 무렵부터 점차 움직임이 둔해졌다. 왕성한 식욕도 꺾이고 몸집도 줄어들었다. 의지할 곳을 찾아 투명한 실을 뱉어내며 거미줄 치듯 잠잘 곳을 만들기 시작했다. 40여 일간 먹은 초록 뽕잎의 힘을 발휘할 때가 온 것이었다. 처음엔 얼기설기 그늘막을 치다가 반복되는 동작으로 몸이 고치 속으로 쏙 들어앉게 되었고 보이질 않았다.
이젠 나도 고치를 칠 때가 되었을까? 두 달간 서울을 오가며 글쓰기 배움의 허기를 채웠었다. 깨알만 한 누에씨가 청년 누에가 되고 마침내 실을 뽑아내 누에고치를 만들 듯 그동안 공부한 내용을 자양분 삼아 작은 고치 하나쯤 만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