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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네건축가 Mar 25. 2022

뜰집 이야기

아프다고.. 말할 용기

   책을 내려놓는데 4달이 넘게 걸렸다. 겨우 작은 책장 하나 정도의 분량을 남기고 학교도서관에 보내고  학생 개개인에게 주고 설계실 책장에도 배치하고.. 또 버리고. 처음엔 한 책 한 책 자세히 보니까 다시 거둬들이게 되어서 그냥 크게 크게 영역별로 보냈다. 연구실에 책장이 비어가면서 나는 명퇴를 실감해갔다. 다시 그 연구에 몰두할 자신이 없고 꼭 필요할 사람을 찾는 일도 내겐 버거웠다. 내가 책들을 보내주면 다음 주인을 찾아가겠지 하는 마음으로 닦아서 차례로 내려놓았다.

  교수는 참 좋은 직업이다,  여러모로. 그렇지만 딱 한 가지.. 교수는 좀 외롭다. 학문이란 것이 혼자 푹 빠져 해내야 하는 작업이다 보니  그렇기도 하지만 그보다... 누군가 대신해줄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연구, 교육, 학생지도 등. 남의 손에 맡길 수 없는 일들이 많아서 몸이 아프면 치명적으로 피해를 입는 학생들이 생긴다. 어느 날 아침, 몸이 휘청하는 것을 느끼고 얼마 안 되어 온 세상이 다람쥐 열차보다 빠르게 휘휙 돌아가고 나는 쓰러졌다. 119에 실려갔으나 이석증이라고 했다. 너무 심하게 왔기에.. 짧은 시간 동안 죽음을 직면한 상황을 경험했다. 이후 내겐 상상도 못 했던 다양한 병들이 다가오고 떠나질 않았다. 몸의 면역기능이 전부 떨어져서 치료가 되지 않고 체중은 자꾸 줄어들어서 일어나기도 힘든 상태까지 갔다.

  그렇지만, 해야 할 일들이 산재해 있으니까 자꾸 급격한 처방들을 했지만 몸이 받아주질 않고 그야말로 정신력으로 버티며 유령처럼 2여 년을 지냈다. 아프다고 말해야 하는데.. 그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내가 더 이상은 못 버틴다고 말해야 하는데, 나의 역할이 비워지면 불편하거나 힘들어질 사람들을 마주하면 그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들은 쇠약해져 가는 나를 보고도 조금만.. 조금만.. 더 힘 내주길 바랬다. 너무.. 너무.. 아프다고 말했어야 했나.

  아프다고 말할 용기가 없었다, 그들 맘이 많이 아플까 봐. '그만해야겠다'라고 말하면 알아줄 줄 알았다. 얼마나 아프면 그럴까.. 이해할 줄 알았다.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 이제야 알았다. 시간이 주는 이해의 기간이 없는 한, 말하지 않아서 모르는 사람은 말해도 모른다는 것을.   

  스스로 몸과 마음을 돌보아야 한다. 너무 늦기 전에. 뭐든 오래 멀리 하면서 건강하게 살아가야 제 역할들도 더 잘할 수 있다. 이렇게 따뜻한 날 차 한잔하면서 차분히 생각해보면, 참고 혼자 인내하는 것이 미덕이 아니고 미흡하고 불편한 것들도 오랜 기간 서로 말할 수 있어야 좋은 관계임을 느낀다. 뭐.. 난 그 미숙함으로 동네 건축가가 된  행운이 따르긴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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