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동네건축가 Jan 26. 2022

뜰집 이야기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기분 좋은 시간이다. 뿌연 미세먼지가 끼었지만 해는 떴고 내일이면 아들이 제주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다. 누군가가 나에게 걱정이 없겠다고 했는데.. 지금 그렇다. 

  아침 뉴스에 오미크론 확산이 심상찮다고 해서 마음이 갑자기 분주해졌다. 어제 집으로 오다가 집 앞 새 건물에 아는 언니의 갤러리 간판이 걸려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제 이사를 하고 있고 아직 정리 중이라고 하는데 시작을 기쁘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또 곧 보기로 했던 친구들을 설날이 지나도 당분간 못 볼 수도 있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전에 분주히 움직여서 오랜 친구의 출판사 사무실 앞에 꽃바구니를 갖다 놓고, 언니의 갤러리에도 예쁜 꽃바구니를 갖다 주고 왔다. 

친구가 보내 준 사진

뜻밖의 꽃바구니 선물에 기뻐하는 친구와 언니보다 내가 훨씬 더 기분 좋다. 


  작은 일상 속에서 생각하고 즉흥적으로 움직이고 느낄 수 있는 요즘 난 자유롭다. 물론 옛날에도 했던 일인데 그때는 즐기지 못했던 것 같다. 좋은 걸 좋게 못 느끼고 힘든 걸 힘들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냥 너무 바빴으니까. 너무 의무로만 느끼고 일처리 하듯이 체크 체크했으니까. 그때는 완료에 초점이 가 있었고 과정과 내용에서 나의 감성은 없었나 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나를 부러워하고 행복하다고 보았다. 껍데기만 단단한 갑각류가 되어가고 있었는데.


  지난 8월, 학교에서 명퇴식을 할 때 같이 정년 퇴임하시는 교수님이 계셨다. 같은 학교에 있지만 오랜만이라 간단한 인사를 나누던 중에 가족이 모두 제주도로 이사를 간다고 하셨다. 나는 깜짝 놀랐다. 워낙 조직 적응력과 사회성이 뛰어난 분이라 나는 평소 이해를 잘 못하는 부분도 있으실 정도로 학교 생활을 잘하셨기 때문에 그 네트워크를 떠난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좀 편안해진 얼굴이 보였다. 

  너무 뛰어난 적응력을 가진 분이라 생각했는데 그 속에서도 한 덩어리 짐들을 갖고 살아오셨구나 싶었다. 우리는 각자 그렇게 자기의 울타리 속에서 어떠한 최선을 다하며 지낸 것이다 그 색깔이야 빨강이든 바이올렛이든 회색이든...

작가의 이전글 뜰집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