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훈련소를 처음 검색했다
어린 시절, 우리 집안은 유난히 남자가 많은 편이어서 군대 다녀온 삼촌이나 사촌오빠가 줄줄이 있었고 그 무용담은 신기할 정도로 서로 이어졌고 네겐 안데르센 동화처럼 먼 곳 이야기로 그저 재미있었다. 하지만 군복에서 느껴지던 그 특유의 차가움과 낯선 냄새는 지금도 생생하다. 나도 아들을 낳고 막연히 생각했다. 얘가 컸을 때는 군대가 없어지겠지..
아들이 17일 논산훈련소에 입소했다. 1월에 국가고시를 치르고 스키장에 놀러 갔다가 손목 골절로 수술을 했는데 별 도리없이 입소를 했다. 불가항력적인 막막함이 여기에 있다. 인생을 살다 보면 피하고 싶지만 내가 넘어서지 않으면 안 되는 불가항력적인 벽을 마주할 때가 있다. 처음은 내가 임신 후 아이를 낳아야 하는 시간을 마주했을 때였다. 아무도 내가 될 수 없고 내가 이 두려운 일을 해내야 하는 것이었다. 몸이 유난히 약하고 체력이 없던 나는 감당하기 어려운 두려움 앞에서 그 막막함을 심히 느꼈다.
누구나 하는 것이지만... 그 순간을 이겨낼 때 한 단계 내적 힘이 생기는 것 같다. 그래서 군에 다녀온 학생을 보면 대견하고 그 인내를 바탕으로 그의 미래 실력을 가늠하고 더 큰 희망을 갖는다. 학교에서도 열심을 갖는 예비역을 이기는 똘똘한 현역을 거의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세상의 엄마는 모두 위대하다. 가늠할 수 없는 산을 넘은 절실함이 아이를 키워내는 것이다. 나를 다 내려놓아야 아이는 자란다. 기꺼이 내려놓는 것이 엄마의 위대함이다.
아들은 훈련소는 먼 곳이니까 혼자 들어가겠다고 했다. 나는 논산훈련소에 끝까지 가겠다고 못했다. 비록 3주이지만 연락이 안 된다는 사실이 서로를 비장하게 만든다. 아들은 웃으면서 여행 가듯이 갔다. 논산훈련소를 처음으로 검색했다. 초록의 아들들이 환하게 웃고 있다. 이 예쁜 아이들이 우리를 지켜주러 그곳에 모여있다. 큼큼한 군인 아저씨가 아니라 내 아이로 보이는 지금... 마음이 아프다. 멀리 우크라이나에서 울리는 총성이 마음을 통과한다. 왜 인간은 전쟁을 하는지... 언제쯤 우리는 전쟁이라는 개념을 지우고 살아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