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니김 Jun 08. 2024

나의 결

조각작품

  나는 결이 있는 것을 좋아한다.

바람결, 숨결, 물결, 살결, 머릿결, 나뭇결.... 


【결】의 사전적 의미는 ‘나무, 돌, 살갗 따위에서 조직의 굳고 무른 부분이 모여 일정하게 켜를 지으면서 짜인 바탕의 상태나 무늬’이다. 결은 시간이 만들어낸 무늬이다. 켜와 켜 사이에는 이야기가 숨어 있다. 귀 기울이면 가슴으로 스며드는 이야기, 그래서일까? 결의 느낌은 정겹다.     

  

   아프리카에 주로 서식하는 얼룩말이 떠오른다. 자신의 지문을 몸에 새긴 듯한 검은색 줄무늬. 새끼 때 희미한 무늬는 나이가 들면서 더욱 선명해진다. 새끼는 멀리서도 어미의 무늬 결을 보고 알아본다고 한다.     

 

   5년 전 이맘때 일이다. 1998년에 가르쳤던 초등학교 6학년 제자에게 연락이 왔다. 나의 모교에서 영어교육과 조교로 일하게 되었다고... 반가워 그날 퇴근 후 만나기로 했다. 

“여름아! 시간 되면 캠퍼스 조각공원에 한번 가봐, 거기에 내 작품 있으니 한번 찾아봐”

조금 일찍 도착한 식당에서 나의 기억 속 여름이를 떠올렸다. 13살 야무지고 당당했던 모습, 자기 몫을 다하면 늘 주변을 챙겼던 마음이 넓었던 아이. 어린 남동생을 따뜻하게 보살폈던 믿음직한 여름이었다.


  환하게 웃으며 들어서는 여름이는 앉자마자 “캠퍼스 내 조각공원 오늘 처음 가 보았어요. 그런데 신기했어요. 멀리서 선생님 분위기가 느껴지는 작품이 있더군요. 가까이 가서 확인해 보니 내 추측이 맞았지 뭐예요!”     

  

  20여 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은 여름이는 멋지게 잘 다듬어진 어른으로 성장했다. 작품 ‘대화(Conversation)’를 감상하며 작품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작품 속 두 사람의 시선, 마주 보는 듯 하지만 약간 빗겨나간 시선의 주인공이 자기를 닮은 것 같다고 했다. 두 사람이 서로 의지하며 공존하되 서로를 구속하지 않음을 느꼈노라고... 


  나는 놀랐다. 야외 조각공원 넓은 공간에 펼쳐진 30여 점의 작품들 중 나의 작품을 한눈에 알아보았다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작가가 어렴풋하게 작품 속에 심어 놓은 마음을, 작품을 처음 본 제자가 읽어냈다는 것이다. 


  여름이는 나의 결을 이미 알고 있었던 걸까?


작가의 이전글 누에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